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서 또다시 준우승에 그친 아르헨티나가 우승 실패보다 더 심각한 후폭풍에 직면해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아르헨티나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가 돌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메시는 지난 27일 열린 칠레와의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결승전서 패한 뒤 "아르헨티나 대표팀 경력은 끝났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대표팀서 우승을 차지할 수 없었다. 이젠 지쳤다"면서 깜짝 은퇴를 선언하며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 메시 외에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에세키엘 라베치 등 다수의 주전급 선수들이 줄줄이 은퇴를 암시하고 있어서 자칫 아르헨티나 축구 전체가 엄청난 혼돈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메시가 아르헨티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일개 축구선수의 영역을 넘어선 지 오래다. 최근 스페인에서의 개인 탈세 논란과 대표팀에서의 연이은 우승 실패 등으로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메시는 여전히 아르헨티나의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아직도 만 29세의 한창나이에 불과한 메시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축구계는 물론 아르헨티나 사회 자체가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언론·축구계 입을 모아 "떠나지 마"

아르헨티나 휩쓰는 '떠나지마 캠페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통 전광판에 떠오른 '메시 떠나지마(NO TE VAYAS LIO)'라는 문구.

▲ 아르헨티나 휩쓰는 '떠나지마 캠페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통 전광판에 떠오른 '메시 떠나지마(NO TE VAYAS LIO)'라는 문구. ⓒ 연합뉴스


각종 언론과 축구계 인사들은 앞다투어 메시의 은퇴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 메시을 가리켜 "리더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 대선배 마라도나는 "메시는 대표팀에 돌아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메시에게 전화로 은퇴를 만류했다고 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한 축구선수의 대표팀 은퇴 결정에 축구계 전설은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나서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사회에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축구팬들도 곳곳에서 메시 은퇴 철회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축구팬들의 메시의 실물 크기 동상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는 많은 팬들이 SNS에 '떠나지 마, 리오'(No te vayas Li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메시의 대표팀 은퇴를 반대하는 청원에 나섰다.

메시가 돌연한 은퇴 결정을 내린 배경과 그 현실성은 얼마나 될까. 표면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우승 실패다.

메시는 약 10년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지만, 소속클럽 바르셀로나에서의 눈부신 우승경력에 비하여 대표팀에서는 우승과 유독 인연이 없었다. 연령대별 대회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A매치인 코파와 월드컵에서는 준우승만 무려 4번에 그쳤다.

특히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2015~2016 코파까지 무려 3년 연속 준우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1993년 코파 우승을 끝으로 최근 23년간 메이저대회에서 더는 우승컵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클럽 무대에서 마라도나나 펠레 같은 역대 전설들을 훌쩍 뛰어넘는 업적을 세운 메시 경력의 유일한 옥에 티다.

메시는 최근 코파 센테나리오 결승전 칠레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섰다가 실축하고 팀이 패배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메시가 경기에 패했다고 해서 이 정도로 감정을 드러낸 것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그만큼 메시에게 국가대항전 우승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준다. 무려 3년 연속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면서 메시가 겪었을 심리적 박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부담과 좌절 이해하지만... 팬들은 아직 그를 원한다

2016 코파 아메리카컵 대회 지난 26일 미국 뉴저지 이스트 러더포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코파 아메리카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리오넬 메시가 추가 시간에 괴로워 하고 있다.

▲ 2016 코파 아메리카컵 대회 지난 26일 미국 뉴저지 이스트 러더포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코파 아메리카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리오넬 메시가 추가 시간에 괴로워 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한편으로 메시의 대표팀 은퇴 결정 배경에는 아르헨티나 축구계와 극성 지지자들의 지나친 압박도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모든 슈퍼스타가 그러하듯, 메시에게도 열렬한 지지자들 못지않게 안티 팬들도 존재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성적에 비하여 대표 팀에서 부진하다는 지적, 국제대회에서 메시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 심지어 스페인에서 성장한 메시의 애국심과 정체성에 대한 비난까지 끊임없는 루머들이 메시를 괴롭혔다. 실제로 메시가 돌연 은퇴 결정을 내면서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메시에게만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고 몰아붙였다'는 자성의 여론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메시에게는 현실적으로 선수 생활 후반기를 대비한 측면에서의 결정이기도 하다. 메시도 2년 뒤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어느덧 30대의 문턱에 접어든다. 사실상 10대 시절부터 클럽과 대표팀을 오가며 혹사당했던 메시는 2~3년 전부터 활동량이 줄어들고 잔 부상이 늘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던 상황이었다. 한국의 박지성도 만 30세에 무릎부상 후유증으로 일찍 대표팀을 은퇴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장거리 이동을 소화하는 것은 선수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시가 과연 정말 이대로 은퇴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슈퍼스타들이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네딘 지단(프랑스)이나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헨릭 라르손(스웨덴)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은 은퇴를 선언하고도 조국의 간절한 요청에 결국 대표팀으로 다시 돌아와 좋은 활약을 보여준 바 있다. 심지어 이들은 복귀 당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이에 비하면 메시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3~4년은 전성기를 유지한다고 했을 때 메시의 기량이 여전한 이상 그의 대표팀 복귀를 성원하는 목소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메시도 여론의 간곡한 요청을 계속 무시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메시의 복귀 문제는 축구계는 물론 아르헨티나 사회의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코파에서의 우승 실패에 이어 내부 비리 문제까지 불거지며 가뜩이나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메시마저 은퇴한다면 그 후폭풍과 비난 여론은 고스란히 협회의 무능함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러시아 월드컵 남미예선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단 메시를 어떻게든 잡아야만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대표팀 은퇴 러시를 중단시키고 전력을 안정시킬 수 있다. 축구계 차원에서 호락호락 메시의 은퇴를 용인해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계 내부의 정치적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메시가 이대로 대표팀을 은퇴하는 것은 아쉽다. 메시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를, 그것도 아직 기량이 건재한 가운데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세계 축구의 손실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의 메시도 좋지만, 팬들은 메시가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에서도 정상에 도전하는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어 한다. 물론 국가대항전 우승 트로피가 없이도 메시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 선수지만, 이대로 떠난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모든 도전이 꼭 우승으로 귀결되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메시가 마음을 돌려 다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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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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