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에스밀 로저스가 팔꿈치 부상으로 결국 한국무대를 떠나게 됐다. 한화 구단은 2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로저스의 웨이버 공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저스의 이탈은 한화에 큰 충격이다. 로저스는 지난해 8월 쉐인 유먼의 대체선수로 한화에 입단하며 KBO와 첫 인연을 맺은 이후 짧은 기간만 활약했음에도 폭발적인 구위를 선보이며 한국야구에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015시즌 후반기 10경기만 뛰고도 6승 2패, 자책점 2.97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고, 이중 완투가 4차례, 완봉승만 3차례를 기록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에이스에 절실히 목말랐던 한화 구단과 팬들은 로저스의 등장에 환호했다. 한화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로저스 덕분에 그나마 막판까지 치열한 5강 경쟁을 이어갈수 있었다. 당연히 한화는 로저스와의 재계약을 추진했고 역대 외국인 선수 연봉 신기록인 190만 달러(약 22억 6000만원)라는 화끈한 금액에 도장을 찍었다.

실패로 끝난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연봉 계약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6회말 한화 로저스가 교체되며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지난 5월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6회말 한화 로저스가 교체되며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출발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로저스는 스프링캠프부터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전열에서 이탈했고 결국 개막 4월까지도 복귀하지 못했다. 로저스가 2군에 있는 동안 그의 몸 상태나 코칭스태프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의혹과 루머가 나오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로저스는 5월에야 다시 1군에 합류했지만 6경기에서 2승 3패 4.30에 그치며 지난해만큼의 위력을 재현하지 못했다. 지난 6월 4일 삼성전에서 로저스는 2.1이닝간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는 동안 또 다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조기 강판당했고 2군으로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는 로저스가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경기가 됐다. 로저스는 정밀진단 결과 팔꿈치 인대가 손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도 로저스의 상태가 호전되기 어렵다는 것을 파악하고 6월부터 조심스럽게 대체 외국인 선수를 물색해 왔다. 로저스는 도미니카로 돌아가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한화에서 통산성적은 두 시즌간 16경기 113.1이닝을 소화하며 8승 5패 자책점 3.41이다.

탈꼴찌에 갈길 바쁜 한화는 이미 알렉스 마에스트리가 성적 부진으로 퇴출된 데 이어 로저스마저 웨이버 공시되면서 또 다시 외국인 투수를 물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나마 마에스트리는 계약 조건이 연봉 2천만 엔, 옵션 3천만 엔으로 큰 부담은 없었지만 로저스는 웨이버 공시 이후에도 잔여 연봉을 보전받는 것으로 알려져서 한화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까지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한화는 이미 마에스트리의 대체자로 총액 25만 달러를 주고 파비오 카스티요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그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시즌 후반기에 갑자기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만일 로저스급의 투수를 영입하려면 구단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로저스가 한화 마운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퇴단을 두고 세간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로저스의 행태에 대하여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높은 몸값을 받고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남겼고, 부상 전후의 태도나 자기관리에서도 확실히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로저스

타격 시범 보이는 한화 로저스 한화 이글스 오른손 투수 에스밀 로저스가 25일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넥센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팀 동료 이태양에게 타격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저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0.208을 기록했다.

▲ 타격 시범 보이는 한화 로저스 한화 이글스 오른손 투수 에스밀 로저스가 지난 5월 25일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넥센 히어로즈전을 앞두고 팀 동료 이태양에게 타격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저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0.208을 기록했다. ⓒ 연합뉴스


몸 관리에 누구보다 신중해야 할 에이스 투수가 자신의 본업과는 무관하고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 있는 타격연습을 장난삼아 했던 장면이라든지, 구단과 상의없이 자신의 SNS를 통해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먼저 공개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팀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장면들이다. 이를 두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거만하고 이기적인 외국인 선수에게 한국야구가 또다시 농락당한 게 아니냐는 분노의 여론도 나온다.

이순철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자신의 SNS에 "한국야구가 또 당했다"고 분노하며 갈베스, 아이바, 카리대 등 악동으로 유명했던 역대 외국인 선수들과  로저스의 이름을 함께 거론했다. "다시는 이런 선수드이 한국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 보완과 함께 외국인 선수 숫자를 2명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 선수에게 기회가 더 돌아 가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로저스는 '먹튀'가 맞다. 몸값에 걸맞는 성적도 올리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본인의 이익은 모두 챙긴 것도 사실이다. 팀과 팬들에 대한 예의도 조금은 부족했다. 하지만 로저스가 먹튀가 된 책임을, 모두 선수 본인에게만 일방적으로 떠넘겨서 손가락질 해야만 하는가에는 고개가 갸웃거린다.

애초에 로저스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여지를 만든 것은 한화 구단의 실책이다. 한화 구단은 당연히 로저스가 올해도 그 정도의 활약을 해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했다. 그러나 출장경기나 이닝에 따른 옵션, 선수 관리에 대한 내부 규정 같은 세부적인 안전장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지 않고서는 로저스같은 거물을 잡는게 쉽지 않았겠지만 계약은 의리나 인정,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철저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쌍방간에 합의된 약속이다.

한국의 야구영웅 박찬호는 2002년 당시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FA 대박을 터뜨렸지만 이적 이후에는 먹튀로 전락했다. 박찬호는 극도의 부진과 더불어 FA를 위하여 허리부상을 숨겼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박찬호의 야구인생에 대표적인 흑역사다.

하지만 박찬호의 텍사스 시절을 빌미로 "메이저리그가 한국 선수에 당했다",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한국 선수를 제한하고 미국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줘야한다"같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투자나 계약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최종 책임은 결국 구단이 감수하는 것이다. 그만한 비싼 투자를 했다면 몸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사전에 체크하거나, 아니면 계약 이후에라도 철저하게 관리를 했어야 했다. 개별적인 대형계약의 실패 사례를 들어 '외국인 선수가 한국야구를 농락했다'거나, 심지어 몸값 비싼 외국인 선수가 한국인 선수의 자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로저스의 부상, 과연 본인만의 잘못인가

머리 만지는 김성근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LG의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던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한화 김성근 감독. ⓒ 연합뉴스


로저스의 부상이 과연 본인만의 과실인지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로저스는 지난해 KBO에 진출한 이래 메디컬 체크 때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로저스의 팔꿈치에 처음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올해 2월 스프링캠프였다.

당시 한화는 강추위가 몰아쳤던 고치 캠프에서 다수의 선수들이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정상적인 훈련을 진행하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도 시즌 초반 부진의 원인으로 스프링캠프에서의 훈련 부족을 인정했을 정도다. 로저스의 고향인 도미니카는 따뜻한 열대성 기후다. 로저스 역시 이런 환경에서의 투구훈련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고치 캠프를 결정하고 밀어붙인 것은 바로 김성근 감독이었다.

또한 로저스는 한국무대에 오기전까지만 하도 주로 불펜에서 짧은 이닝을 주로 던지던 투수였다. 그런데 한화에 입단한 이후 선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며 불과 16경기만에 1731개(경기당 평균 108.1개)의 공을 던졌다. 같은 기간만 놓고봤을 때 로저스보다 더 많은 공을 던진 투수는 아무도 없다.

로저스가 처음 합류한 2015시즌 후반기는 한화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하여 매 경기 한국시리즈 같은 총력전을 펼치던 상황이었고 로저스 역시 등판 때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전력투구해야 했다.

심지어 올 시즌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장기간의 재활 끝에 복귀했음에도 4경기 연속 100구 이상을 던지기도 했고 4일 휴식 이후 등판한 것도 3번이나 됐다. 부상 직전이었던 5월 29일 롯데전에서는 9이닝을 완투하며 무려 127구를 던지기도 했다. 부상 전력을 감안한 신중한 관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기용 방식이었다. 로저스가 타격 연습 따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면 부상이 악화되지 않는 게 이상한 등판 기록이다.

만일 로저스가 그저 자기만 생각하는 선수였다면 오히려 몸을 더 사렸어야했다. 그러나 로저스는 최소한 자신이 마운드에 올라있는 순간에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역투를 선보였고, 심지어 투구수를 감안할 때 교체 타이밍에도 본인이 더 던지겠다고 자청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상과 그 이후의 행보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좋은 모양새로 결별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로저스의 승부욕과 프로의식을 폄하하고 그저 이기적인 외국인 선수로 매도되는 것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또한 로저스의 실패는 올바른 투자와 선수관리에 실패한 한화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짊어져야할 몫이다. 비싼 몸값에 비하여 기대에 못미친 일부 외국인 선수들을 두고 외국인 선수 제도 전체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논리로 왜곡되어서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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