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밤이 되면 패션모델로 무대에 설 모습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서수연(31)씨는 자세교정 차 찾은 병원에서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렸다. 주사를 맞는 순간, 약물 반응에 의해 팔이 튕겨져 나갔고 전신에 마비가 왔다. 의료사고였다. 그 이후로 그는 걸을 수 없게 됐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의료소송도 계속됐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잠에 든다 해도 악몽이 계속됐다. 그러다 한 번, 예쁘게 차려입고 가볍게 걷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눈을 뜨니 행복했던 꿈은 현실의 좌절을 더 깊게 만들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있을까'라며 원망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러던 중 탁구를 접하게 됐고, 그녀의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 탁구로 인해 사회로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세계 랭킹 1위 탁구선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리우패럴림픽에도 출전한다. 그녀는 "금메달을 따면 가장 먼저 고생한 엄마 목에 걸어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온 것은 자신만의 힘으로 된 게 아니라며 말이다. 지난 10일, 인천서막경기장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리우패럴림픽, 그에게 주어진 큰 도전 과제

 서수연씨는 힘든 상황 속에서 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서수연씨는 힘든 상황 속에서 늘 희망을 놓지 않았다. ⓒ 남유진


- 리우패럴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떠세요?
"처음엔 붕 뜬 기분이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좀 막연해요. 가장 큰 무대인 패럴림픽은 어떨지 궁금해서 많이 설렙니다. 탁구라는 게 갑자기 성적이 확 오르진 않거든요. 갑자기 느는 사람도 기초를 다졌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현재 이천훈련원에서 합숙훈련 중이고 오전, 오후 2시간씩 총 4파트와 자율훈련을 하고 있어요. 또 이미지·웨이트 트레이닝, 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있습니다. 감독님과 담당 코치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 리우패럴림픽은 어떤 대회인가요?
"패럴림픽은 일반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9월 7일부터 18일까지 똑같은 장소에서 동등한 규정들로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예요. 탁구는 선발 자격을 따기 위해 자비로 많은 대회를 다녀야 해요. 장애가 있다고 더 쉬운 건 아니예요. 몸이 불편한 만큼 그걸 보완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하고 다리로 움직일 수 없으니 그만큼 팔로 휠체어를 움직여야 합니다. 저희에게도 올림픽은 꿈의 무대예요. 이 대회를 위해 다들 많은 시간을 들여 갈고 닦고 있습니다. 일반 선수 분들의 벽이 높겠지만, 저희도 일반 선수와 똑같이 경쟁을 합니다."

- 한순간의 의료사고로 지금의 장애를 갖게 됐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세요.
"대학교 한 학기 마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어요. 슈퍼모델 준비하던 중 자세교정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원래 내원하던 병원을 찾게 됐습니다. 그 병원은 아침부터 줄 서서 접수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병원이었어요. 보통 때와는 다른 치료를 하셨어요. 척추 주변 근육에 놓을 주사를 척수에 놓은 거예요. 약물이 들어오는 순간, 왼팔이 튕겨져 나갔고 전신에 마비가 왔어요.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계속 그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 검사를 하고 입원실로 가게 됐고 집에 연락을 해서 가족들이 병원으로 왔는데 의사는 척수가 흘러나온 게 지혈이 덜 돼서 그런 것이라며 일시적인 마비니 금방 좋아질 거라고 속였어요. 나중에 협진을 요구했고 다른 의사선생님께 경추 3·4번 척수손상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어요. 한번 손상되면 영구장애가 남을 거라고 했어요. 의료소송을 걸었는데 6년 동안 재판했고 제대로 된 결과는 나오지 않았어요.

더 나은 모습을 보이려고 내 발로 외래진료 갔다가 주사 한방에 사지불안전 마비가 된 거예요. 갑자기 중도장애가 생기니까 '내가 바라던 꿈들은 이제 이룰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장애가 생겨버려서 너무 힘들었어요."

- 가족 분들 역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빠, 엄마는 말할 것도 없죠. 많이 우셨죠. 저희 오빠가 군대에 있을 때 제가 다쳤어요. 오빠 역시 저를 많이 안쓰러워하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움을 주려고 해요. 결혼할 때도 언니한테 '나에게 아픈 동생이 있는데 나중에 내가 동생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결혼하자'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제 키는 175cm인데 오빠는 더 커요, 192cm. 그런 오빠가 저에게 있답니다."

- 같은 중도장애를 겪은 분 중에 가수 강원래도 있습니다.
"제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강원래씨를 본 적이 있어요. 재활병동에서 주에 한 번씩 탁구대 펴놓고 강습을 하는데 하루는 강원래씨가 오셔서 어떤 분과 탁구를 치시더라고요. 요즘 TV나 페이스북에서 보면 아들 낳고 표정이 너무 밝아지시고 행복해 보이세요. 그분 나름대로 불편하고 괴로운 부분이 있었겠지만, 잘 극복한 모습을 보면 자리를 잘 잡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귀감이 되는 장애인 선배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과 대화하면서 지혜도 얻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하고 싶어요."

"탁구가 다른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서수연씨.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서수연씨. ⓒ 남유진


- 탁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요?
"아버지 지인이 소개해 주신 분이 중증장애인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곳을 만드셨어요. 처음엔 그냥 놀러갔고 취미로 해보자고 했지 탁구 선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지방에서는 재활치료 받기도 마땅치 않았어요. 탁구가 아니었다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계속 보냈을 거예요. 자원봉사 하신 탁구 코치님들도 계셔서 끈기 있게 배워보자고 생각했어요. 동료들과 자원봉사 해 주신 분들이 차로 이동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있었어요, 탁구가 저한테 다른 인생을 살게 해준 거잖아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 직접 운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면허를 딸 때 장애인은 기능 검사를 추가로 받아요. 그걸 통과해야 학원등록도 돼요. 일반 차에 당기면 액셀, 밀면 브레이크 기능을 하는 '핸드 컨트롤'이라는 장치를 달아요. 운전을 발로 못 하고 손으로 해야 하니까 그만큼 손이 바쁘죠. 강직이 심해서 운전을 늦게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웠죠. 내가 혹시 사고를 내서 남까지 상하게 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앞서서 계속 미루다가 이제 운전을 한 지 3년이 조금 넘었어요. 운전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팔을 많이 써야 하고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어야 하니 그게 좀 힘들어요."

- 패럴림픽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식 차이가 있죠. 일반 선수가 하는 종목은 화려하고, 기술도 다양하니까요. 몸의 불편함이 없으니 현란할 수밖에 없어요. 패럴림픽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출전하니까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고의 기량을 끌어내는 거라서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 같아요. 저희도 국위선양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으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처음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여야 하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하지만 계속 탓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더라고요.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대학도 제가 마무리 못했잖아요. 당장의 목표는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게 목표고, 그 이후 행보는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큰 행운이 거저 오진 않아요. 전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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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com/snsmedia)>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리우패럴림픽 장애인 탁구선수 서수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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