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희

배우 김민희. 영화 <아가씨>로 올해 제 69회 칸영화제를 찾았을 당시의 모습. ⓒ 이선필


"나는 성녀에서 창녀가 됐다가 다시 성녀가 됐다. 단 한 번의 인생에서…."

이런 말을 남긴 한 여배우가 있었다. 스스로를 창녀와 성녀로 칭하면서 말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상처요? 물론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배우로만 봐야죠. 무대 위에서나 스크린에서 벌어진 일은 마음껏 비판해도 돼요. 제 연기가 거슬린다면 나가셔도 되고요. 그러나 사생활을 비판하는 건 잘못이죠. 전 저를 기점으로 인식이 바뀌길 기대했습니다."

할리우드가 사랑했지만 동시에 저주했던 스웨덴 출신의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의 발언 중 일부다. 맞다. 영화광이라면 대부분 열광했을 <카사블랑카>(1942), <가스등>(1945) 등의 그 주인공이다. 

예상했겠지만 김민희라는 배우를 언급하려 한다. 1982년생으로 CF 스타로 주목받다 근 몇 년 새 부쩍 좋아진 연기력을 보이며 국내를 넘어 세계 관객의 주목을 이제 막 받기 시작한 이 말이다. 물론 100여 년 전 태어나 시대를 풍미했던 버그만과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김민희가 요 며칠 사이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기시감이 든다.

잉그리드 버그만으로 김민희를 바라보다

 배우 김지미, 최무룡 관련 당시 신문 기사. 상단은 간통죄로 고소 당한 직후 김지미가 최무룡의 위자료를 대신 내주었다는 내용이다. 좌측 하단은 7년여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보도. 우측 하단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뒤 김지미가 대규모 상업 영화 <명자 아끼꼬 소냐>를 위해 전세기를 타고 해외 로케이션을 간다는 내용이다.

배우 김지미, 최무룡 관련 당시 신문 기사. 상단은 간통죄로 고소 당한 직후 김지미가 최무룡의 위자료를 대신 내주었다는 내용이다. 좌측 하단은 7년여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보도. 우측 하단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뒤 김지미가 대규모 상업 영화 <명자 아끼꼬 소냐>를 위해 전세기를 타고 해외 로케이션을 간다는 내용이다. ⓒ 경향신문, 동아일보


역시나 시작은 연예 매체였다. 김민희가 던진 (혹은 던졌다는) "남편 관리 좀 잘 하세요"라는 한 마디의 파장이 꽤 크나 보다. 이 문장이 실린 기사의 주요 근거는 김민희와 교제 중인(혹은 불륜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아내 쪽이다. 

최초 보도 후 만 하루가 지나며 3000여 건에 가까운 기사가 났다. 이미 영화계에선 유명한 이야기였다는 내용부터 홍 감독 아내의 인터뷰, 심지어 자택까지 찾아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정작 일의 당사자인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열심히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피는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괘씸죄가 적용된 걸까. 확인되지 않는 일명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의 예전 내용을 편집해 그대로 싣는 기사도 보인다.

의도야 어찌됐든 촉망받던 여배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과장이라고? 1949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과 이탈리아에서 작업하다 사랑에 빠진 잉그리드 버그만도 그랬다. 의사인 남편과 결혼생활 중이던 버그만이 로셀리니 감독을 택하면서 할리우드에서 퇴출되다시피 된 것이다.

김지미, 그리고 문숙이 있었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의 홍상수 감독. 인터뷰는 그가 묵고 있는 숙소인 르 플뤠르 레지던스에서 24일 오후 진행했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의 홍상수 감독. 2012년 칸영화제 때 직접 그를 만났을 당시의 모습이다. ⓒ 이선필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가까이엔 배우 김지미가 있다. 1940년생으로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지미 역시 희대의 스캔들에 휩싸인 적이 있다. 19세 나이에 홍성기 감독과 결혼한 김지미는 24세 때 유명 배우 최무룡과 사랑에 빠진다. 당시 최무룡은 배우 강효실과 부부 사이였다. 간통죄로 함께 교도소를 가게 된 김지미와 최무룡은 이후 결혼에 골인했고 7년 간 부부로 지냈다. 1969년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남긴 말이 바로 그 유명한 "사랑하니까 헤어진다"였다.

김지미는 최무룡의 이혼 소송 당시 자신의 2층 양옥집을 팔아 그의 위자료를 내주는 등 사랑에 기꺼이 헌신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당당했다. 최무룡과 슬하에 딸 밍크를 출산한 그는 또 다른 사랑에도 적극적이었고 작품 활동은 역시 더욱 활발했다. 1991년 당시 전세기를 타고 영화 <명자 아끼꼬 소냐>를 위해 호화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등 내로라하는 배우로 명성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44세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만희 감독은 슬하에 자녀 세 명을 둔 이혼남이었을 당시 23살 아래의 배우 문숙(본명 오경숙)을 만났다. 이만희 감독 신작에 오디션을 보러온 문숙의 당시 나이는 스무 살. 23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지만 1년 만에 이만희 감독은 세상을 떠난다. <태양 닮은 소녀>(1974), <삼포 가는 길>(1975) 등으로 급부상 하던 문숙은 이후 미국에서 생활했고, 최근 들어 드라마 <기억>과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출연하며 국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잉그리드 버그만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스캔들로 할리우드는 그의 섭외를 일체 거부했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10년 넘게 유럽 각지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간 잉그리드 버그만은 <아나스타샤>(1956)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고, 이후 <가을 소나타>(1978) 등으로 대중 및 평단의 찬사를 받는다. 그 와중에 로셀리니 감독과는 파경을 겪는다. 세 번의 결혼과 종군 사진 기자 로버트 카파와의 열애 등을 거치며 거침없는 스캔들 제조기라는 평을 들었지만 배우로서 그는 훌륭히 자신을 완성해냈다.

공사를 넘나들 권리

엄연히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그리고 홍 감독과 그의 아내 간에 벌어진 일은 사적 영역이다. 연예인과 유명인이라는 특성상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될 수 있는 현실은 이해한다고 치자. 문제는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결국 당사자만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감정의 문제를 언론이라는 공적 매체가 확인이나 분별없이 퍼나른다. 대중은 이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잘잘못은 중요치 않고 사안의 본질도 아니다. 유책주의든 파탄주의든 이혼이나 화해 등에 대한 건 사법부 및 각 개인의 몫이니까. 이번 일로, 그리고 무분별한 언론 보도로 상처 입었을 홍상수 감독의 아내 및 가족들의 아픔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대해 대중이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사례를 최초 보도한 매체를 포함한 모든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적어도 "배우 김민희가 잘못된 사랑에 빠졌다" 등의 '저급한' 표현이 다시는 등장하지 않길 바란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 마당에 더욱.

"로셀리니씨, 당신의 영화 <무방비 도시>와 <전화의 저편>을 봤습니다.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그녀는 영어를 아주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으며, 프랑스어는 썩 잘하지는 않고, 이탈리아어는 오직 '당신을 사랑해'만 알고 있는 배우인데요- 저는 당신과 함께 일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대중의 질타를 받기 전, 연기를 정말로 사랑했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존경해 마지않았던 감독에게 위와 같이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을 어필했다. 연기와 작품을 사랑한 그녀의 마음만은 '진짜'였다. 한국이었으면 그에게 '이혼녀', '불륜녀' 등의 숱한 딱지가 붙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본분에 충실하려 했다.

이 사건 이후 잉그리드 버그만은 스웨덴 대중으로부터 버림 받았다. 그렇다면 김민희는? 우리 역시 김민희라는 배우를 버릴 것인가. 그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인가. 개인적으로 김민희씨에게 바란다. "사랑을 택했다" 당당하게 말하며 기다렸다는 듯 물오른 연기를 앞으로 쭉 보여주기를 말이다.

김민희 홍상수 김지미 최무룡 문숙
댓글10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