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또 오해영>은 내게 여러모로 불편한 드라마였다.

드라마 <또 오해영>은 내게 여러모로 불편한 드라마였다. ⓒ tvN


<또 오해영>. 내가 좋아하는 가수 겸 배우인 에릭이 나온다고 해서 제작발표회 때부터 손꼽아 기다려오던 드라마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첫 회를 틀었는데, 시작부터 성 역할에 대한 편견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투영된 장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2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 '나는 이 드라마는 못 보겠다'고 생각했다.

<또 오해영>을 뇌리에서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입에서 이 드라마 얘기가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끼던 즈음, 페이스북에서 "드디어 떴다"는 말과 함께 키스 장면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아, 이 드라마가 진짜 흥행하고 있긴 한가 보다,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호기심과 팬심에 재생을 눌렀다.

내가 본 장면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여자주인공의 손목을 강제로 붙잡아 폭력적으로 벽에 밀치고, 입을 맞추려 하는 남자주인공. 더 끔찍했던 것은 그다음 장면, 그 키스를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이며, 오히려 더 격정적으로 키스에 응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이 동영상의 '좋아요' 개수는 4만을 넘었다. 너무나 빈틈없이 가부장제를 구현해내는 것을 넘어, 관계에서의 동의(consent)의 의미를 단 한 신 만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내는 연출력이란.

그리고 뒤이어 본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똥 밟았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또 오해영>의 시청률이 9%를 넘었다며 <미생>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내용의 매우 흔한 기사였다. 기사는 이 드라마가 평범함을 세심하게 연출하여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바로 그 분석이 내가 이 드라마를 그냥 똥으로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평범함을 소재로 삼았고, 그 평범함에서 시청자들이 공감을 얻고 있고, 심지어 그 평범함을 '세심하게 연출'하여 '공감을 이끌어냈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평범성일까, 거기서 공감을 얻는 시청자일까, 그 평범성을 이용해 공감을 끌어내는 연출 방식일까.

<또 오해영>이 그리는 평범함은 어떻게 이용되나

오해영(서현진)은 그리 예쁘지도 않고, 직장생활도 순탄치 못한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그녀가 삶에 있어서 거둔 유일한 성공은 '잘난'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된 것. 실제로 그녀는 그 남자를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결혼식 하루 전에 약혼자에게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다"며 파혼당한다. 파혼당하는 순간에도, 결혼을 깬 건 나로 해달라며 마지막 자존감마저 짓밟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오해영(서현진)은 자신의 밋밋한 삶을 고등학교 동창이자 자기와 이름이 같아 끊임없이 비교당했던 또 다른 오해영(전혜빈)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다면 또 다른 오해영(전혜빈)은 더 잘나고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일까.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던 트라우마가 있는 그녀는 그 상처를 숨기기 위해 주변 모든 사람에게 싱글싱글 웃기만 한다. 모두가 자신의 예쁜 외모와 완벽한 몸매, '인형'으로서의 모습에만 주목하니까 스스로 인형이 되어간다. (드라마 포스터에서 오해영(전혜빈)이 바비인형을, 오해영(서현진)이 못난이 인형을 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 오해영>의 그냥 오해영. 흙수저인 그녀를 소화하는 서현진은 굉장히 훌륭한 생활연기를 선보인다.

우리는 '두 오해영'의 아픔에 공감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 tvN


이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우리는 두 '오해영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내가 '그냥 오해영'에 가깝건, '예쁜 오해영'에 가깝건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되고, 외모 몸매 등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삶을 살고 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든 판국에 조금이라도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려 해도 남자 기죽으니까 너무 좋은 학력을 가지려 하지는 말라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는 삶에서 '성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빵빵한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이다. (내 삶의 성공이 배우자의 사회적 지위로 판단되는 것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가장 잔인한 구속이다)

바로 이 현실에 기인한 '평범성'에 기사는 초점을 맞췄다. 맞다, 이 드라마 속 오해영들의 아픔은 대한민국 여성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의 평범한 아픔'을 이 드라마는 어떻게 이용하고 있으며, 그 '아픔'을 소재로 이 드라마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드라마 '또 오해영'은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여자의 결혼 상대를 무너뜨리려 한 남자의 지질한 복수심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고(드라마 속에서 박도경(에릭)은 오해영(서현진)을 자신과 결혼해주지 않은 오해영(전혜빈)으로 착각해서 오해영(서현진)의 약혼자를 망하게 한다), 드라마 속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그 아픔의 이유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으며, 외모·몸매·학력·집안 등으로 누군가와 비교되는 그 자체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녀들의 아픔은 그저 평범성의 연출이나 로맨틱한 장면의 탄생을 위한 기제로 이용될 뿐이다. 여기서 나아가 여성 일반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억압, 그 '평범한 아픔'을 당연함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더 나아가, 그런 프레임을 만드는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 구조가 여성들을 상처 주는 본질이라는 사실은 은폐해버리고 있지 않나.

결국 어떤 시선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가의 문제

코르셋은 여성억압을 가리키는 클리셰한 상징이다. 이 코르셋이라는 비유로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 시선이 담아내는 소재나 장면들이 코르셋이고, 그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자신들도 그 코르셋을 입었기 때문이라면, 그 코르셋을 재생산해내는 시선이야말로 문제이지 않을까. 그 시선은 코르셋을 차는 것의 고통은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코르셋을 벗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해주기보다 어떻게 하면 코르셋의 불편함과 고통을 더 잘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대한민국 오해영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치유하려면 아픔의 인지, 다음으로 아픔의 이유 찾기, 마지막으로 치료방법 찾기의 과정을 거쳐야지, 그냥 마취약만 놓아주면 상처는 계속 곪는다. 이 드라마의 시선은 "아프지? 마취약 줄게"이다.

앞의 생각에서 이어지는 맥락에서, 그렇다면 기법적 세련됨을 어떻게 연마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떤 시선과 철학으로 기법을 연마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게 인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선의 전달만 세련되면 장땡인 게 아니라 어떤 시선을 전달할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철학을 갖고 연출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그저 연출만 잘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로서, 제작자로서 의무 방기일지도 모르겠다.

일말의 기대라도 해보자면 <또 오해영>은 전형적인 한국드라마와는 사뭇 다르긴 하다. '평범한 여자의 퍽퍽한 삶'을 소재로 쓰는 드라마는 많지만, '가난하지만 꿋꿋한 캔디형 여자주인공'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고, 그 퍽퍽한 삶에서 벗어나는 방식이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을 통한 게 아니라는 점도 그렇다. '그냥 오해영'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예쁜 오해영'의 고민도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 두 오해영의 삶 모두에 자기연민적 시선을 투영하는 연출도 기존 한국드라마들의 연출방식과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아직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으니, 남은 회차 동안 태세전환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영화 <매드맥스>나 <밀레니엄>처럼 구성과 연출기법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메시지까지 좋은 '고퀄리티'의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드라마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래서 조금의 기대를 해보려 한다. <또 오해영>은 내게 <밀레니엄>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아닐까.

나는 누구 말마따나,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이다. 열심히 지껄여서 나 같은 사람도 드라마를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세상이 오게 하고 싶다. "네가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보면 되잖아" 같은 말들을 들을 필요가 없고, 나도 "티브이를 보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연합 <페미디아>(femidea)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여성주의 드라마 또오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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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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