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강사에서 인문학 강사로 발을 넓힌 최진기가 결국 오류를 범했다. 오원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소개한 '파초'와 '군마도'가 다른 사람의 그림으로 밝혀졌고, 이로 인해 최진기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고 했다. 그의 강의를 방영한 OtvN <어쩌다 어른>은 다시보기를 삭제했다.

사람들은 최진기를 비난했다. '경제학 강사가 왜 인문학을 이야기하느냐?', '제대로 알고 강의를 하느냐?', '재미만 추구한 강의'라는 등의 비난이 인터넷을 달궜다. 아마도 최진기를 통해 조선 미술을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지나친 인신 공격형 댓글은 우려스러웠지만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과연 최진기에게 돌을 던지는 것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할까? 최진기의 잘못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논란에서 떳떳한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최진기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최진기에게 '속은' 사람이다. 최진기가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군마도'와 '파초'를 소개하고 그것을 '친일 화가'인 김기창과 그의 스승인 김은호의 그림과 비교하며 '우리의 미술을 친일 작가들이 망쳤다'라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그림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아마 <어쩌다 어른>을 본 이들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최진기가 장승업의 그림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장승업의 그림으로 '군마도'와 '파초'를 봤다. 인문학 강사, 방송을 타고 있는 인기 강사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는 당연히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봤다. 게다가 그 그림을 제시하며 친일 화가들을 비판할 때는 통쾌함도 느꼈다. 그게 나, 그리고 우리였다.

아무도 최진기의 강의를 지적하지 않았다. 최진기의 오류를 지적한 글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 정도로 '무지'했다. 우리는 최진기의 오류를 비판하는 동시에 왜 우리는 최진기에게 속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살펴야 한다.

최진기의 인문학 강의가 인기를 끌자 몇몇 사람들은 '인문학의 상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인문학이 '상품'이 되도록 걱정하는 이들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인문학에 제대로 다가서지 못했고, 인문학에 다가가려고 해도 '보이지 않은 벽'이 느껴졌다. 그리고 인문학을 자신들의 것으로 소유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오만까지.

우리는 '이것이 김홍도의 그림'이고 '저것이 신윤복의 그림'이고만 이해하려 했을 뿐, 그들의 그림이 왜 아름다운지, 왜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험에 나오니까, 그것을 외우기에만 집중했다.

게다가 그런 그림을 만날 기회를 만들지도 않았다. 않았다.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정선, 김정희…. 그들의 그림은 우리에겐 멀리 있었다. 아니,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림을 이해하고픈 마음조차도 언제부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인문학에 무관심했나

미술만 그럴까? 철학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채식주의자>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것이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사실 최진기의 강의는 우리가 한동안 도외시했던 한국 미술, 인문학을 우리의 수준에 맞게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공감을 얻어냈다. 어려운 이야기를 남발하는 '지식인들'에게 지쳐있던 우리에게 쉬운 이야기로 접근하며 '잘 보라'고 말하는 최진기의 강의는 분명 새로운 발견이었다.

최진기의 강의를 통해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 인문학이 왜 재미있는지를 알게 됐고, 이는 곧 인문학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 덧붙여 우리는 무지를 깨닫고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그 무지함이 결국 최진기 오류를 낳게 한 요인이 됐다.

최진기를 비판하고 최진기의 사과를 받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한국 미술에, 인문학에 무관심했는지 깨달아야 한다. '인문학의 상품화'를 비판하기 이전에 왜 인문학이 '상품화'가 되고 있는지,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인문학을 쉽게 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제2, 제3의 '최진기 오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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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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