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최초의 뮤턴트이자 엑스맨 사상 최강의 적수인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작)는 수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최초의 뮤턴트이자 엑스맨 사상 최강의 적수인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작)는 수천년의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엑스맨> 시리즈가 다른 슈퍼 히어로물과 차별화되는 건, 뮤턴트들이 남들과 다른 돌연변이로서 사회적으로 핍박받는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탁월한 능력을 질시하고 두려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기죠. 이 상흔은 시리즈의 주요한 내적 갈등 요소로 작용합니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2011)로 리부트되어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로 이어진 새로운 시리즈는 이런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에릭/매그니토'와 '찰스/프로페서X'의 입장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강력한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긴다는 이야기의 큰 뼈대와 얽히면서 영화 전체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죠.

그런데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이 영화 <엑스맨 : 아포칼립스>는 그 특유의 갈등 상황을 극에 녹여내지 못했습니다. 올해 앞서 개봉한 <슈퍼맨 대 배트맨 :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와 같은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의 차별성도 부족한 편입니다.

최고의 <엑스맨> 만들었던 제작진, 왜 이런 결과물을...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진 그레이(소피 터너), 사이클롭스(타이 셰리던), 나이트 크롤러(코디 스밋 맥피)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에 나왔던 캐릭터로서, 이번 영화에서 젊은 시절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진 그레이(소피 터너), 사이클롭스(타이 셰리던), 나이트 크롤러(코디 스밋 맥피)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에 나왔던 캐릭터로서, 이번 영화에서 젊은 시절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사상 최고의 <엑스맨>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전작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제작, 각본, 감독 등 주요 스태프가 같지만 이런 밋밋한 결과물이 나온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최초의 뮤턴트이자 사상 최강의 적수로 설정된 아포칼립스를 활용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멋들어진 도입부를 통해 그가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면, 그 이후에 등장할 때는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면서 위기감을 중폭 시켜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느슨하게 자기 수하를 모으고 세계 지배를 획책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말고요.

할리우드 일급 장르 영화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는, 모든 것이 앞뒤가 맞고 명백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관객이 실제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정황을 설명할 때입니다. 아예 앞뒤가 안 맞아 설명할 수 없는 한국 기획 영화들보다야 낫지만,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들까지 다 보여주려는 노력은 오히려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더욱 궁금해 하는 것은 닥쳐온 위기를 엑스맨의 주요 캐릭터들이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이지, 아포칼립스가 어떻게 강력해지느냐가 아니거든요.

또한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관련지을 만한 도드라진 내면적 이슈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주요 캐릭터들이 과연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뮤턴트로서 가지는 내면의 분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전체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리부트 시리즈가 비교적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인, 미국의 실제 역사에 엑스맨들이 개입했다는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무분별한 핵 개발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가 배경이라면, 엑스맨들의 활약으로 파국을 막았다든지 하는 식의 결말로 이어졌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시공간은 갑자기 무의미해지며, 엑스맨들이 멸망 직전에서 세상을 구원한다는 식의 분위기를 풍기며 판을 벌입니다. 마치 <어벤저스> 시리즈의 마지막 대결 부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지요.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두 시간

플롯이 개별 캐릭터가 처한 상황의 아이러니나 내적 고민과는 별 관련 없이 진행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외형적인 사건들의 연쇄가 캐릭터의 내면적 갈등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속에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지 못합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 내용을 요약해 달라고 하면 '이러이러한 악당이 등장했는데 어찌어찌해서 이겨'라고 이야기할 텐데,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그 간단한 한 문장이 두 시간이 넘는 영화 전체를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에 담아둘 만한 게 없다는 거죠.

이 영화의 시각 효과와 액션 장면은 여전히 뛰어나고,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깨알 설정들'이 팬 서비스로 가득 들어가 있습니다. 앳된 진 그레이와 사이클롭스, 나이트 크롤러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지요. 퀵 실버 역시 특유의 유쾌함을 선사합니다. 그런 장면들은 충분히 봐줄 만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했던 엑스맨 리부트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의 무게감은 좀 떨어집니다. 이 작품 이후 청소년 뮤턴트(뉴 뮤턴트)들을 등장시킨 새로운 엑스맨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내적 갈등이 심한 나잇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쪽이 좀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엑스맨 : 아포칼립스>의 포스터. 이전작들에서 잘 쌓아왔던 세계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엑스맨 : 아포칼립스>의 포스터. 이전작들에서 잘 쌓아왔던 세계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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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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