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남포동에서 독립영화인들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려했다. 이때 이를 막아선 당시 이용관 한국영화프로그래머(오른쪽)가 경찰 관계자와 설전을 벌이고 있댜.

1997년 10월 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남포동에서 독립영화인들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려했다. 이때 이를 막아선 당시 이용관 한국영화프로그래머(오른쪽)가 경찰 관계자와 설전을 벌이고 있댜. ⓒ 부산영화제


1997년 10월 14일 오후, 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남포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독립영화인들의 검열 철폐 및 표현의 자유 요구 시위가 예정되면서 경찰병력이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카데미극장에서 시작한 독립영화인들의 시위는 200m를 행진해 남포동 광장으로 들어섰다. 곧바로 경찰 지휘관이 나타나더니 불법시위라며 자진해산하지 않으면 강제해산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다. 영화제가 자칫 아수라장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경찰 지휘관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용관 당시 한국영화프로그래머였다. 그는 경찰을 막아섰다.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다. 영화제 야외무대 행사와 다름없는 영화제의 일부다. 그러니 경찰이 간섭하지 말라."

어이없이 바라보던 경찰 지휘관은 거듭 불법시위와 강제해산을 강조했으나 이용관 프로그래머는 "왜 영화제 행사에 경찰이 개입하느냐, 그냥 놔두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독립영화인들의 시위는 보호될 수 있었고, 초창기 부산영화제 독립성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

지난 24일 부산 센텀시티의 동서대학교 학장실에서 만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 내내 그 20년 전처럼 단호했다.

[인터뷰 ①] "내 입장은 하나,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정관 개정"
[인터뷰 ②] "권력이 무능하면 쳐내면 된다, 언제부터 영화제가 눈치꾼 전락했는가"

1997년과 2016년 : 20년을 뛰어넘는 단호함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와의 문제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왜 이렇게 섣부른 타협을 했는지 이상스럽다"며 "자신이 무능하고 부덕한 사람이라는 자괴감만 든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해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우동 동서대 센텀캠퍼스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영화제에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정관 개정없이 조직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와의 문제에서 김동호 조직위원장이 왜 이렇게 섣부른 타협을 했는지 이상스럽다"며 "자신이 무능하고 부덕한 사람이라는 자괴감만 든다"고 말했다. ⓒ 유성호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정관개정이 있지 않는 한 영화계가 보이콧을 철회하면 안된다, 그게 부산영화제를 살리는 길이다"라고. 초창기 경찰의 영화제 개입을 막아냈던 각오가 엿보였다. 비록 지금은 권력의 탄압으로 물러났지만, 힘들게 키워냈던 부산영화제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던지겠다는 결심이 굳건해 보였다.

박근혜 정권의 문화융성정책에 대한 비판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는 정치적 간섭과 탄압에 대해 "영화제뿐만 아닌 문화예술계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사안 아니냐"며 대외적으로는 문화융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 정권을 날 서게 비판했다. 히틀러도 문화융성을 말했으나 전 세계 미술품을 강탈해 갔다며 현 정권의 문화정책을 나치의 그것에 비유하기도 했고, 부산시가 대외적으로 강조한 영화제 개혁과 쇄신에 대해서도 "실체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라고 되받았다. 스스로가 "예전보다는 많이 약해졌다"고는 했지만, 영화제 초기 독립성을 위해 정치인과 멱살잡이를 하고 몸싸움도 마다치 않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부산영화제 사태에서 영화인들이 요구해온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정관개정을 통한 독립성 보장'이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채 마치 김동호 조직위원장 선임과 맞바꾼 모양새가 되면서 문제가 꼬여버렸다.

이 전 위원장에 따르면, 정관 개정의 핵심은 현재 부산시와 영화제가 17:1 비율로 구성된 조직위원회를 당연직 조직위원을 없애고 영화제 측 추천 8명과 부산시 추천 7명 정도로 구성해 신임 조직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안이었다. 그는 "정관 개정이 이뤄진 다음에 김동호가 오면 어떻고 안성기가 오면 어떠냐"며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김동호 신임 조직위원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영화계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영화제 보이콧을 결의한 영화계의 마음이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 중심점에 이용관 전 위원장이 있다.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대표는 "보이콧을 결의한 한국영화의 대오가 흔들린다면 서병수 부산시장을 도와주는 일"이라며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일부 영화커뮤니티에서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이번에 가오가 거덜났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돌파구를 찾는 듯했던 부산영화제 사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다시 원점

 1992년 페사로영화제에 참석한 영국의 평론가 토니레인즈,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전양준 부위원장, 이용관 전 위원장. 이 자리는 4년 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주곡과 같은 시간이었다.

1992년 페사로영화제에 참석한 영국의 평론가 토니레인즈,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전양준 부위원장, 이용관 전 위원장. 이 자리는 4년 뒤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주곡과 같은 시간이었다. ⓒ 부산국제영화제


인터뷰 내내 열변을 토하는 이용관 전 위원장의 얼굴에서는 분노와 회한, 서운함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1992년 페사로영화제는 30대 후반이었던 그가 영화계 동생들(전양준 부위원장,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과 함께 부산영화제의 꿈을 키운 시간이었다. 그 후 영화제가 시작된 1996년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 이용관과 부산영화제는 한 몸이었다. 그런 그가 영화제에서 강제로 떨어져 나왔다. 왜 복잡한 감정이 들지 않겠는가.

그 모든 것을 뒤로한채, 자신이 마지막으로 영화제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봉합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싸우는 것이라고 그는 판단하는 듯 했다. 젊음을 바쳐 이뤄낸 영화제가 정치권력의 횡포에 만신창이가 된 것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한명이 길목을 튼튼히 지키면 수만이라도 지나지 못한다고 했던가. 김동호 조직위원장만 받는 것으로 정관 개정을 미루려던 부산시의 계획이 뜻대로 될지 미지수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빠져나갈 길이 열리는 듯 했지만, 이용관 전 위원장이 앞장서 막아서는 모양새다.

그의 무기는 역설적으로 자식과도 같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올해 영화제가 개최되면 그 기간 중에 출장을 갈 계획"이라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동서대 센텀 캠퍼스는 영화의 전당 바로 앞이다.

부산영화제 논의하는 김동호-서병수-강수연 부산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조직위원장을 맡는다는 조항을 의결해 폐지했다.
이어 조직위원회는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추대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을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 부산영화제 논의하는 김동호-서병수-강수연 부산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조직위원장을 맡는다는 조항을 의결해 폐지했다. 이어 조직위원회는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서병수 전 조직위원장이 추대한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을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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