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청소년은 학업으로 인해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의 자유를 내려놓고 하염없이 공부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푸를 청'이라는 한자의 의미와 맞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특정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재능과 끼를 알림으로써 참된 청소년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을 소개 할 예정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글을 보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꿈들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란다. [편집자말]
2015년 7월 25일, '로드FC 024 IN JAPAN'이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당시 만 16세로 링에 오른 이예지 선수였다. 이종격투기를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이 선수의 데뷔전 상대는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 시나시 사토코였다. 수많은 관중들의 관심 속에 둘만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머지않아 사람들의 우려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접전 끝에 패하긴 했지만 팬들의 박수갈채는 마치 새로운 스타를 반기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어린 학생이 아닌 프로선수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한 경기면 충분했다. 대략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더욱 성장한 이예지(17) 선수를 만났다.

ROUND1. 여고생 티를 벗어 던지고 케이지에 들어서다

이예지선수(18) 5월이지만 약간은 더운 날씨에 강원도 원주 ‘제이킥 짐’에서 이예지 선수를 만났다.

▲ 이예지선수(18) 5월이지만 약간은 더운 날씨에 강원도 원주 ‘제이킥 짐’에서 이예지 선수를 만났다. ⓒ 유종현


데뷔전은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원래 출전해야 했던 선수가 못 뛰게 되어 대신 그 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이종격투기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된 그녀의 상대는 36전 32승 2무 2패에 달하는 일본 여자 격투기의 전설이었다. 이 무모할 것 같은 경기를 이예지 선수는 자신의 데뷔전으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에는 아마추어였고 시합 경험도 적었죠. 비록 갑작스럽게 대타로 나가는 거였고 상대 역시 매우 강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출전하게 됐어요."

모두들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예지 선수는 그라운드 기술, 그 중에도 암바 기술이 장기인 사토코에게서 3번이나 암바를 풀어내고 여러 번의 공격을 방어하는 등 경기 내내 근성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였고, 심지어 여러 차례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경기종료 10여 초를 남겨두고 패하고 말았다.

"그때는 처음 데뷔하는 경기이기에 잃을 것도 없었고 사람들에게 보여드릴 것도 없었어요. 상대가 워낙 베테랑이셔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 홀가분했어요."

그 당시 많은 팬들과 해설자는 아쉬움을 자아내었던 반면, 정작 그는 강한 상대에게서 끈질기게 버텨낸 자신이 대견스러우면서도 데뷔전을 치러낸 개운함도 들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몇 달 후인 2016년 3월 12일 자신의 홈인 원주에서 이예지는 드디어 일본의 시모마키세 선수를 상대로 단 1라운드 3분 49초 만에 암바로 이겼다. 데뷔 첫 승이다. 1년 반 동안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린 뒤 만든 값진 승리다. 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켰지만 정작 이예지는 다소 아쉬워 했다.

"아마추어 때부터 4번의 패배를 했었는데 여태까지 진 것에 비해 너무 쉽게 첫 승을 따낸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뭔가 허무한 감정도 들었어요. 사실 조금 더 극적으로 첫 승을 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좀 아쉬워요. 하지만, 경기 이후에 많은 지인 분들이 먹을 것도 많이 사주시고 축하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모두가 기뻐할 첫 승에서 내심 아쉬움도 있었다는 그의 말에 확실히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첫 승을 따낸 이예지는 케이지 안에서 다른 선수들, 다른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ROUND2.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정신력!

이예지선수의 첫 승(20160312) 지난 3월 12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시모마키세 선수와의 시합에서 1라운드만에 첫 승을 거머쥐었다. (출처: 로드FC)

▲ 이예지선수의 첫 승(20160312) 지난 3월 12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시모마키세 선수와의 시합에서 1라운드만에 첫 승을 거머쥐었다. (출처: 로드FC) ⓒ 유종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예지 선수가 비슷한 나이 대에 청소년들에 비해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멘탈'이었다. 실제로 이 선수의 스승인 전찬준 관장은 실제로 한 방송 인터뷰에서 "무언가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력과 강자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라며 "이예지 같은 선수가 몇 명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 육상대회 같은 다른 대회 때도 잘 긴장을 안 했는데 이종격투기 시합 때 긴장을 더 안 하는 것 같아요. 처음 2번의 경기를 일본에서 했을 때도 별 긴장을 안 했고 첫 승을 땄던 3번째 경기에서는 케이지 올라가기 전에 '빨리 끝내고 싶다'란 생각도 들고 좋은 느낌이 나서 슬금슬금 웃음도 나더라고요. 아니다 다를까 올라가서 1라운드 만에 이기고 내려왔죠. 하하."

10년 넘게 한 종목에서 활동해도 시합에 들어가면 긴장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 작은 대회도 아니고 세계적인 대회에서 보여주는 이 선수의 멘탈은 이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게 했다. 그의 멘탈을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으니 바로 첫 승 직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다. 이예지는 "강자들과 싸우는 건 언제나 환영"이라는 말을 했다. 이제 막 3경기를 치른 10대 선수로서는 정말 놀라운 패기였다.

"이때까지 붙은 상대들이 다들 베테랑이셨는데 그 선수들과 시합했을 때 제가 얻은 것들이 더 많아요. 그런 분들을 경험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운동선수에게 멘탈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멘탈 하나로 질 경기를 역전할 수 있고 이기던 경기도 한 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 앞으로 이예지의 이런 강한 멘탈은 그녀에게 엄청난 무기가 될 것 같다.

ROUND3. 케이지 밖에선 평범한 여고생

이에지선수 동상이몽 출현 작년 10월 3일 SBS ‘동상이몽’이란 프로그램에 출현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출처: SBS)

▲ 이에지선수 동상이몽 출현 작년 10월 3일 SBS ‘동상이몽’이란 프로그램에 출현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출처: SBS) ⓒ 유종현


케이지 안에서만큼은 프로 이종격투기선수일지라도 밖에선 평범한 여고생들과 다를 바가 없다. 똑같이 피곤한 일상을 살아가고 취미를 즐기며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이예지 선수는 "항상 늦게 훈련이 끝나서 아침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학교에서 졸지 않고 수업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훈련 때문에 많이 피곤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졸긴 하지만 체육 같은 예체능 과목들은 열심히 참여하고, 다른 과목들도 최대한 잘 들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이해하는 데에 좀 힘든 면도 있지만요(웃음)."

매일 자정까지 고된 훈련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지친 몸으로 등교를 하는 것, 고등학생으로서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래도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피로를 푼다. 과연 이예지 선수는 훈련을 쉬는 날엔 무엇을 할까?

"제가 주중에는 부모님이 아닌 관장님과 사촌언니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관장님은 이예지 선수의 형부다) 때문에 주말엔 집에 들어가서 쉬거나 친구들과 놀러 다녀요. 주로 강원도 시내에서 쇼핑하고 밥도 먹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카페에 가서 수다도 떨고, 다른 평범한 친구들하고 똑같아요. 그리고 작년부터 날씨가 선선할 때는 보드를 타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 바빠서 얼마 타진 못한 거 같아요."

평범한 학생들은 지금과 다른 특별한 삶을 지내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학생들은 평범한 학생으로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을 것이다. 이 선수는 주말이 아니면 훈련 때문에 거의 놀지 못하고 주말에도 자신의 피로를 푸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한창 밖에서 뛰어 놀고 싶을 시기에 이 선수는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을까.

"예전에는 훈련을 쉬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쉬고 싶은 생각이 심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생각들을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친구들이 시험이 끝나고 나서 몰아서 노는 것처럼, 저도 시합기간엔 열심히 하고 끝나고 못 놀았던 것을 다 풀려고 해요. 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일이 7월 달인데 항상 친구들이 시험기간이고 저도 시합준비기간이라서 매번 대충 보내는 것 같아 아쉬워요."

FINAL ROUND. 이종격투기선수이자 딸 이예지로

이종격투기란 종목은 아무래도 맞고 때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항상 부상의 위험이 높다. 한 시합이 끝나고 다음 시합까지 몇 달 간 쉬는 이유는 선수 보호 차원의 목적도 있다.

"저도 다른 선수들처럼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죠(웃음). 예전에 다친 한쪽 발목부분에 아직도 후유증이 있고 반대쪽 발목도 위험한 상태고 어깨나 손목 같은 부위도 자주 다쳐요. 주로 한의원에 가서 치료하는데 계속 다치니 잘 낫지 않더라고요."

지난해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한 그는 긴 머리를 자르지 않는 이유로 "여고생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쓸 때인데, 훈련이나 시합에서 다쳐서 자신의 얼굴에 멍 자국을 보면 속상하지 않을까?

"얼굴에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날 때가 많지만 놀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다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저에겐 일종의 훈장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아요. 오히려 부모님께 죄송하죠.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는데 다쳐서 가면 부모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게 보이거든요. 안 다치려고 노력하지만 다치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과연 자신의 자녀가 격투기 종목을 하고 싶다고 할 때 걱정 안 할 부모님이 있을까? 소중한 딸이 남에게 맞고 온다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이 선수도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 부모님에게 다친 모습을 보여주는 자신도 참 답답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선수는 부모님께 시합해서 맞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더욱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프로 첫걸음, 목표는?

이예지 동상이몽 출현 2 SBS ‘동상이몽’에 출현해 자신의 솔직한 마음들을 털어 놓았다. (출처: SBS)

▲ 이예지 동상이몽 출현 2 SBS ‘동상이몽’에 출현해 자신의 솔직한 마음들을 털어 놓았다. (출처: SBS) ⓒ 유종현


이 선수가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대략 1년이 되어간다. 비록 갑작스럽게 선수가 되긴 했지만 어느덧 첫 승도 챙기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선수생활을 계속 해 나가는데 목표는 무엇일까?

"이종격투기 자체에 발을 들인지 2년 밖에 안됐고 프로선수 기간도 더 짧아 최종목표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3전 1승 2패인데 승률이 높이는 것이 현재의 목표인 것 같아요. 팬 분들께 이기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렇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많은 팬 분들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잘 걷지 않는 길이지만, 다른 청소년들보다 일찍 진로를 잡고 매일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이예지 선수는 꿈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조언의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공부가 됐든 무엇이 됐든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지 마세요. 지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나아가세요. 남들에게 이끌려 가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훨씬 더 값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모두들 커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예지 선수처럼 꿈을 갖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이다. 꿈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고 이들도 있고, 남보다 느리게 다가가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아직 꿈을 찾고 있어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누가 꿈에 먼저 도착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도착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 주저앉아도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다시 일어나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 자신들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향한 기대감을 주는 것보단 묵묵히 뒤에서 격려를 해줘야 한다. 기대감은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부담감을 짊어지게 하지만 격려는 지친 그들에게 미소를 짓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잘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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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유종현 시민기자는 청소년으로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인고등학교 BNS(신문기자부)의 기자입니다.
청소년 이종격투기 로드FC 고등학생 이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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