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 대한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

김찬호 대한배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 ⓒ 박진철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가 26일 리우 올림픽 본선에 나갈 최종 엔트리 12명의 명단을 발표하자 해당 기사에 댓글이 700개가 넘게 달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전의 대표팀 명단 발표 때의 덤덤한 반응과 비교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아이돌 팬클럽 간의 대결을 연상케 하듯, 각자 응원하는 선수가 올림픽 본선에 가야 한다는 논리 대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선수가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여자배구에 관심이 급증한 것은 지난 22일 끝난 리우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선전 때문이다. 대중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도 많았다.

김연경이라는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 공격수의 활약상,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본(세계랭킹 5위)에 통쾌한 승리를 거둔 것이 컸다. 유럽 강호 네덜란드를 완파하면서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했다. 다른 구기 종목들이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거 실패하면서 여자배구에 관심도가 집중된 측면도 있다.

일본의 여자배구 열기는 더 대단했다. 이번 세계 예선전 일본 팀의 전 경기에 1만여 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고, TV 중계 시청률도 10%대를 넘겼다. 일본의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된 경기인 일본-이탈리아전(TBS)의 시청률은 무려 20.4%에 달했다. 한국-일본전(후지TV) 시청률도 13.5%를 기록했다. 웬만한 인기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을 정도로 일본 국민들도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여자배구를 지켜본 것이다.

한국 여자배구가 기대 이상의 선전과 흥행을 거둔 것은 여러 가지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선수들이 흘린 땀과 올림픽에 대한 강한 의지, 그리고 감독 등 코칭 스태프의 철저한 분석과 대응이 잘 어우러진 것이 가장 큰 요소이다.

그러나 이들을 뒷받침해준 배구계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세계 예선전에는 그동안 '지원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온 배구협회의 숨은 노력이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도 "배구협회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원을 잘 해주셔서 선수들도 사기가 많이 올랐다"고 말한 바 있다.

배구협회 '혁신 성과' 나타나나

실제 이번 대표팀과 동행한 스태프 인원이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예선전 때보다 대폭 증원됐다. 규정상 한국 배구협회가 전적으로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정원 밖 스태프'만 8명이 동행했다.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이 4000여만 원이 소요됐다. 그 뿐이 아니다. 배구협회 차원의 격려금(2000만원)까지 전달했다. 배구협회가 국제대회 나가기 전에 대표팀에게 거액의 격려금을 지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배구협회는 오는 6월 월드리그에 출전하는 남자배구 대표팀 지원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다만, 여자배구와 달리 부상 선수가 많고 핵심 선수가 대거 빠진 것이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는 6월에는 남자 청소년(U20) 대표와 여자 청소년(U19) 대표가 중국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한다. 성인 국가대표가 아닌 청소년 대표팀이 해외 전지훈련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이전 같으면 엄두도 내기 힘들었던 일이기도 하다. 배구협회의 현 집행부가 국가대표팀 지원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V 펀드 모금운동으로 미리 대비하고, 올림픽 예선전 지원 단장과 스폰서 등을 구하기 위해 발로 뛴 결과다.

배구협회는 지난해 5월 박승수 회장, 신만근 전무, 김찬호 경기력향상위원장 체제의 현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대표 운영 등과 관련해 대대적인 혁신에 돌입했다.

핵심은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를 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남자배구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4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한 좌절을 거울삼아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남녀 모두 출전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남자배구 대표팀을 세계적인 흐름인 스피드 배구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지난해 10월 고교·대학 14명의 장신 유망주들을 대거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진천 선수촌에 소집해 한 달 동안 스피드 배구 특별훈련을 실시했다. 오는 9월 열리는 아시아배구연맹(AVC)컵 대회에는 이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하고, 훈련 기간도 넉넉하게 잡아서 출전시킬 방침이다.

여자배구도 리우 올림픽이 끝나면 중·고등학교 유망주들을 대거 선발해 내년 1월부터 남자배구와 함께 겨울철 특별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배구협회의 이런 방안들에 대해 배구팬들도 좋은 반응을 보이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장기간의 체계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시해야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배구협회에서 국가대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김찬호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최근 현안에 대한 의견과 구상을 들어봤다. 경기력향상위원회는 남녀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선발하고, 국가대표 운영 방안 마련과 지원 등을 총괄하는 곳이다.

아래는 김찬호 위원장과 일문일답이다.

"배구계 전체가 유망주 발굴·육성에 주인의식 가져야"

- 여자배구 리우 올림픽 본선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면서 배구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으로 반응이 뜨겁다. 어떤 기준으로 12명을 최종 선발했나.
"배구협회는 이정철 감독이 세계 예선전을 치르고 왔고 좋은 성과도 냈기 때문에 감독의 의견을 가장 크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 감독이 최종 12명을 선정하면서 고심이 많아 보였다. 부득이 제외되는 선수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저에게도 상의를 해왔지만, 제가 한 말은 딱 한 가지였다. 올림픽 본선에서 세계적인 강팀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인지만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 기준 이외에 다른 사항은 일체 고려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감독이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배구협회는 절차에 따라 승인 과정을 밟아갈 것이다. 향후 훈련 과정에서도 배구협회는 감독과 선수단이 원하는 대로 지원해줄 방침이다. 7월 중순경 초청 경기 또는 전지 훈련 등과 관련해 현재 몇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또 섭외 중이다."

- 현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대표 경쟁력과 특히 유망주 발굴·육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반드시 남녀 모두 출전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선수가 금방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나와 있는 중·고등학교 장신 유망주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잘 관리하고 지원을 해줘야 한다. 체력 관리와 재활 시스템 등이 열악한 학교 시스템에만 맡겨 놓으면 대학교, 프로 갈 때쯤 되면 부상 등으로 기량이 떨어지거나 성장이 멈춰버려 국가대표는커녕 소속 팀에서도 큰 활약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는 유럽·남미 선진국처럼 파워와 스피드를 갖춘 장신 공격수나 공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를 키워낼 수 없다.

여자배구도 지금부터 '김연경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예컨대 광주체육중학교의 정호영 선수는 키가 189cm나 되는데도 센터와 레프트를 모두 소화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의 어린 나이와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리시브 등 수비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백어택도 한다. 점프와 체공력이 좋기 때문에 국가대표 장신 레프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말 귀한 자원 아닌가. 선명여고 1학년의 박은진도 187cm로 장신 센터다.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다.

이런 선수들은 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지금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를 잘 해주고 국가대표로도 선발해서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어떻게 제2의 김연경이 나올 수 있겠는가. 물론 배구협회만의 노력으로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배구협회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프로 팀을 관장하는 한국배구연맹(KOVO)도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신 유망주들이 국제무대에서 맹활약하고 대형 스타로 성장하면, 흥행 면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KOVO 아닌가. 유소년 배구 육성에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지만, 지금 나와 있는 유망주들을 키워내는 것도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스피드 배구 특별훈련은 계속 하는가.
"계속할 방침이다. 실제 체력 관리와 기본기 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내년 1월부터는 남자배구는 물론 여자배구도 중·고등학교 유망주들을 국가대표로 발탁해 진천 선수촌에서 특별훈련을 실시할 생각이다. 대한체육회와 상의해서 기간도 올해보다 좀 더 길게 잡을 계획이다.

제가 언제까지 경기력향상위원회를 맡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임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중·고·대학의 유망주를 발굴하고 키우는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것만이 국가대표 경쟁력을 높이고, 아마추어 배구와 프로배구가 상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배구가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배구인들 전체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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