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트스 서혜경

피아니트스 서혜경 ⓒ 유니버설뮤직


"쳐드려요? 잠깐 쳐드릴게요."

말로 설명하기 힘들 땐 곧장 건반으로 달려갔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수줍은 소녀 느낌의 연주는 어떤 것인지, 어릴 때의 연주와 지금의 연주는 어떻게 다른지 직접 건반으로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앨범 발매를 기념해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풍월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가 시작되자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일부를 연주했고, 이어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나눴다.

모차르트의 슬픔에 서혜경이 반응할 때

서혜경의 모차르트는 템포가 느렸다. 슬픔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모차르트는 기쁘고 경쾌하다고 많이 생각하시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엔 일상의 아픔과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 전보다 성숙한 음악가가 된 지금,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앨범을 내게 됐습니다."

기자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열정 넘치는 서혜경을 보고, 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는 밝고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혜경은 불행한 삶을 살았던 모차르트의 생애와 그때 느꼈을 '한 인간'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오며 느꼈던 다양한 결의 슬픔들로 모차르트의 곡을 해석하고 연주했다.

서혜경은 "모차르트는 어릴 적에 치든지, 나이 들어 성숙해서 연주하든지, 둘 중 하나"라며 "중간(나이)에 치긴 힘든 곡"이라고 말했다. 어릴 땐 모차르트의 곡이 갖고 있는 기쁨에 집중해 경쾌하게 연주하지만, 나이가 들어선 모차르트의 아픔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가까워져 연주가 완성된다는 의미다.

서혜경은 모차르트 음악이 슬픔에 겨워하다가도 마지막엔 결국 "라이프 이즈 굿(Life is good)"으로 끝나는 긍정성을 지녔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생활 속 감정을 연주하다

 피아니스트 서혜경

서혜경은 피아니스트이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아이들이 다 큰 지금에서야 때가 됐다고 느껴 모차르트 음반을 발매했다. ⓒ 유니버설뮤직


예술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의 삶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서혜경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서혜경은 이 질문에 "굉장히 그 변화(결혼과 육아)가 힘들었다"며 운을 뗐다.

"음악가들 중에 아이를 낳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저는 아이들에게 손수 젖을 먹이며 직접 다 키웠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엄마가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보다 자기 옆에 있는 것이었고, 그럴 때 현실적인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였다. 모차르트는 자식이 6명이었지만 4명이 죽었고, 아이가 죽을 때마다 대곡으로 아픔을 표현했다. 서혜경은 모차르트의 그런 마음이 구구절절 이해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폭발하는 화산의 용암이라고 하시던데 애들한테는 그런 내가 안 통했다. 애들한테 허락 맡아가면서 연주회를 해야 했다. 일단 아이가 먼저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성숙해졌고, 그것이 성숙한 음악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이제 두 아이 모두 잘 자라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 앨범을 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서혜경은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과 교직생활 하며 힘들었던 때의 감정, 기뻤던 감정을 연주 안에 담아내면서 더 깊고 풍부한 연주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예술인 서혜경'과 '생활인 서혜경'은 별개가 아닌 하나였다.

"클래식, 인간의 감정을 모두 만족시키는 유일한 음악"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서혜경은 "들어서 좋으면 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클래식은 듣기에 좋고, 더군다나 "클래식 음악만큼 인간의 영혼을 움직이는, 마치 하느님의 언어 같은 음악은 없다"고 확신했다.

"연주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두 시간 동안 말 없이 앉아있지 않나. 두 시간 연설을 듣는 것도 지겨운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건 클래식이, 언어가 필요 없을 만큼 모든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귀가 멀었을 때 그 시련을 극복하고 쓴 곡을 들어보라. 인간의 깊은 감정이 거기 다 들어있다. 인간의 감정을 다 만족시키는 언어는 클래식 음악 밖에 없는 것 같다."

서혜경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2010),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전집(2012)에 이어 세 번째 피아노 협주곡 앨범으로 이번에 모차르트 연주를 선보인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강점인 황금빛 피아노 톤과 풍성한 음색을 통해 우아한 연주를 들려준다.

지난 10일 발매한 이번 앨범엔 전설적인 원로 지휘자 네빌 마리너 경과 ASMF(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가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서혜경은 이번 모차르트 협주곡 19, 20, 21, 23의 녹음 파트너로 노장의 지휘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네빌 마리너 경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 내재한 인간미와 섬세함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정평 있는 모차르트 해석자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모차르트 음악이 가진 '슬픔 가운데의 기쁨, 기쁨 가운데의 슬픔'에 주목한다. 모차르트의 핵심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그의 연주가 기대된다. ⓒ 유니버설뮤직



서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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