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오인혜는 지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숱한 화제를 모았다. 파격적 노출의 붉은 드레스로 대중들에게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다 꽃을 선택했다. 꽃은 그녀가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가 파하면 줄곧 꽃집에 가서 아르바이트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고, 힘든 시간도 힐링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도약하고 있는 그녀를 드림스톤 사무실에서 지난 4월 22일에 만날 수 있었다.

영화, 부산, 드레스, 꽃 그리고 오인혜

영화배우 오인혜 잠시 쉬면서 플로리스트가 된 그녀. 그녀에게 2011년 BIFF는 어떤 의미일까.

▲ 영화배우 오인혜 잠시 쉬면서 플로리스트가 된 그녀. 그녀에게 2011년 BIFF는 어떤 의미일까. ⓒ 남유진


- 플로리스트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건가요?
"바쁘게 일하다가 갑자기 쉬니까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뭘 할까 생각하다가 어렸을 때 꽃으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어요. 학교 끝나면 교복 차림으로 꽃가게 가서 저녁 타임에 꽃 만들어서 팔고 했거든요. 이걸 하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학원에 이름도 바꾸고 모자 쓰고 6개월을 다녔어요.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모른 척 한 분들도 계셨더라고요. 후에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고요."

- 꽃디자이너로서 솜씨는 어떤가요?
"솜씨는 아직 그렇게…. (웃음)"

- '오인혜'하면 부산국제영화제 드레스가 따라다니는데, 그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일단 여기까지 오게 해준 건 그 당시 그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니 도움이 됐죠. 지금은 약간 이미지 탈출하는 데 있어서 그 부분이 문제 아닌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오히려 그걸 없애려고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받고 갇혀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드레스는) 그냥 항상 갖고 가는 몫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좋은 것을 (스스로) 더하는 게 나은 방법인 것 같아요."

- 꽃을 다듬는 오인혜를 보고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나요?
"여기가 회사 겸 카페 겸 돼 있어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어오신 분들이 저 보고 많이 놀라세요. 꽃 주문 들어와서 일하게 되면 밤을 새우거든요. 되게 힘든 노동이라서 보통 청바지에 슬리퍼 신고 그렇게 일해요. 제가 워낙 내숭 떨고 하는 성격이 아니고 솔직한데 저와 완전 반대적인 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방송에서 비쳤던 제 모습과 실제 제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 플로리스트로서 느끼는 꽃의 아름다움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정말 꽃은요, 저는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데 호흡을 같이하는, 생명이 있는 거잖아요. 꽃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가지 칠 때도 "이걸 어떻게 쳐요?" 이랬어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안타깝고 불쌍하고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과감하게 쳐야 하긴 해요."

- 재능기부를 해본 적 있으세요?
"많이 했었어요. 어쨌든 저도 배우는 과정이니까 보수 없이 고아원 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했었거든요. 원예치료…. 움직이기 힘들고 불편한 친구들이라서 걱정 많이 했거든요. 따라갈 수 있을까? 근데 집중하면서 잘하는 거예요. 기관에 있는 선생님들도 처음 해봤는데 너무 반응이 좋았다고 해요. 그 친구들이 나중에 엽서나 이런 거 사진 찍어서 보내주고 또 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인연이 되니까 기분 되게 좋더라고요."

"가진 게 많은 사람만이 나누는 것 아니다"

오인혜의 작업 배우 오인혜까 직접 만든 작품.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그리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 오인혜의 작업 배우 오인혜까 직접 만든 작품.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그리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 남유진


- 3월 매화축제에서도 꽃 관련 강좌를 하셨어요.
"매화축제니까 매화가 주인공이잖아요. 대표님이 매화꽃을 주셨죠. 오시는 관광객분들 추억거리 삼았으면 하는 마음에 무료로 오시는 분들한테 강좌를 하는 거죠. 눌러서 압화하는 게 있거든요.

이건 강좌 받는 분들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어요. 원하시면 선착순으로 하는 거였는데 속으로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사실 많이 했었어요. 근데 우려와는 달리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연령대도 다양하게 아이부터 엄마, 연인까지, 그걸 알려드리면 함께 따라 하고 하는 순간이 되게 행복했어요. 내가 이걸 즐기고 있구나 싶었어요.

이것도 영화가 아닌 다른 거로 사람들과 소통한 거잖아요. 배우 오인혜란 이름을 걸었기 때문에 알아봐 주시고, 거기서 오랜만에 소통하면서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졌던 것 같아요."

- 연기자로서 힘들 땐 언제인가요?
"연기자는 매일매일 힘든 것 같아요. 기다림의 연속인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을 거로 생각해요. 큰 배우든 작은 배우든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연기를 안 한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을 정도거든요. 꿈을 잃지 않고 항상 준비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만약 오인혜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제목을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요?
"오인혜스럽다? 좋다! 오인혜스러운 건 오인혜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차가운 이미진데 사실 아니거든요. 진짜 솔직하고 털털하고 밝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해요."

- 앞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느 쪽으로 하면 좋을까요?
"일단 꽃으로 재능기부 하는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아니면…. 섬마을 같은 데 들어가면 어떤 분들은 빨래도 해주시고 치료도 해주시고 하잖아요. 저는 일단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으니 의료진들과 같이 병원 봉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 나아가자면 몽골이나 캄보디아처럼 우리나라보다 더 힘든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돌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오지도 좋고, 섬마을도 좋습니다."

- 오인혜가 꿈꾸는 따뜻한 세상은 무엇인가요?
"가진 게 많은 사람만이 가진 게 적은 사람을 도와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꽃이란 봉사 명분이 생겨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건 실천의 문제거든요. 크게 대단한 게 아니어도 사람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취미생활이긴 하지만 큰 도움을 얻고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내가 가진 어떤 것이든 나눌 수 있는 게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오인혜 플로리스트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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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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