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 스트리트>의 한 장면 1980년대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성격을 띄고 있다.

▲ 영화 <싱 스트리트>의 한 장면 1980년대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성격을 띄고 있다. ⓒ (주)이수C&E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싱 스트리트(Sing Street)>가 개봉되었다. 다음 작품이 또다시 음악 영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원스(Once)> <비긴 어게인(Begin Again)>에 이어 <싱 스트리트>까지 이른바 '음악 3부작'이 구성됐다.

물론 이들 세 작품이 3부작의 울타리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세 작품이 모두 음악 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임에도 모두 공통적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신드롬 <원스>, 대중적 <비긴 어게인>, 자전적 <싱 스트리트>

<원스>의 한 장면 2006년 영화 <원스>의 주인공인 그와 그녀는 모두 '아웃사이더'이고, 음악을 통해 구원받는다.

▲ <원스>의 한 장면 2006년 영화 <원스>의 주인공인 그와 그녀는 모두 '아웃사이더'이고, 음악을 통해 구원받는다. ⓒ 영화사 진진


2006년,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몇몇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던 <원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처럼, 실제 영국 인디밴드 리더인 글렌 핸사드가 연기하는 그(the guy)와 역시나 영화처럼 동유럽 출신인 마케타 잉글로바가 연기하는 그녀(the girl). 이들은 진정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의 다큐멘터리 같은 설정에 빛을 발하게 해주는 'Falling Slowly' 등의 음악은 동심원처럼 우리 사회에 <원스> 신드롬을 일으켰다.

백수 취급을 받는 뮤지션과, 이민을 와서 음악 대신 가정부로 생계를 이끄는 그녀가 피아노 판매점에서 양해를 구해, 함께 목소리를 맞추던 'Falling Slowly'는 그 어떤 세레나데보다 아름다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If you want me' 등을 비롯하여 영화 속 상황에 맞추어 등장하는 음악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감동을 전했다.

<원스>가 남긴 파문에 이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와 그룹 '마룬 5'로 잘 알려진 애덤 리바인이 합류한 <비긴 어게인>이 2013년 찾아왔다. 스타가 된 애인으로부터 버려진 불운의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 한때는 스타 프로듀서였지만 이젠 알코올 중독자 수준인 댄(마크 러팔로 분). 이미 <어벤져스> 시리즈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으로 익숙한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뉴욕'이란 미국 문화, 그만큼이나 대중적인 애덤 리바인의 노래. 익숙한 배우가 익숙한 배경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그리는 건 꿈을 찾아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성장담이다. <비긴 어게인>은 이 익숙함으로 무장한 덕분에 <원스>보다 훨씬 편하고 대중적인 호응을 성취할 수 있었다.

이젠 익숙한 감독이 된 존 카니가 2016년 들고 온 영화 <싱 스트리트>. 1980년대의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가톨릭 학교의 소년 밴드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 태생인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실제 존 카니 감독은 <원스>의 주인공이었던 글렌 핸사드가 이끄는 그룹 더 프레임즈(the frames)에서 1991년부터 약 2년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음악인 출신이다.

<싱 스트리트>는 실제 인디 밴드 출신 뮤지션과 동유럽 뮤지션을 기용하여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강화시킨 <원스>, 그에 반해 이미 익숙한 기성 배우들과 스타급 뮤지션을 기용한 <비긴 어게인>의 중간쯤 성격을 띤다.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만큼 아일랜드 더블린의 1980년대라는 배경에 기대어, 음악판 <빌리 엘리어트>와 같은 성장담을 그려낸다.

다른 배경, 하지만 같은 주제 의식의 3부작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헐크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마크 러팔로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키이라 나이틀리. 이 익숙한 배우들은 <비긴 어게인>이 보다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만들었다.

▲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헐크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 마크 러팔로와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키이라 나이틀리. 이 익숙한 배우들은 <비긴 어게인>이 보다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만들었다. ⓒ 판씨네마(주)


비록 그 배경은 미국의 뉴욕 그리고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달라졌지만,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는 모두 사회적으로 도태된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이다. 그와 그녀, 그레타와 댄 그리고 코너(페리다 윌시-펠로 분)까지 모두 비슷하다. 그들은 음악에 기대어 혹은 음악을 배경으로 살아가지만, 도시 혹은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적 삶에서 배제됐다. 그래서 그들은 '음악'에서 즐거움을 얻는 대신, '성공'하지 못한 혹은 배려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상처로 인해 위축되어 있다.

영화 속 그들의 사회적 '배제'는 구체적이다. 2000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그), 공산주의가 무너진 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민을 와 생계 노동을 하는 사람(그녀), 여성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이 배제된 사람(그레타), 스타 시스템에서 퉁겨져 나온 프로듀서(댄), 불황기 아일랜드 가정의 소년과 소녀까지. 이들 중 <비긴 어게인>이 보다 영화적이라면, 그에 반해 <원스>와 <싱 스트리트>는 아일랜드 출신 존 카니 감독의 배경에 얹혀 그 리얼리티가 증폭했다.

그런 그들이 그녀와 그레타 그리고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닝턴 분)라는 뮤즈를 만나 '음악'을 통한 구원을 찾아간다. <비긴 어게인>에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팔로라는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곁들여져서 그렇지, <원스>나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까지 세 영화 모두 이야기 전개 방식이 단순하다.

하지만 존 카니 감독의 영화를 스토리의 단순성만으로 깎아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단순한 스토리 빈 곳을 구체적 사연이 깃든 음악이 채우면서 영화 전체를 풍부하게 만든다. <원스>의 'Falling Slowly'가 그랬고, <비긴 어게인>의 'Lost Star'가 그랬듯이 말이다. TV에 등장하는 듀란 듀란 등의 음악에 따라, 마치 커버 밴드처럼 밴드의 풍조차 변해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The Riddle of Model'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톨릭 학교의 강압적인 교육에 대적하는 영화 클라이맥스 'Brawn Shoes'는 통쾌하다. 영화는 또 'Go Now'를 통해 거친 바다를 헤쳐가는 작은 보트에 실린 소녀의 의지를 상승시킨다.

존 카니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재능은 다른 성장 영화와 달리 이미 '전제'로 존재한다. <싱 스트리트>의 코너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시간을 투여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와 다르다. 코너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의 환심을 얻기 위해 시작한 밴드의 '커버 밴드' 모습을 통해 자신만의 색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세세한 영화적 장치 대신 그들의 음악으로 설명한다.

<원스>는 두 남녀의 음악적 사랑이 아일랜드의 고즈넉한 정취를 풍미 있게 만들었다. 도시의 아웃사이더인 두 주인공의 배회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화려한 불빛 이상의 정서를 배가하게 하였다. 반면 <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 불안한 아일랜드를 통해 21세기의 현재를 복기하게 한다.

세 영화는 모두 아웃사이더들의 음악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시대 탓일까? 2006년의 가난한 뮤지션 그와 그녀, 그리고 2013년의 뉴욕의 아웃사이더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거나 되찾는 것은 마치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친 바다를 향해 일엽편주로 아일랜드를 떠나는 코너와 라피나의 미래는 다르다. 'Go now'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노동조합의 욕을 들어 먹으면서까지 아들의 발레 학교 입학을 후원하는 아버지 대신, 이혼하고 집을 팔아버린 부모들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투명한 소년과 소녀의 미래를 향해 울리는 'Go now'가, 역설적으로 이전 작품보다 음악을 통한 '구원'이라는 면을 더 진지하게 천착하게 한다.

<싱 스트리트>의 불온한 소년의 미래를 위로하는 건 또 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서둘러 나간 후, 어른이 된 코너로 짐작되는 성인 밴드의 여유로운 'The Riddle of Model'.

 <싱 스트리트>는 혼자서가 아니라 같이 만들고 듣는 것이 음악이 주는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 <싱 스트리트>의 포스터 <싱 스트리트>로 존 카니 감독의 음악 3부작이 완성됐다. 존 카니가 음악으로, 영화로, 음악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보자. ⓒ (주)이수C&E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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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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