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 스트리트>를 보고 엄마는 네 생각이 났어.

영화 <싱 스트리트>를 보고 엄마는 네 생각이 났어. ⓒ Weinstein company


아들!

엄마가 어제 혼자서 영화 <싱 스트리트> 보고 왔는데, 영화 내내 네 생각 많이 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감정이입이 되고 와닿는 게 진짜 많았지. 네가 워낙 음악도 좋아하니(감독 존 카니가 만든 <원스>랑 <비긴 어게인>은 네가 벌써 몇 번씩 봤잖아), 이 영화 보면 좋겠다 싶어 영화 포스터 하나 집어와서 네게 준거야.

아들, 네 말마따나 우리 '그런대로 괜찮은' 모자 관계 맞지? 여느 아이들처럼 중학교 2학년 때는 미칠 듯이 화가 끓어오르기도 했지만 말이야. 듣고 보니 대개의 '중딩' 부모들이 겪는 마음 앓이고, 또 통과의례 같은 거지. 너에게도 무척 힘들었을 시간이었을 텐데, 그나마 그 정도로 잘 넘어와줘서 고맙다.

네가 볼지 모르니 스포일러는 가급적 지양하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걸 말해볼게. 주인공 코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고등학생이고 대학 중퇴한 형, 또 뚜렷한 거 없이 빈둥대는 여동생이 있어. 그리고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는 부모랑 살아. 부모가 거실에서 투덕투덕 싸울 때면, 코너는 방에서 기타를 뜯으며 애써 싸우는 소리를 가리거나, 형이랑 함께 방에 앉아 긴장해서 회오리가 지나가길 기다리지.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부모. 어쩌면 현실의 많은 부모들 모습일 거야.

가정 형편 때문에 분위기가 무지 험악한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코너. 전학 첫날부터 건달 같은 애에게 수난을 당하더니, 학교장에게는 용모와 복장으로 깨지곤 하더라. 학교 신발은 무조건 검은색이어야 하는 게 교칙이래. 그래서 갈색 구두밖에 없는 코너는 혼나게 되지. 네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우리 갈등은 꽤 줄었지만, 나도 <싱 스트리트> 속 학교 교장처럼 조끼를 입지 않거나 명찰을 부착하지 않은 네 복장 때문에 잔소리를 하곤 하지? 그래도 셔츠에 타이만 입으니 폼은 나더라만.

코너가 우연히 알게 된 여자애 라피나에게 잘 보이려다 즉석에서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 게 영화의 주 스토리 라인이야. 코너가 밴드를 만들고, 멤버들과 같이 음악을 하고, 또 집에 와서 형이나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얘기하고…. 그 과정에서 이 소년이 참 잘 커가고 있구나, 또 고등학생 정도면 저 정도의 잠재성과 능력이 있는 것이구나, 새삼 느꼈다. 옛날 같으면 장가도 갔을 나이이긴 하지. 밴드 멤버들은 개인으로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아이들이야. 키가 작거나 못생기거나 흑인이거나…. 음악에 대한 열정만 아니라면 각자의 매력이 눈에 띄지 않았을 거야.

1980년대 더블린은 경제 사회적 상황이 암울했나 봐. 거기 남아서는 소위 아무 비전이 없는 거지. 게다가 부모 형제는 도움은커녕 짐만 되고….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꿈을 가지고 조용히 살아가는 소년이 기특하더라.

며칠 전에도 엄마 친구 김 선생님이 네게 그랬지.

"출장 가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봤는데 종일 구두 닦더라. 너는 네가 누리는 것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꼭 알아야 돼."

그 말을 듣는 네 표정이 시큰둥해서 엄마 아빠는 좀 민망했단다. 그런데 한편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온 네게 '엄마 자랄 땐' 혹은 '아프리카 아이들은' 이런 얘기들이 공감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해.

조용한 밤에 네 아빠랑 그런 얘기 종종 하게 돼. 앞으로 세상은 공부 잘한다고 행복하게 살기 어렵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 열심히 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거라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지. 그래도 네가 너무 태평한 게 아닌가 싶어 엄마는 종종 불안해져서 네게 뭔가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게 되는구나.

영화를 보며 절감했다. 고등학생은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걸. 부모가 다 가르쳐주고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삶의 길을 만들고 찾아간다는 것을. 부모가 해줄 것은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해주는 것이란 걸. 그리고 네가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날 때까지 맛있는 밥을 잘 해줘야 한다는 것!

아들아, 알지? 내가 영화를 보고 좀 반성하는 부분이 있어서 네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은 할 텐데 말이야. 그럼에도 가끔 감정이 앞서 여전히 화를 낼지도 몰라. 그렇지만 노력할게! 너에게 많은 장점과 매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을게. 내 불안을 네게 투사해서 안달하지 않을게.

영화 음악 진짜 좋더라. 보니 OST도 나왔던데, 우선 주말에 영화 한번 보고 와.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연상되고, 아일랜드 배경의 다른 영화들도 떠오르더라.

아무튼 이 영화 메모는 엄마가 네게 쓰는 반성문 같은 거다. 항상 꿈꾸며 살아가길 바란다. 멋진 내 아들! 사랑해.

 영화 <싱 스트리트> 메인 포스터

영화 <싱 스트리트> 메인 포스터 ⓒ 이수C&E



싱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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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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