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면 지는 거고, 여기 있으면 쪽팔리는 것"이라는 오해영(서현진 분)은 늘 피하는 대신 쪽팔림을 선택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래 왔다. 같은 이름을 가진 오해영(전혜빈 분)이 '예쁜 오해영'이라는 별칭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독차지할 때 그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달리기 시합에서 일부러 넘어져 '예쁜 오해영'에게 1등 자리를 내어줬고, '예쁜 오해영'을 대신해 불릴 특징이 없어 '그냥 오해영'으로 불려야 했다.

담임교사는 '예쁜 오해영'과 '그냥 오해영'으로 나눠 부르는 학생들을 "너무한다"고 나무라며 대신 '예쁜 오해영'은 오해영1, '그냥 오해영'은 오해영2로 명명한다. '그냥'을 대신해 이름 뒤에 붙은 2라는 숫자는 더 우울하다. 2라는 숫자를 붙이고 한 표도 안 나올까봐 자기 자신을 찍었다던 반장 선거에서 그는 결국 한 표를 받고 '예쁜 오해영'에게 지고 만다.

새로운 캐릭터 오해영

 <또 오해영>의 그냥 오해영. 흙수저인 그녀를 소화하는 서현진은 굉장히 훌륭한 생활연기를 선보인다.

<또 오해영>의 서현진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 tvN


하지만 오해영은 버텼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삶을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예쁜 오해영과 같은 색깔의 빨간 스카프를 매고 온 날, 예쁜 오해영이 먼저 스카프를 빼겠다는 말에 오해영은 "빼지마! 너는 너고, 나는 나야!"라고 소리친다. 동창회에서 "아 맞다, 너도 오해영이었지, 그냥 오해영"이라는 친구들의 말에 해영은 자리를 피하는 대신 씩씩하게 "그래 얘들아, 나도 오해영이었어"라고 답한다. 온몸으로 민망함을 받아들이며.

예쁜 오해영에게 딱히 악의는 없었지만, 늘 비교당하는 오해영의 입장에서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랬던 오해영 앞에 나타난 '예쁜 오해영의 전 애인' 박도경(에릭 분)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신세를 한 번에 역전시키고 예쁜 오해영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 또한 거부한다.

예쁜 오해영과 마주친 그냥 오해영의 손목을 잡고 끌고나간 박도경 앞에서 그녀는 다시 외친다. "왜 말도 안 하고 손목 잡고 끌고 나오느냐"고, "그거 진짜 유치한 거"라고. 남자의 손목에 잡혀 끌려나가는 기존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흔히 있을 법한 수동적인 여성성을 단호히 거부한 채.

비록 여전히 오해영 주변은 주눅 들게 만드는 일 천지지만, 그는 "나를 예쁜 오해영과 바꿀 수 있더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애틋하다"고 말한다. 뻔하디뻔한 로맨스 드라마 속 오해영이라는 캐릭터에 입체성이 부여되는 순간이다.

전혀 새롭지 않은 주변의 남자들

 <또 오해영>

<또 오해영> 속에서 박도경(에릭)은 밤과 낮의 소리를 구분할 줄 아는 음향 감독으로 나온다. ⓒ tvN


'예쁘지 않은, 평범한 오해영'이라는 편견에도 꿋꿋한 그녀지만,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은 해영을 참담하게 만든다. <또 오해영>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은 단 한 사람도 해영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 오해영을 시종일관 예쁜 오해영과 비교하며 상처 주는 티 없이 밝은 남자 동창생들이나, 오해영을 못생겼다며 대놓고 무시하는 소개팅남의 경우 다소 코믹한 톤으로 그려져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 숨을 수 있는 구석이라도 있다. 문제는 박도경이나 한태진(이재윤 분), 이진상(김지석 분)마저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멋있다고 평가받는 남자 주인공 박도경은 해영의 손목을 낚아채 갑자기 끌고 가거나, 해영이 차 안에 있는데도 승용차 창문 유리를 박살내는 등의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 또 그 자신은 해영의 방으로 이어진 문을 거침없이 드나들면서도 해영에게는 "마음대로 드나들지 말라"고 말한다. 마치 둘 사이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처럼.

이는 결혼 하루 전 "네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다"며 그녀를 떠난 전 애인 한태진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가 오해영을 떠난 진짜 이유는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실패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결혼하려던 여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채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자신의 여자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멋진 남자'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여기서도 충격적인 이별을 당한 오해영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녀는 한태진이 어디에 있는지, 왜 한태진이 진짜 자신을 버렸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진상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한데, 극 초반부터 '바람둥이' 캐릭터가 콘셉트인 그는 "여자들은 원래 다른 여자 예쁘다고 안 해"와 같은 기존 남성들의 편견-여자의 적은 여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행복해진다면, 부디

이 '문제적 인물들'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또 오해영>에서는 그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한 장면으로 처리된다. 이 드라마에서 서현진이 그리는 오해영은 온갖 미숙하거나 일말의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남성들로 둘러싸인 이상한 나라에서 홀로, 꿋꿋하게, 고군분투한다. 그녀의 주체적인 사고방식과 당당함은 분명 로맨틱 코미디로서 <또 오해영>의 새로운 지점이긴 하나, 이것들을 예의 스스로의 명랑함으로 헤쳐가는 점에서는 기존의 '캔디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하고 만다.

<또 오해영>은 이제 꼭 절반을 돌았다. 오해영은 과연 앞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녀의 불행은 남자 때문이었지만, 그녀의 행복은 '남자' 때문이 아니길.

또 오해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