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 스트리트>의 포스터.

영화 <싱 스트리트>의 포스터. ⓒ 와인스타인컴퍼니


그러니까, 이것은 첫사랑에 빠진 열여섯 소년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다. 그 찬양의 재료로 사용된 것은 음악과 열정.

누가 있어 감히 "청춘은 아름답다"는 명제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는 문학을 통해, 베르히만과 코폴라는 영화를 통해 부러움과 찬사를 바친 게 바로 '청춘'이다. 때론 한 청년의 넘치는 에너지가 지구 전체를 덮는 기적을 부르는 시절.

존 카니 감독의 신작 <싱 스트리트>는 바로 이 청춘과 청춘의 파생어 '첫사랑'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필름이다. 지금 청춘을 사는 이들은 느끼지 못하거나 애써 모르는 척 하지만, 이미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에겐 그 끝을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애틋함을 부르는 단어들.

1985년 아일랜드 더블린. 몰락한 집안의 경제형편 탓에 교칙 엄격한 가톨릭계 학교로 전학을 가게된 코너(페리다 월시 필로 분). 교장은 등교 첫날부터 구두의 색깔로 시비를 걸고, 불량스런 동급생은 멱살을 쥔 채 협박을 일삼고, 실직자 아버지는 아들이 처한 현실에 입을 다무는 짜증스런 상황.

최악의 상황에서 등장한 아름다운 구세주

 영화 <싱 스트리트>의 여주인공 라피나. 매혹적인 목소리와 착한 심성으로 코너를 매혹한다.

영화 <싱 스트리트>의 여주인공 라피나. 매혹적인 목소리와 착한 심성으로 코너를 매혹한다. ⓒ 와인스타인컴퍼니


그러나, 어떤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구세주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한 살이 많은 열일곱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인턴 분)의 모습에 첫눈에 매료되는 코너. 단도직입 다가가 묻는다. "너, 우리 밴드가 제작하는 뮤직비디오 출연할래?" 그리고는 당시 유행하던 노르웨이 밴드 '아하(A-ha)'의 노래를 불러준다. "테이크 온 미(Take on me)~"

자, 이제 코너의 첫사랑이 결실을 맺으려면 라피나 앞에서 큰소리 친 것들이 현실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소년은 아직까지 작사나 작곡을 해본 적이 없고, 뮤직비디오 역시 만들어봤을 턱이 없다.

여기서 코너를 구하는 건 <싱 스트리트>를 만든 감독 존 카니다. '카니의 코너 일병 구하기'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역시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와 제임스 조이스에 필적하는 능력을 코너에게 선물한다. 단 몇 달 사이에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빼어난 작사 능력을 확인하는 코너. 코너의 학교 친구로 등장하는 만능 악기연주자 에먼(마크 맥케나 분)에게는 U2의 보노와 시네이드 오코너(이 두 뮤지션 역시 아일랜드인이다)처럼 매력적인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감을 선사하는 건 존 카니 감독이 영화의 재미를 위해 지급한 보너스다.

<싱 스트리트>는 진앙지 불분명한 가슴 떨림과 설렘을 수시로 소급해낸다. 라피나를 향한 코너의 애틋한 마음과 코너를 바라보는 라피나의 사랑스런 눈빛은 관객이 경험한 청춘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고, 둘의 입맞춤과 포옹이 주는 따스함을 함께 느끼게 되는 것. 영화와 온전히 동화되는 보기 드문 진경이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착한 영화

 <싱 스트리트>는 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드문 영화다. 코너와 친구들이 만든 밴드.

<싱 스트리트>는 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드문 영화다. 코너와 친구들이 만든 밴드. ⓒ 와인스타인컴퍼니


또한, <싱 스트리트>는 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흔치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고집불통의 교장도, 무능력자 아버지도,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코너의 형도, 급우를 괴롭히는 불량학생도 내면을 파고들면 사실은 착한 사람임을 장면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 해서, '착한 영화'라고 불러주고 싶다.

이심전심의 또래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우정을 나누고, 형에게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배우고, 무심한 듯 보였던 부모에게서 신뢰를 확인하고, 라피나를 통해 사랑이 가진 위대한 힘을 깨닫는 코너. 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진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해서, <싱 스트리트>는 빼어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조그만 요트에 몸을 싣고 폭풍우 휘몰아치는 바다를 건너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코너와 라피나. 둘의 손에는 노랫말을 적은 수첩과 허술한 모델 포트폴리오만이 달랑 들려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같이 있다는 것이 좋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둘. 런던으로 간 어린 연인은 행복할 수 있었을까?

1985년 영국은 마가렛 대처가 통치하던 '대량실업'과 '악질적 구조조정'의 시대. 아직 10대인 코너와 라피나가 거기서 제 역할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둘에게는 키스 한 번으로 런던 전체의 가로등을 밝힐 청춘의 에너지가 있는데. 그 청춘은 대통령의 권력으로도, 재벌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세상 가장 귀한 것인데.

싱 스트리트 라피나 존 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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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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