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19일 개봉한 창감독의 <계춘할망>. 계춘할망(윤여정 분)과 손녀인 혜지(김고은 분)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19일 개봉한 창감독의 <계춘할망>. 계춘할망(윤여정 분)과 손녀인 혜지(김고은 분)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주)미시간벤처캐피탈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의 집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자 모양의 베개와 따뜻한 할머니의 품이 있었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지역이 달라 할머니를 자주 찾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나를 반겨주시며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신다.

외할아버지와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방에서 잘 나오시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을 잊을 수 없다. 치매에 걸리셨던 할아버지는 떠나기 며칠 전, 나를 찾으셨다. 그때 잡아주셨던 손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제주도의 풍경

 <계춘할망>은 제주도의 풍경들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담아냈다.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풍경은 샛노랗게 화면을 물들인다.

<계춘할망>은 제주도의 풍경들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담아냈다.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풍경은 샛노랗게 화면을 물들인다. ⓒ (주)미시간벤처캐피탈


<계춘할망>은 제주도에 해녀로 살아가는 계춘(윤여정 분)과 손녀인 혜지(김고은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도에는 특이하게도 호칭에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름이 박기순이라면 '기순선생' 또는 '기순이선생'이 되는 것이다. 계춘할망이라는 이름도 제주도의 풍습을 담아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계춘할망과 혜지는 서로를 많이 아끼는 할머니와 손녀 사이다. 그러나 결혼식장을 방문하러 가는 도중에 계춘은 시장에서 혜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12년이 흐르고 우연히 자신을 찾는 글을 본 혜지가 연락을 하게 되면서 계춘할망과 혜지의 제주도에서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계춘할망>은 제주도의 풍경들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담아냈다.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풍경은 샛노랗게 화면을 물들인다. 또한, 하늘을 품고 있는 바다의 모습은 따뜻한 느낌으로 관객을 마주한다.

담아내는 자연 풍경도 아름답지만, 곳곳에 보이는 제주도의 풍습과 문화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도중에 똥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똥돼지의 모습이나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은 제주도의 향취가 느껴져 정겹다.

계춘할망의 집에는 대문이 없다. 본래 제주도에는 정낭이라는 문화가 있다. 세 개의 나무토막을 이용한 것인데, 한 개만 걸쳐있는 것은 '금방 돌아옴'의 뜻이고 두 개는 '조금 멀리 있으니 시간이 걸린다', 세 개는 '오랜 시간 뒤에 온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는 예로부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근면, 절약,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삼았던 제주도민들의 풍습이다.

이렇듯 <계춘할망> 곳곳에 나오는 제주도의 향취가 가득한 풍경들은 잘 그려진 그림처럼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마지막에 그림으로 그려져 나오는 영화 속 장면들은 원래부터 그림을 보고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계춘할망>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별과 재회를 그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냈기에 익숙하다. 하지만 곳곳에 담긴 제주도의 향취가 잘 어우러져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얀 도화지를 빛으로 채워나가는 그들

 계춘할망(윤여정 분)의 무한한 사랑에 비해 혜지(김고은 분)의 사랑은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조금씩 커져간다. 그렇게 두사람은 하얀 도화지를 빛으로 그려나간다.

계춘할망(윤여정 분)의 무한한 사랑에 비해 혜지(김고은 분)의 사랑은 터무니없이 작다. 하지만 조금씩 커져간다. 그렇게 두사람은 하얀 도화지를 빛으로 그려나간다. ⓒ (주)미시간벤처캐피탈


혜지는 12년 만에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낯설다.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는 할망의 손길도, 마을 사람들의 관심도 그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은 그림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거나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그녀는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다. 텅텅 비어있는 도화지처럼 그녀의 마음도 비어있다.

무조건 그려내고 가라는 선생님의 말에 혜지는 한 장의 그림을 그린다. 빨간 립스틱과 눈썹 마스카라로 그려진 그림은 그녀가 살아온 지난 12년처럼 어둡다. 그녀는 빛이 아닌 그림자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그림자보다 빛을 보아야 한다."

혜지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지난 12년 동안의 시간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어딘가 그림자를 닮았다. 미술 선생님의 말처럼 그녀는 빛을 볼 수 있을까?

계춘할망과 혜지에게는 사연이 가득하다. 12년을 떨어져 살아온 만큼 서로를 몰랐던 시간이 많다. 하지만, 계춘할망의 사랑은 무한하다. 집에 늦게 들어왔을 때도, 마을 사람들이 안 좋은 소리를 하더라도, 할망에게 혜지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손녀이다.

혜지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처음에는 무한했던 계춘할망의 사랑에 비해 혜지의 사랑은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다. 그렇지만, 혜지의 사랑도 조금씩 커져간다. 그들은 12년 동안 비어있던 하얀 도화지를 빛으로 채워나간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림자에 집중한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빛보다 눈에 쉽게 보이는 그림자는 그려내기 쉽다. 하지만, 그림자는 결국 빛이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진정 보아야 하는 것은 빛이다.

혜지의 그림은 점점 더 성장한다. 그것은 그녀가 빛을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그림에 빛이 담길수록 두 사람의 사랑도 더욱 빛을 낸다. 그 원동력은 할망의 무한한 사랑이다. 어떤 진실도 이겨내는 할망의 사랑은 한 폭의 완벽한 그림을 그려낸다. 마지막까지도 잊지 않는 혜지라는 이름. 계춘할망의 사랑이다. 잊고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그 빛이 있었기에 '나'라는 그림이 있었다는 것을.

할망이 묻는다. "하늘과 바다 중에 어떤 것이 더 넓을까?" 나는 대답하겠다. "하늘과 바다를 모두 품은 할망의 사랑"


계춘할망 독한리뷰 김고은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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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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