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

나홍진 감독이 6년만에 선보인 영화 <곡성>.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만든 작품이다. 전작들과 달라보이지만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그가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이희훈


2004년 우리를 경악케 했던 '유영철 사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여상과 노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은 우리 사회에서 그간 볼 수 없었던 끔찍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2008)가 이를 토대로 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 역시 평정심으로 단순 감상하긴 힘들다. 단순히 암울한 현실의 반영이라 보기에 괴로웠던 걸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범인과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영화적 기괴함으로만 소모되기엔 품고 있는 의미가 더 커 보였다.

이후 <황해>(2010)가 있었고, 나 감독은 6년 만에 차기작 <곡성>을 발표했다.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홍진 그가 되물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세요?"

태초에 신이 있었다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

<곡성>을 두고 나오는 다양한 해석들을 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일부 블로거들이 찾아낸 영화 속 상징들에 대해 그는 "그 정도면 나올 건 다 나왔다"며 흥미롭게 생각했다. ⓒ 이희훈


그간 언론에 소개된 <곡성>은 나홍진 감독이 발표한 전작들과 결이 다소 달랐다. 그가 밝혀온 대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으로 생각한 작품"이었고, 여기에 초현실적 존재 혹은 상황을 입혀 일종의 오컬트(종교나 신비주의 요소) 장르로 승화시켰다. 한 마을에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그린 이 작품은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했다.

시골 경찰 종구(곽도원 분)가 딸을 구하기 위해서 그토록 해결하고 싶어한 연쇄 살인 혹은 사망 사건은 과연 독버섯 중독으로 인한 걸까, 귀신에 홀린 결과인 걸까. 이미 여러 차례, 심지어 칸영화제에서도 <곡성>에 대한 여러 실마리를 전했고, 납득할만한 해석도 풍부해진 상태였지만, 또 다른 근본적인 궁금증은 남아 있었다. 바로 왜(why)의 문제였다.

<곡성>의 시나리오가 등장한 건 2014년 7월 무렵, 그러니까 <황해>가 나온 이후인 2011년 10월부터 치열하게 트리트먼트 작업을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3년이 지난 시점에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머리에서 굴러다니던 생각을 정리하다 써야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쓰기 시작한" 이후 그는 전국 각지 종교인을 만나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하나씩 확보해갔다.

그래서 우선 <곡성>은 곧 신에 대한 영화라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관념에 머물고 있는 신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해야만 하는 존재에 대한 그의 간절함이 담겨 있음을 알아두자. 천우희가 맡은 무명이 바로 그런 그의 바람을 투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쭈그려 앉아있는 천우희 모습이 현재 신의 모습")

"예전의 신은 위대했고 사람과 가까웠을 것이라 짐작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고민할수록 신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더라.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무명은 누구일까 질문하길 바랐고 상의하길 원했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는 게 현상이라면, 그래서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면, 신에게 존재하냐고 묻고 싶고, 존재한다면 선한 존재인지 묻고 싶었다.

(이후 덧붙인 특정 사건에 대해 그는 기사에 싣지 말 것을 요구했다-기자 주) 최근 파리에서 이상한 뉴스를 봤다. 그 사건을 떠올려 보시면 알 것이다. <추격자> 때도 그런 생각이었다. 다들 범인이 빨리 안 잡힌다고들 하시는데 '왜 범인을 빨리 잡아?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번 같이 생각해 봅시다'였다. <황해>도 마찬가지다. 왜 그 살인미수범을 영화의 3분의 1지점에 할애했을까.

세 편 모두 다 선을 갈망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참 지나치게."

공포와 분노, 나홍진의 동력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

제69회 칸영화제 초청을 받은 그지만 프랑스 현지에서도 나 감독은 국내 관객들 반응에 신경을 두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적극적으로 관객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라 그가 말했다. ⓒ 이희훈


그렇다. 지나친 선의 갈망. 그의 세 작품 모두 기반은 곧 우리 사회 및 이 세상에서 벌어졌던 비극적 사건이다. 거기에 대한 시점을 감독 스스로 바꿔가며 조망한 셈이다.

나홍진 감독은 교회를 다닌다. 기독교라 한정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곡성>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모든 신을 믿는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곡성>엔 가톨릭, 한국을 비롯해 네팔 토속 신앙 요소가 담겨 있다. 그의 말을 정리해본다. 신과 선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해자를 쫓은 게 <추격자>와 <황해>라면, <곡성>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신의 존재를 갈망한 작품이 된다. 이쯤에서 나홍진 감독은 스스로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난 민감하고 뭐랄까 겁이 많다. 아까 말한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굉장히 무섭다. <추격자>를 내가 술 먹고 썼다는 말을 들으셨지 모르겠는데 맞다. 친한 형사와 축구를 보고 2차로 포장마차에 갔는데 그때 유영철 사건이 뜨거웠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포장마차니까 옆 테이블 이야기도 다 들리지 않나. '몸 파는 사람들이 죽은 건데...' 이런 천박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난 분노했다. 사람들이 이 사건이, 이 텍스트가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게 다라고 여기는 건가?' 분노하면서 그날로 컴퓨터에 때려 박기 시작한 거다.

그날 밤 그 테이블에서 느낀 충격이 이렇게 나로 하여금 영화를 하게 만드는 거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나도 그것에 대해선 고민해 본 바가 없으니. 다만 계속 무섭다. 너무 무섭다. 이 문제, 비극적 현상이 어떻게 지엽적인 걸로 치부될 수 있는가. 그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거미줄처럼 엄청 꼬여있는 것들로 인해 드러나는 아주 일부일 뿐인데. 그런 생각이 커지면서 이젠 아주 사소한 것만 봐도 사소하게 안 보인다. 파리에서 접한 뉴스 역시 너무 끔직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다시 <곡성>으로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

인터뷰 중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한 대화를 했다. 나홍진 감독은 그 대화를 "기사엔 싣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부탁하기도 했다. 말할 수 있는 건 분명 지금껏 접했던 감독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 ⓒ 이희훈


결국 <곡성>의 본질은 <추격자>부터 시작된 그의 일관된 물음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컬트라는 장르적 특징 차용과 외지인 대 종구의 시선이라는 이중 플롯은 상업영화를 위한 일종의 기술적 장치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나홍진 감독은 이를 "좌에서 우로 가는 기차(종구 이야기)와 우에서 좌로 가는 기차(외지인 이야기)를 마치 하나의 기차처럼 보이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도된 감독의 혼란을 기꺼운 마음으로 관객이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상업적으로 이 영화가 성공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일본인 플롯은 성경을 차용했다. 그가 예수라면? 그리고 곡성이 예루살렘이라면? 이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종구와 일본인 두 플롯을 하나로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카드를 버려야 했다. 준비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대부분 버려야 했다. 물론 일부는 남아 있다. 단순히 영화적 장치로 보일 수 있지만, 애초에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준비했던 거기에 튀어 보이지 않는 거 같다."

벌써부터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곡성>을 통해 영화적 즐거움을 느꼈다면 이젠 나홍진 감독이 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자 하는지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인터뷰 말미에 그가 덧붙였다. "다음 영화가 뭐가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세상을 향해 버튼을 눌러야 한다면 누르겠다"고. 경고를 의미하는 빨간불을 켜든, 위급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을 울리든, 나홍진 감독은 명민하게 현상에 반응하는 훌륭한 창작자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 <곡성> 스틸컷.

영화 <곡성>에 등장하는 금어초다. 귀신이 오갈 때 해골 모양으로 시드는 꽃으로 실제로도 존재하는 식물이다. ⓒ 20세기폭스코리아


기사에 다 실을 수 없었지만 나홍진 감독이 <곡성>에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과 소품의 이유를 공개한다. 이미 영화를 본 관객 입장에서 흥미로울 수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나홍진 감독은 기사는 물론이고 여러 블로거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그는 "이미 관객들이 대부분의 영화 속 상징들을 찾아냈다"고 말한 바 있다.

① <곡성>이라는 제목이 뜰 때
- 타이틀이 나올 때 등장하는 집은 굿을 할 때의 종구네 집과 같은 곳이다

② 금어초의 의미
- 실제로 해골모양으로 시드는 이 꽃은 영화 속에서 피해자들의 집마다 걸려 있다.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꽃인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찾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 삭제된 장면들
- 나홍진 감독이 "버린 카드가 많았다"고 고백할 정도로 여러 설정과 이야기들이 촬영 직전 혹은 편집 과정에서 빠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건 무명(천우희 분)과 외지인의 격투 장면과 종구의 얼굴로 끝나는 결말 부분 그 이후 장면인데, 여기에 더해 흑염소가 종구네 집 대문에 걸리게 된 이유와 그 범인, 외지인이 귀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몇몇 장면이 편집과정에서 삭제됐다. 이중 나홍진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외지인의 인간적 모습을 보이는 이야기다. "삭제 여부를 두고 6개월 간 고민했다"고 나홍진 감독이 전하기도 했다.

④ 왜 하필 일본인?
- 외지인을 일본인으로 설정한 것에 관객들의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중국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나 감독은 "아니"라고 부정했다. 다만 이 설정에 대해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잠입의 느낌이 있었으면 했다"며 "우리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느낌, 그리고 캐릭터의 나이 등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 말했다.

⑤ 감독판 혹은 확장판
- 앞서 언급한 삭제 장면이 포함된 감독판 내지 확장판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나홍진 감독 본인은 다소 부정적이다. "또 관람료를 내고 영화를 보는 수고를 하시라고 하는 게 죄송스럽다"며 그는 "나중에 DVD 등에 넣으면 어떤지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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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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