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진된 예매 좌석창. 판매돼 하얗게 비활성화된 좌석창을 '눈밭'이라고 부른다.

매진된 예매 좌석창. 판매돼 하얗게 비활성화된 좌석창을 '눈밭'이라고 부른다. ⓒ 인터파크 좌석창 캡처


"좌표 여기. 이따 1시 부탁해."
"OK. 선호 구역은?"
"상관없어. 들어가게만 해줘."
"엇, 2분 전. 성공해서 만나자."

은밀하게 오가는 대화. 성공을 기약하며 떠난 그들의 5분 뒤.

"에라이…."
"눈밭이다. 눈밭."
"이선좌 가만 안 둬!"

대부분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결말은 이렇다. '눈밭'은 이미 누군가가 클릭해 하얗게 비활성화된 좌석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선좌'는 간발의 차로 좌석을 놓쳤을 시 나타나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알림 메시지의 줄임말. 이선좌 세네 번이면 온통 눈밭으로 변한 "잔여 좌석 0"이라는 끔찍한 화면을 만나게 된다.

팬들의 초조함과 안타까움이 높아질수록, 누군가의 수입은 더 짭짤해진다. 티켓팅이 끝나자마자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나 온라인 티켓 장터 '티켓베이', 각종 중고거래 어플, 트위터 등에는 티켓을 판매하겠다는 이들이 글을 게시하기 시작한다. 티켓 가격의 10~20% 정도의 프리미엄은 약과. 티켓을 못 구한 팬들이 많을수록, 자리가 중앙 앞줄에 가까울수록, 티켓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심한 경우 수십 배까지 점프한다. 팬들은 수십배에 이르는 웃돈을 챙기기 위해 티켓팅에 참여하는 이들을 프리미엄에 벌레 충(蟲)을 합쳐 '플미충'이라 부르며 분노한다.

온라인 예매, 편리함과 플미충 함께 주다

 3층 좌석도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송중기 팬미팅 티켓. 정가는 2만 2000원이었다.

3층 좌석도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송중기 팬미팅 티켓. 정가는 2만 2000원이었다. ⓒ 티켓 거래 사이트 캡처


 8000원짜리 무대인사 10만원 거래 완료 중고나라

8000원짜리 영화티켓이 10만원 거래됐음을 알리는 중고나라 댓글 캡처. ⓒ 김윤정


온라인 예매사이트의 등장은 과거 은행 앞에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티켓팅을 하던 팬들의 기다림을 덜어주었지만, '플미충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고난을 안겨줬다. 누구나 정해진 시간에 접속하기만 하면 티켓팅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공연을 관람할 생각이 없더라도 쉽게 티켓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해 주변 친구들이 함께 도전해주는 '티켓팅 품앗이'는 양반이다. 처음부터 프리미엄을 노리고 참전하는 플미충부터 전문 암표업자까지 가세하는 통에 정작 실관람객들은 티켓팅 창에 접속조차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수십 배에 달하는 웃돈은 과거 동방신기, EXO 등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의 콘서트나 한류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는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시상식 티켓,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등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화 무대인사, 팬미팅 등에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 2월 영화 <검사외전> 무대인사 티켓은 원가 9000원의 10배가 넘는 10만 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17일 열린 정가 2만 2천 원인 송중기 팬미팅 티켓은 2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심지어 지난 2일 오픈된 서강준 팬 이벤트 티켓은 무료(예매 수수료 1000원 별도)로 책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최대 10만 원에 거래를 시도하는 판매자까지 나타났다. 무료 티켓이 고가 티켓으로 둔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량한 구매자들도 혹 할 수밖에 없다. 임영지(가명, 22)씨와 친구들은 송중기 팬인 한 친구를 위해 지난 3월 31일 오픈한 송중기 팬미팅 티켓팅에 참여했다. 티켓팅에 참여한 일곱 중 성공한 이는 두 명. 티켓팅 직후부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는 들썩였고, 임씨는 송중기 팬미팅 티켓이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좌석 정도면 20만 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하루 10만 원 벌기 힘든 현실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임씨는 "결국 (티켓을 팔지 않고) 팬미팅에 가서 실제 송중기를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사실 팬미팅 전날까지도 너무 팔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친구와 틀어질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5분 투자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다음엔 정말 아르바이트 삼아 플미충이 되고 싶더라"고 그는 털어놨다.

10배 뻥튀기는 기본... 일반 팬미팅까지 확대

송중기 태국 팬미팅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덕분에 한류스타로 거듭난 배우 송중기(31)의 태국 팬미팅이 지난 7일 방콕 썬더돔에서 4000여 명 팬이 모인 가운데 개최됐다.

▲ 송중기 태국 팬미팅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덕분에 한류스타로 거듭난 배우 송중기(31)의 태국 팬미팅이 지난 7일 방콕 썬더돔에서 4000여 명 팬이 모인 가운데 개최됐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 블러썸엔터테인먼트


과도한 웃돈 등이 문제가 되면서 연예기획사들은 여러 복잡한 절차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선 불법 거래가 확인된 티켓은 취소 처리한다는 방침을 내거는 연예 기획사가 늘어났다. 하지만 온라인 일대일로 접촉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거래를 적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의 맹점도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2항4호는 암표매매로 처벌되는 대상을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암표 거래의 장소를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으로 한정한 탓에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암표 거래는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온라인 암표 거래를 적발한다 해도 제재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온라인 예매사이트 인터파크 김선경 팀장은 "예매한 티켓을 재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은 아니"라면서 "실상 온라인 상에서 거래되는 티켓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중기 팬미팅의 경우 팬클럽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신청을 받고 그 중 선착순 3000명에게 우선 예매 권한을 줬다. 이메일 도착 순서에 따라 인원을 자르는 방법은 '멜림픽(메일 올림픽)'이라 부르는데, 보통 예매사이트 없이 기획사에서 티켓을 배부할 때 쓰는 방법이다. 송중기의 경우 이 멜림픽과 예매사이트를 동시에 활용한 티켓팅을 진행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재판매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전체 4000석 중 3000석을 팬클럽 회원에게 우선 할당해 팬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일일이 신분증 진본 확인 절차 도입

 1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된 서강준 팬 이벤트. 이후 온라인에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 제시되는 등 혼란이 일었지만 서강준 소속사 판타지오 측이 티켓 교환 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이튿날 취소표가 쏟아졌다.

1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된 서강준 팬 이벤트. 이후 온라인에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 제시되는 등 혼란이 일었지만 서강준 소속사 판타지오 측이 티켓 교환 시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이튿날 취소표가 쏟아졌다. ⓒ 김윤정


지난 2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열린 서강준의 팬 이벤트. 예매 시작 1분 만에 1000석이 매진됐고, 이후 온라인에는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제시하는 판매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나중에 예매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서강준 소속사 판타지오 측이 강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분증 확인 절차를 공표한 이벤트는 많았지만, 티켓 판매자들은 주민등록번호 몇 자리를 가린 신분증 복사본 등과 함께 티켓을 판매하는 등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행사의 경우 서강준 소속사 측이 신분증 사본을 인정하지 않고 실물 신분증만 인정하겠다고 공지했다. 완전한 초강수. 결국 이튿날 새벽 약 200장의 취소표가 쏟아졌고, 이는 전날 예매에 성공하지 못한 팬들의 손에 돌아갔다.

실제 서강준 팬 이벤트에 참석한 지윤진(35)씨는 "일반 좌석의 경우 핸드폰 번호와 이름만으로도 팔찌(티켓) 교환이 가능했지만, 사인회까지 참석하는 사람들의 경우 일일이 신분증 확인 작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신분증 확인 절차 때문에 입장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덕분에 고가에 불법 거래되는 티켓이 줄어든 것 같아 만족한다"고 전했다.

김선경 팀장은 "기획사의 방침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팬 이벤트의 경우 공연 목적 자체가 일반 공연과 달라 별도 서비스 약관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재판매 등 부정적인 거래가 적발되면 법률과 상관없이 강제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암표 플미충 송중기 서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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