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곡성>의 배우 천우희.

영화 <곡성>의 배우 천우희. ⓒ 이선필


제69회 칸영화제에서 <곡성>이 공식 상영된 18일 밤(현지 시간). 영화가 끝나면서 뤼미에르 대극장을 빠져나온 관객들 사이에서 "대체 유령이 누구이고 귀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홍진 감독의 전략이 통한 걸까? 영화제를 찾은 해외 관객들이 웃고 궁금해 하는 지점이 국내 관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정작 영화 속에서 각각 불분명한 정체의 캐릭터를 연기한 천우희와 쿠니무라 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두 사람 모두 <곡성>을 통해 칸영화제를 처음 방문했다. 화려한 레드카펫을 경험한 다음날인 19일 오전 팔레 드 페스티벌 인근 호텔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①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영화 <곡성>의 쿠니무라 준.

영화 <곡성>의 쿠니무라 준. ⓒ 이선필


쿠니무라 준이 맡은 역할은 곡성이라는 외진 마을을 찾아온 외지인이다. 극중에서 마을 사람들의 소품과 사진을 가져다 놓고 주술을 거는 모습 때문에 <곡성>에서 악한 귀신으로 해석되는 캐릭터. 직접적으로 구분하진 않지만 이 외지인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만져보라"며 끊임없이 혼란을 야기한다.

천우희가 맡은 무명 또한 그렇다. 극중 주인공 종구(곽도원 분)를 도와주려는 것 같지만 뭔가 미심쩍다. 그 역시 마을 사람들의 소품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악마와 한 패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쿠니무라 준 "귀신의 정체에 대해 나홍진 감독과 따로 얘기해보진 않았다. 다만 각본을 읽었을 때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특정하진 않으리라는 건 직감했다. 답이 없다. 외지인을 악마라고 얘기하지만, 그 악마가 신일 수도 있다. 같은 존재를 서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천우희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직관인 거 같다. 캐릭터에 대하여 하나씩 분석하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 딱 떠오를 때가 있다. 그 후에 이유를 물어본다. 왜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무명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에너지만 있고 형상이란 게 없더라. 내 몸과 정서를 이용해 표현해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관객에게 혼란을 줘야하지만 내 스스로가 혼란에 빠진 채 연기할 순 없었다. 오히려 확신을 갖고 연기하는 게 중요했다.

내 캐릭터를 동물에 비유하곤 한다. <한공주>에서의 공주가 사슴이었다면, <써니>는 이리였다. 그리고 <곡성>의 무명은 뱀의 형상이 스쳐지나갔다. 나라마다 뱀의 이미지가 다른데 존귀하고 신비한 존재기도 하면서 사악한 느낌도 있잖나. 그 이미지를 갖고 카메라 앞에 섰다.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도와주셔서 잘 나온 거 같다."

② 마을 사람들 소품과의 연결고리

 영화 <곡성>의 한 장면.

영화 <곡성>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외지인은 마을 사람들의 물건에 주술을 걸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외지인이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상징적이었다. 마치 영혼을 가두려는 의식처럼 보인다. 무명 또한 종구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물건을 갖고 있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런 설정에 대해 좀 더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쿠니무라 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념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려 한다. <곡성> 안에서 외지인이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람의 내면 혹은 정신세계를 찍으려 한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걸로 인해 다른 사람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외지인을 맡으면서 아이들의 장난 같은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말투에서도 느껴지지 않나. 그는 사람에게 장난을 거는 거다. 마치 아버지에 의해 세상에 보내진 아들처럼 말이다. '왜 내가 이렇게 세상에 떨어져 이런 걸 당해야 하나' 그런 심정이라 생각하면서 임했다. 박충배(극 중 반송장처럼 등장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준다-기자 주)의 정체는 나도 모르겠다. 이야기상 내가 살리려고 노력한 건 맞다."

천우희 "무명이 마을 사람들의 소품 일부를 가지고 있는 거? 나 역시 사건의 범인은 무명인가 생각했었다. 일본 외지인이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외지인이 사람들의 소품으로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무명 역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품을 하나씩 가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

③ 액션 연기

 <곡성>의 한 장면. 배우 천우희는 다시 한 번 '정점을 짐작키 어려운 연기'를 선보인다.

<곡성>의 한 장면. 배우 천우희는 다시 한 번 '정점을 짐작키 어려운 연기'를 선보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곽도원 이하 여러 배우들의 고군분투도 있었지만 쿠니무라 준과 천우희의 액션이 눈에 띄는 이유가 있다. 환갑을 넘긴 준과 연약해 보이는 천우희가 험한 산세를 타고 다녔다. 본래 시나리오엔 외지인과 무명이 산 속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본편에선 액션 장면이 삭제됐다. 천우희는 "감독님의 고유성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서운하진 않지만 영화가 흥행하면 감독판을 만드시면 어떨지 제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쿠니무라 준 "시나리오 상에 산에서 뛰어다닌다는 내용이 다 있었고, 실제 내 촬영 분량은 산에서 거의 다했기에 특별히 어떤 부분이 힘들다 이런 건 없었다. 재밌는 작업이었다. 한국 영화 관람도 좋아하고 한국 영화 안에서 연기하는 것 또한 좋은 경험이더라. 또 불러주면 하고 싶다. 다만 이번처럼 캐릭터가 센 것보단 부드러운 역할도 좀 하고 싶다."

천우희 "쿠니무라 준과 싸우는 장면이 다들 궁금하다고 하시더라. 나도 편집본을 보지 못해서 궁금하긴 하다. 그 장면이 담겼으면 무명의 모습이 더 명확했을 것이다. 감독님께서 편집된 것에 대해 절 위로해주시고 그 이유를 얘기해주시긴 했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감독님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④ 공포와 믿음에 대해

쿠니무라 준 "우리의 의심과 공포는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결국 악마를 형상화한 건데 그들을 선하다 악하다 정의 내리진 않았다. 인간이 어찌 보면 나약하니까 이 영화가 나온 게 아닐까. 종교는 결국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본다."

천우희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는다."

그리고 말미에 남긴 천우희의 말. "이 모든 게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잘된다고 당장 좋아하지 말고 잘 안된다고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천우희야말로 갑자기 떠오른 스타가 아닌 한 작품씩 걸어 올라온 배우다. "내 스스로 너무 태평한 게 아닐까 싶지만 결국 내가 잘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그는 "언젠가는 연기에 대한 인정을 받을 거고 영화제 역시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게 바로 좋은 믿음 아닐까. 근거 없는 자만을 물론 경계해야 하지만 근거 없는 두려움 또한 배우로선 피해야 할 덕목이다. 천우희의 지금 모습은 곧 자신을 잘 믿고 실력을 다져온 것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선물이다.

 영화 <곡성>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쿠니무라 준, 천우희, 곽도원, 나홍진 감독

영화 <곡성>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쿠니무라 준, 천우희, 곽도원, 나홍진 감독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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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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