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헨리>의 한 장면. 영화의 시작은 마치 게임의 오프닝을 체험하는 것 같다.

<하드코어 헨리>의 한 장면. 영화의 시작은 마치 게임의 오프닝을 체험하는 것 같다. ⓒ (주)코리아스크린


문득 눈을 뜨니 어느 실험실 안에 누워 있다. 과거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알지도 못하는 한 여자가 옆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고, 이내 다가와 말을 건다. 크게 다치고 죽어가는 나를 그녀가 되살렸다며, 자신이 나의 아내라고 말한다. 잘려 없어진 나의 한쪽 팔과 다리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팔다리를 끼워 조립한다. 말은 나오지 않지만, 일단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실험실을 나선다. 영화 <하드코어 헨리>의 시작이다.

<하드코어 헨리>는 마치 1인칭 슈팅게임(FPS, First-Person Shooter)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듯한 작품이다. 주인공 헨리의 얼굴은 영화 말미에 이르기까지 드러나지 않고, 대신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며 하릴없이 '헨리'가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액션 신들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와중에 죽어 나가는 인물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이 영화의 액션 신들은 <둠>이나 <퀘이크> 시리즈 같은 유명 하드코어 FPS 게임들과 비교해도 결코 수위가 낮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하드코어 헨리>의 한장면

<하드코어 헨리>의 한장면 ⓒ (주)코리아스크린


이 영화가 비디오게임을 연상시키는 게 단지 특유의 연출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가 지워진 채 사이보그로 부활한 헨리는 어드벤처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미스터리한 주인공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헨리를 이용해 사이보그 군단을 만들려는 아칸은 흔히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게임 속 강력한 악당을 연상시킨다. 위험한 순간마다 나타나 헨리를 도와주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는 조력자 지미(샬토 코플리)는 게이머에게 퀘스트(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게이머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전하는 안내자 캐릭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 세계 최초 풀타임 1인칭 SF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하드코어 헨리>의 개봉은 가상현실 기술이 조명받고 있는 요즘이어서 특히 그 의미가 크다. 다만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능동적 '게이머'가 아닌 수동적 '관객'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래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쏟아져 내리는 시각 효과로 피로감을 느끼기 쉽다는 점은 영화 매체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드러낸다. 12일 열린 <하드코어 헨리> 언론 시사에 앞서 주최 측이 관객들에게 에너지 드링크를 건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인지 모른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채로 극장을 나서면 눈앞의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느새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화는 현실이 될 것이다. 오는 19일 개봉.

 <하드코어 헨리>는 비현실적인 영화이다. 가상 현실을 통해 경험하는 비현실.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하드코어 헨리>는 비현실적인 영화이다. 가상 현실을 통해 경험하는 비현실.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 (주)코리아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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