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겪었던 '사랑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남는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속 한 장면.

어린 날 겪었던 '사랑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남는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 속 한 장면. ⓒ 오드


10대 시절 풋사랑의 기억은 아름답게 남는다. 당시의 경험이 특별해서는 아니다. 평화롭고 소소한 일상 속에 누군가를 마음에 두는 것이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그녀)를 향했던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예쁘게 포장해 깊숙한 곳에 넣어둔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떠올리며 꺼내어 보곤 '그땐 그랬지'라며 미소 짓는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열풍을 일으킨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은 30~40대가 된 그 시절의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응답'한 덕분이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사춘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제대로 자극하는 작품이다.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지만 일에 치여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린전신(송운화)이 추억하는 1994년 이야기를 다룬다.

여고생 린전신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유덕화의 아내가 되리라는 당찬 꿈을 꾸는 한편, 전교 회장 오우양(이옥새)을 짝사랑한다. 어느 날 '행운의 편지'를 받은 린전신이 저주를 피하기 위해 문제아 쉬타이위(왕대륙)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를 계기로 둘은 가까워지고, 각자 상대방의 짝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지원군 역할을 하면서 어느새 서로를 마음에 두게 된다.

 쉬타이위(왼쪽)와 린전신(오른쪽)의 미묘하고도 애매한 관계가 영화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쉬타이위(왼쪽)와 린전신(오른쪽)의 미묘하고도 애매한 관계가 영화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 오드


영화에서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건 다름 아닌 주인공 린전신과 쉬타이위의 미묘한 관계다. 쉬타이위를 연기한 왕대륙은 90년대 고등학교의 소위 '일진' 남학생을 다소 과장되면서도 코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했다. 훤칠한 키에 짙은 눈썹,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는 뭇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이런 쉬타이위에게 끌려다니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그를 바른길로 이끄는 린전신의 변화도 볼만하다. 촌스러운 금테 안경에 머리는 대충 빗어 넘긴 그녀가 안경을 벗고 앞머리를 내린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귀여운 여고생이 된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영화 속 린전신과 쉬타이위를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공부와는 담을 쌓은 문제아 쉬타이위가 린전신의 도움을 받아 돌연 모범생이 된다든가, 서로의 마음을 오해해 다른 이성을 만나는 등의 설정에서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떠오른다. 쉬타이위를 향한 학교 측의 부당한 처사에 린전신이 다른 학생들과 힘을 모아 맞서는 장면, 상대를 배려하려다가 상처를 주는 장면은 다분히 작위적이다. 개별 사건들의 연결성은 희미하고 그저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는데 필요한 재료들만 모아 짜깁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소녀시대>는 지난해 여름 대만에서 개봉해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를 제치고 대만 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1990년대 대만 시내와 학교, 롤러장, 문구점 등의 추억의 장소와 카세트테이프, 연예인 책받침, 삐삐 등의 소품들은 1994년 당시 10대 시절을 보낸 국내 관객에게도 어필할 만하다. 그것이 <응답하라 1994>에 그랬듯, 우리가 <나의 소녀시대>에 응답할 수 있는 이유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 '응답'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응답하라 1994>에 열광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 '응답'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응답하라 1994>에 열광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 오드


 영화 <나의 소녀시대> 속 한장면

영화 <나의 소녀시대> 속 한장면 ⓒ 오드



나의소녀시대 말할수없는비밀 응답하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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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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