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하나 씨앗을 뿌린 치에, 그녀가 남긴 꽃이 바로 딸 하나이다.

▲ 꽃, 하나 씨앗을 뿌린 치에, 그녀가 남긴 꽃이 바로 딸 하나이다. ⓒ 영화사 진진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는 2012년 일본에서 출간한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치에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자신이 만든 블로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현미 생활>에 일상을 남겼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순간을 소중히 보낸 치에. 그녀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언론에 소개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내 치에가 세상을 떠난 후에 남편 싱고와 딸 하나는 블로그의 글을 에세이로 엮어 책으로 발간했다. 치에가 쓴 <하나와 미소시루>는 일본 사회에 신드롬에 가까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의 힘으로 가득한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4년엔 일본 NTV에서 스페셜 드라마로 방영되어 2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블로그, 에세이,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어진 <하나와 미소시루>를 많은 사람이 극장에서 만나길 원했다. 남편 싱고는 매번 영화화하자는 요청을 거절했다. 영화의 연출을 아쿠네 토모아키에게 맡기겠다는 제안을 받은 후에야, 싱고는 아쿠네 토모아키가 각본을 썼던 영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의 섬세한 손길을 떠올리며 마음을 돌렸다. 그는 각본과 연출을 모두 아쿠네 토모야키가 맡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락했다. 아쿠네 토모아키는 싱고와 하나를 만난 뒤, 그들이 치에가 가르쳐줬던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건강한 생활 방식을 지키며 여전히 밝게 사는 모습에 감명받아 연출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섬세하고, 밝고, 긍정적인 영화

과하지 않은 상황 자칫 뻔한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소재이지만, <하나와 미소시루>는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억지로 과잉된 상황을 설정하지 않는다.

▲ 과하지 않은 상황 자칫 뻔한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소재이지만, <하나와 미소시루>는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억지로 과잉된 상황을 설정하지 않는다. ⓒ 영화사 진진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이런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옮길 것인지 고민하던 아쿠네 토모아키 감독은 "치에는 언제나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그녀를 통하여 비슷한 처지의 환우들과 가족들이 희망을 얻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무조건 밝고 긍정적인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한 그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처럼 기쁨과 슬픔을 모두 아우르는 솜씨를 <하나와 미소시루>에 마음껏 발휘한다. 배우 히로스에 료코, 타키토 켄이치, 아카마츠 에미나의 뛰어난 연기력과 만나면서 그의 해석은 더 빛을 발한다.

<하나와 미소시루>는 슬픈 사연을 그리는 영화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과잉된 상황이나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분위기가 심각하게 흐를 법하면 가벼운 웃음이 나오게끔 방향을 슬쩍 바꾼다. 치에가 받는 민간요법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상황을 우려한 어머니가 아들 싱고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어머니와 살짝 다투던 싱고가 치료를 받고 부부간의 잠자리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슬그머니 치료하는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영화는 심각함을 벗어난다.

싱고의 친구가 돈을 빌려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보통이라면 친구가 돈을 주면서 여러 이야기를 길게 나누는 연출을 할 텐데, <하나와 미소시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돈을 준 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싱고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는 행동으로 마무리한다. 웃음과 눈물을 관객에게 주는 좋은 타이밍을 감독은 꿰뚫고 있다.

우리는 모두 꽃을 남긴다

영화는 처음에 "인생엔 태어났을 때, 죽었을 때, 결혼식 때 세 번 종이 울린다"는 치에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어서 그는 "이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고 말한다. 극 중에서 꽃을 의미하는 한자 '하나'는 딸 하나(아카마츠 에미나 분)의 이름으로 쓰인다. 그녀가 씨앗을 뿌린 '선택'이란 '꽃'은 결혼식이란 가족 구성, 딸이란 아름다운 선물, 가족에 남긴 소중한 추억이란 열매가 된다.

치에는 싱고와 하나에게 '미소시루(일본식 전통 된장국)'를 남겨준다. 그녀는 하나에게 "미소시루만 만들 수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요리법을 알려준다. 미소시루는 가족의 건강을 걱정하는 치에의 마음이고, 세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의 흔적이다. 또한, 하나가 밝고 힘차게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미소시루는 치에가 가족에 선물한 울타리이며, 끈이고, 힘인 셈이다.

가족을 향한 치에의 온기는 노래를 통해 큰 울림으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딸을 위해 만든 노래의 가사 "내일의 운명은 아무도 몰라, 활짝 꽃피렴, 사랑스런 꽃이여"엔 사랑이 가득하다. 주제곡 '등대꽃'(이 곡은 극 중에서 치에의 언니로 나오는 배우이자 연기자 히토토 요가 치에가 먼 훗날 신부가 된 하나를 지켜보는 시점에서 쓴 노래다-기자 주)의 가사 "수많은 빛을 엮어 3억 광년 뒤에도 함께 있을게"엔 치에의 따뜻함이 깊이 새겨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나는 운이 좋다"는 치에의 대사는 보는 사람에게 여운을 남긴다. <하나와 미소시루>를 감상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 가족사진을 다시 보고, "나는 운이 좋다"라고 외치면 어떨까? 아마도 치에, 싱고, 하나, <하나와 미소시루>를 만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길 원할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사람에게 행복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하나와 미소시루>는 가정의 달 5월에 더욱 어울리는 영화다.

<하나와 미소시루> 포스터 <하나와 미소시루>는 참 5월에 잘 어울리는 가족 영화이다.

▲ <하나와 미소시루> 포스터 <하나와 미소시루>는 참 5월에 잘 어울리는 가족 영화이다. ⓒ 영화사 진진



하나와 미소시루 아쿠네 토모아키 히로스에 료코 타키토 켄이치 아카미츠 에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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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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