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편집자말]
 전신환은 데뷔작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하녀>(2010) 때 이정재의 비서실장으로 분한 그는 "카메라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선배에 비해 난 너무 주눅들어 그 속도를 못 맞추고 있었다"며 "다양한 작품에 역할이 작더라도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전신환은 데뷔작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하녀>(2010) 때 이정재의 비서실장으로 분한 그는 "카메라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선배에 비해 난 너무 주눅들어 그 속도를 못 맞추고 있었다"며 "다양한 작품에 역할이 작더라도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 제이아이스토리엔터테인먼트


조정석, 임수정, 그리고 이진욱이 전면에 나선 영화 <시간이탈자>를 두고 감성, 스릴러, SF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붙는다. 약 3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남자의 꿈이 서로의 시간대에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SF의 냄새가 나고, 사랑하는 연인의 아픈 사연을 다뤘다는 점에선 멜로 느낌이 난다.

그리고 남은 건 스릴러. 극을 관통하는 연쇄살인 사건에서 배우 전신환(33)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극 중 속을 알 수 없는 생물선생으로 분한 그를 지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갈등의 핵심이지만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이 안됐던 차에 그의 얘기가 궁금했다.

비어있던 만큼 채워가다

사실 <시간이탈자>에서 지환(조정석 분)의 동료인 생물선생은 이름도 그 어떤 전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뭔가 사연 있는 인물임은 짐작케 한다. 관객 입장에서 이럴진대 배우는 오죽 답답했을까. "시나리오에 나온 내용이 일부 편집됐다"고 그가 운을 뗐다. 역시 그렇다.

"배우 입장에선 캐릭터의 행동을 파악하게 돼요. 아무래도 생물선생이 강렬한 느낌이라 이미지적인 영화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살인과 범죄가 이어지는 작품들을 보면서 왜 생물선생이 그런 비극적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만들어갔죠. 본래 시나리오엔 개구리 해부 수업 장면이 있었어요. 어떤 학생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자 이 선생이 돌변하는 거였는데, 스포일러 같다고 편집됐죠. 그렇다고 사이코패스로 단정 짓고 해석하진 않았어요. 분노나 심리 조절이 잘 안되는 건데 내 안에 있는 어떤 면을 꺼내기도 했어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력한 만큼 영화에 잘 담긴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자평이었다. 여기서 밝히는 또 하나의 사실. 영화엔 생물선생의 이름이 언급되진 않지만 스쳐지나가는 졸업앨범 장면에서 최종수라는 이름이 보인다. "시나리오에도 이름이 없었는데 신기했다"며 전신환 역시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원래 이름을 넣으려고 현장에서 감독님이 (제 이름을 딴) 신환으로 갈까 김생물로 갈까 묻기도 하셨어요. 살인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요즘 작품에선 필요악이 된 거 같아요. 드라마 <시그널>도 나름 재밌게 봤는데 사실 이런 타임슬립(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작품은 많이 등장했잖아요. <더 폰>도 있었고, 곧 개봉할 <루시드 드림>도 있고요. 소재의 유사성보단 작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같습니다."

"네 눈이 가장 맛이 가있어서 뽑았다"

 배우 전신환은 영화 <시간이탈자>에서 극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는 생물선생 역을 맡았다.

배우 전신환은 영화 <시간이탈자>에서 극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는 생물선생 역을 맡았다. ⓒ 제이아이스토리 엔터테인먼트


분량은 적지만 생물선생 역은 오디션 당시 여러 배우들이 탐냈던 역할이었다. 당시는 2014년, 영화 <소셜포비아>와 <거짓말> 출연 이후 생각만큼 일이 풀리지 않던 시기에 전신환은 "연기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혼자 활동하다가 회사를 계약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었고, 전혀 기대를 안하고 힘을 빼고 봤어요. 다른 사람이 이미 캐스팅 됐을 거라 지레 짐작도 했고요. 멍 때리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 감독님이 '네 눈이 가장 맛이 가있어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저라고 탐이 안났겠어요? 근데 죽자고 뭔가 해보려 했으면 오히려 떨어졌겠더라고요(웃음)."

따지고 보면 모처럼 지르는 역할이다. 전작 <남쪽으로 간다>(2012)에 그는 동성 연인의 육탄공세를 받아주는 인물이었고, <거짓말>(2013)에선 거짓말을 일삼는 여자 친구를 품어주는 현실적인 남자였다. 그런 그가 <시간이탈자>에선 내면의 분노를 분출하게 됐다. "그때 받았던 걸 모아서 터뜨린 것"이라며 전신환이 웃어보였다.

"솔직히 지르는 게 평소 제 성격과 맞는데, 직업이다 보니 받는 리액션이 재밌기도 하더라고요. 무대 연기를 할 땐(전신환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이다-기자 주) 뭔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영화 연기에선 가만히 서있는 장면에서 뭘 보이려 하는 행동이 화면에서 튀어 보이기도 했고요.

이송희일 감독님의 <남쪽으로 간다>에선 오디션이기보단 감독님과 서로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어요. 과거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런 게 영화에 그대로 담겼죠. <소셜포비아> 홍석재 감독은 학교 선배예요. 안면이 있진 않았는데 졸업 작품 때 제가 참여할 뻔했거든요. 여행 가느라 미처 참여 못했는데 <소셜포비아>에서 만나게 된 셈이죠. 사실 없던 역할이었는데 홍 선배가 비주얼적인 캐릭터가 필요하대서 뒤늦게 만들어진 경우였습니다.

<시간이탈자>에서 지르는 장면은 연습을 많이 하는 수밖엔 없었어요. 옥상 장면이 극적이었는데 원랜 강당 안에서 싸우다가 건물이 무너지는 거였답니다(웃음). 제작비 문제로 옥상에서 싸우게 됐죠. 겨울이라 진짜 추웠는데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면서 만들어 나갔어요."

굶주림

나이에 비해 전신환의 데뷔는 늦다. 2010년 <하녀>의 조연으로 상업 영화에 등장한 그는 사실 교내 연극 무대를 비롯해 여러 독립 영화로 실력을 다져왔다. "사실 스물일곱 때까진 무대 연기가 최곤 줄 알았다"고 고백한 그는 <하녀> 이후 뒤늦게 영화의 매력을 깨달았고, 그 뒤로 본인이 직접 프로필을 돌리고 오디션 정보를 찾아다니는 등 발로 뛰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학생 영화든 뭐든 가리지 않고 서른 편정도 찍었을 겁니다. 예전에 출연한 <야간비행>(2011, 손태겸 감독 작)이란 작품이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는데 저도 자비를 들여서 갔거든요. 가니까 아는 영화도 감독도 하나도 없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진짜 아는 게 없구나! 생각했죠. 그때부터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녔고, 온갖 영화를 몰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영화 덕후가 된 거 같아요(웃음)."

그의 말에서 강한 굶주림이 느껴졌다. "그만둘 마음이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만두려 했고, 상대적으로 출연 기회가 줄다보니 자책도 하게 됐다"고 말하던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하지만 공백기마다 "승마, 검도, 펜싱 등 각종 운동을 섭렵해왔다"며 "진짜 연기가 하고 싶을 땐 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했고,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지 않게 절묘하게 피해가며 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갈증을 채우기 위해 불면의 밤을 숱하게 보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시간이탈자>로 그가 얻은 소득은 "잘 채찍질 하는 법을 안" 것이다. 자책이 아닌 반성과 부족함을 채워가며 또 다시 칼을 갈기 시작한 그다.

"그렇죠. 자신을 잘 다스리고 채찍질하려고요. 그저 그런 배우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전신환이 한창 연극 무대에 설 때 뮤지컬 또한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그 역시 "조정석 선배의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뮤지컬 계의 국보급이라는 홍광호 선배와 함께 스터디를 하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님을 알았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일단 영화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고 고백했다.

전신환이 한창 연극 무대에 설 때 뮤지컬 또한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그 역시 "조정석 선배의 <헤드윅>, 조승우 선배의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뮤지컬 계의 국보급이라는 홍광호 선배와 함께 스터디를 하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님을 알았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일단 영화를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고 고백했다. ⓒ 제이아이스토리엔터테인먼트



전신환 시간이탈자 임수정 조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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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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