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연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포스터. 각 팀을 대표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포스터 연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포스터. 각 팀을 대표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아인 랜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190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은 부모를 떠나 홀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수십 년간 소설가이자 극작가, 철학자로 활동했고 1982년 눈을 감았다.

흔히 사람들은 아인 랜드를 '미국 보수우파의 대모'라 평가한다. 적절한 평가다. 미국 보수우파가 지향하는 가치가 개인의 자유라 한다면 그녀는 그 기틀을 확고하게 마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상은 '개인, 특별히 소수 엘리트의 절대적 자유'로 요약할 수 있다.

소수 엘리트는 다수 대중보다 옳은가

▲ 아인 랜드의 여권사진 보수의 대모로 불리는 아인 랜드의 1925년 소련 여권 사진. 1905년생이었던 그녀는 당시 만 20살이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가족의 몰락을 겪은 그녀는 적극적으로 소수 엘리트를 옹호한다.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아인 랜드가 볼 때 사회는 소수 엘리트의 역량에 힘입어 발전한다. 그리고 엘리트의 능력이란 절대적 자유가 보장될 때 최고조로 발현된다. 소수 엘리트와 달리 다수 대중은 그저 제 삶을 꾸리기 바쁜 평범한 존재다.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라면 그보다 못하다. 그녀의 시각에서 성공한 이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폭력이다. 아인 랜드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건 볼셰비키 혁명으로 일가족이 일군 기반을 순식간에 빼앗긴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인 랜드의 사상은 그저 사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미국에 존재했던 그 어느 집단보다 강한 결속력을 가진 서클의 수장이었다. 각계 유명 인사들이 그녀에게 얼굴을 비치기 위해 매주 그녀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1987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네 차례 역임한 앨런 그린스펀도 그중 하나였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앨런 그린스펀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신봉자다. 어떠한 제약도 없는 합리적 인간 이성이 시장, 나아가 사회 전체를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이끌 것으로 믿었다. 주식·부동산시장에 개입하지 않고 주요 경제지표를 관리하는 '비개입 정책'은 그의 임기 동안 FRB의 기본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그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는 그를 한순간에 추락시켰다. 규제가 사라진 자리엔 합리적 경제활동 대신 이기심에서 비롯된 비이성적 투기가 자리 잡았다. 비이성적 과열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필연적 결과였다.

앨런 그린스펀의 패배는 그린스펀의 패배일 뿐이다. 아인 랜드의 사상과 이를 공유하는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소수 엘리트의 무한한 자유'는 여전히 변치 않는 이들의 구호다.

반대자들은 공동체와 규제를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합리적으로 기능할 것이란 생각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정부가 규제와 세금, 복지 등의 조치를 통해 적절히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신뢰할 수 없는 개인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갈래 사상이다. 우리는 이를 자유지상주의와 공동체주의라 말한다.

아인 랜드가 수트를 입었다면

캡틴 아메리카 vs.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가장 미국적인 두 캐릭터다. 그들을 중심으로 어벤져스가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운다. 캡틴 아메리카로 하여금 통제없는 자유를 지지하게 한 선택이 놀랍다. 그런데 둘 중 어느 한 편을 택해야 하는 건 영화 속 어벤져스 멤버들 뿐일까?

▲ 캡틴 아메리카 vs.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가장 미국적인 두 캐릭터다. 그들을 중심으로 어벤져스가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운다. 캡틴 아메리카로 하여금 통제없는 자유를 지지하게 한 선택이 놀랍다. 그런데 둘 중 어느 한 편을 택해야 하는 건 영화 속 어벤져스 멤버들 뿐일까?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달 말 개봉해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상영관 절반을 차지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이 영화는 두 사상의 대립을 오락영화 안에서 펼쳤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게 옳은 길인가, 정부보다 나 자신의 합리적 이성을 믿는 게 나은 방향이냐 하는 선택지를 앞에 두고 어벤져스가 둘로 갈린다. 그렇다, 바로 그 어벤져스가 말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히어로 영화는 소수 엘리트의 영웅적 활약상을 다수 대중의 입맛에 맞게 버무린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나 기연에 가까운 우연, 엄청난 재력과 불굴의 의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남다른 능력을 손에 넣은 이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악당의 위협으로부터 도시와 국가, 지구를 구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

어벤져스는 사회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현대국가는 폭력을 독점하는 주체지만 이들만큼은 예외다. 영화 속 히어로들은 압도적 능력으로 누군가를 상하게 하고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초법적 존재가 따로 없다. 어째서일까. 그들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가 정당방위로 면책된다고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발상이다.

관객에게 히어로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목적이 옳다는 점에서 면죄부를 얻는다. 그들이 '좋은 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들의 궁극적 지향이 무엇인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 정부나 사회가 존속하는 것? 만약 이러한 가치가 서로 대립할 때 이들이 내릴 선택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사회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설령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다. 낫 유어 폴트.

아인 랜드는 결코 사회의 파멸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소수 엘리트의 절대적 자유가 사회의 발전과 합치한다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하고 다수가 낙오하더라도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세상은 발전하니까.

캡틴 아메리카는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전 세계 모든 정부의 요구라 할지라도. '은퇴할 수도 없고 체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이것이 캡틴의 결론이며 영화의 결말이다. 캡틴과 그 친구들은 제도 밖에서 히어로로 남고자 할 것이다. 아인 랜드와 그 추종자들이 그러했듯이.

그렇다면 캡틴 아메리카와 아인 랜드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가 머무르며 생각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빅이슈>(The Big Issue)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김성호의 씨네만세 빅이슈 영화만물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