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시빌워>는 <어벤져스> 2.5편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시빌워>는 <어벤져스> 2.5편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400만 이상이 봤고, 앞으로 600만이 더 볼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아래 <시빌 워>)는 사실 크게 새로울 게 없는 영화다. <시빌 워>를 이끄는 주요 서사, 액션, 캐릭터는 이미 마블의 히어로 영화에서 한번쯤은 접했던 설정들로써, 신선함 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느껴진다.

그런데도 <시빌 워>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후한 분위기다. 역대 외화 흥행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것은 물론, 영화의 짜임새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 역시 무척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시빌 워>는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이러니', 말이 안 되는 재미가 있다

답은, '아이러니'에 있다.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뜻하는 아이러니는 최근 <아가씨>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이 잘 활용하는 영화적 기법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올드보이>를 떠올려보자. 오대수(최민식 분)는 왜 칼이나 총이 아닌 장도리를 들고 복수에 나선 것일까. 아이러니다. 만약 그가 칼이나 총을 들고 복수에 나섰다면 별반 새로울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망치라는 도구 하나가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후반부에 삽입된 음악은 또 어떤가. 아주 더러운 비밀이 밝혀지는 그 순간, 박찬욱 감독은 비발디의 사계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가장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예상 밖의 음악, 부조화, 바로 아이러니다.

 <시빌워> 속에서 서로 반대편에 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는 아이러니 덕분에 뻔하지 않게 느껴진다.

<시빌워> 속에서 서로 반대편에 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는 아이러니 덕분에 뻔하지 않게 느껴진다. ⓒ 디즈니컴퍼니코리아


<시빌 워>로 돌아와보자. 익히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의 뼈대는 '히어로 등록제'를 둘러싼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이다. 그런데 국가를 우선시하는 캡틴은 등록제에 반대하고, 오히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아이언맨은 히어로 통제법에 찬성을 하는 아이러니가 그려진다.

두 사람은 지금껏 자신들이 추구해온 가치관과 어긋난 선택을 함으로써 묘한 부조화를 일으킨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시빌 워>를 단순한 '히어로간의 싸움'이 아닌 '힘'을 둘러싼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느끼게 만든다. 바로, 아이러니의 힘이다. 

<시빌 워>의 가장 큰 볼거리인 '떼거리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빌 워>는 <어벤져스> 2.5편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여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필두로 팔콘,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 앤트맨, 윈터솔져, 워머신, 블랙 위도우, 블랙팬서, 스파이더맨까지 한데 어우러져 싸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다. 이렇게나 많은 히어로가 두 패로 갈라 싸우는 만큼 당연히 CG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스칼렛 위치를 제외하면 <시빌 워> 속 대부분의 히어로들은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현실적인 액션'을 주로 선보인다. 과거 악당들과 싸울 때 에너지빔을 주무기로 사용하던 아이어맨 조차 <시빌 워>에서는 맨주먹을 휘두르며 액션을 소화한다. 아무래도 별다른 초능력이 없는 캡틴과 맞붙어야 하는 까닭이었겠지만, 어쨌든 이 역시 아이러니다. 다수의 히어로를 등장시킨 뒤 초능력 대신 서로 치고 받는 타격 액션 위주로 연출의 방향을 잡은 건 기막힌 '묘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 덕에 관객들은 기존 히어로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전의 반전, 긴장감과 전복의 연속

 초능력 싸움보다 타격 액션이 돋보이는 <시빌워>는 서사, 액션, 캐릭터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마블의 히어로 영화에서 한번쯤은 접했던 설정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빌워>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후한 분위기다.

초능력 싸움보다 타격 액션이 돋보이는 <시빌워>는 서사, 액션, 캐릭터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마블의 히어로 영화에서 한번쯤은 접했던 설정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빌워>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후한 분위기다. ⓒ 디즈니컴퍼니코리아


<시빌 워> 속 아이러니는 영화 끝부분에 이르러 더욱 빛난다. 흔히, 같은 편끼리 싸움이 발생하면, 이들의 화합을 위해 공동의 적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시빌워>에 앞서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만 보더라도 이런 공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로 죽일 듯 싸우던 배트맨과 슈퍼맨은 최강 악당 둠스데이가 나타나자마자 언제 싸웠냐는 듯 힘을 합쳐 대항했다. 심지어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콤비처럼 기막힌 호흡을 자랑했다. 

<시빌 워>의 결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영화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공동의 적'을 조금씩 구체화시켜 나갔다. 하지만, 웬걸. 감독은 여기서 또 한 번의 아이러니를 선보인다. '공동의 적' 대신, 오히려 캡틴과 아이언맨이 다시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마침내 <시빌 워>에 '마침표'를 찍는다.

관객들이 기대했던 '극적인 화해'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영화는 제목 그대로 '내전' 자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또 매듭짓는다. 이런 예상 밖의 아이러니는 앤트맨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비전까지, <시빌 워> 속 각각의 캐릭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아이러니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과 전복이야말로 <시빌 워>가 뻔하지 않게 다가온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시빌 워> 속에 녹아있는 아이러니를 한번 찾아보길 권유 드린다. 아마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창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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