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인간은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진정 소중한 것'을 돌아볼 수도 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진정 소중한 것'을 돌아볼 수도 있다. ⓒ (주)영화사 진진


가족 중 누군가를 병으로 잃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투병 기간 중 제일 힘든 것은 물론 환자 본인이겠지만, 그와 함께 하는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그렇게 고생한 환자를 결국 떠나 보내야만 할 때의 상실감은 또 어떻고요. 살아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은 영원히 떠나 보낸 다음의 일입니다.

이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주인공 치에는 남자친구 싱고와의 결혼을 앞두고 유방암 선고를 받습니다. 치에가 수술을 받은 후에도 두 사람의 마음은 굳건합니다. 원래 계획대로 결혼을 하고, 재발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며 꿋꿋이 8년간의 투병 생활을 이어가지요. 병세가 깊어지자, 치에는 다섯 살 난 딸 하나에게 현미밥과 미소된장국 만드는 법을 가르치며 차분히 이별을 준비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마냥 슬프지 않다

알려졌듯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야스타케 치에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그것이 유명해지자,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그녀를 취재하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죠. 이미 일본에서는 TV 다큐멘터리와 스페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소재를 마냥 차분하고 슬프게만 풀어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치에 가족의 생활도 배꼽 잡게 웃기는 때가 있는가 하면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도 있고, 가슴을 후벼파는 아픔과 찡한 감동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한 장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치에(히로스에 료코)는 어린 딸 하나(아카마츠 에미나)에게 현미밥과 미소된장국 끓이는 법을 가르친다.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한 장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 치에(히로스에 료코)는 어린 딸 하나(아카마츠 에미나)에게 현미밥과 미소된장국 끓이는 법을 가르친다. ⓒ (주)영화사 진진


주인공 치에 역을 맡은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병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분장도 마다하지 않고 치에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돋보이죠. 약 1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하나 역할로 캐스팅된 아카마츠 에미나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귀엽다는 탄성을 자아내면서도 애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의 주제가 '만텐호시(満点星: 만점 별)'에도 사연이 있지요. 이 노래는 대만 출신의 배우 겸 가수인 히토토 요우가 가사를 붙이고 직접 불렀는데, 야스타케 치에가 실제로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그녀의 대표곡 '모라이나키(もらい泣き)'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히토토 요우는 극중에서 주인공의 언니 역할로 직접 출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편집입니다. 장면들 자체만 놓고 보면 괜찮습니다.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려서 폭소와 눈물 바람을 오가게 하니까요. 문제는 그것들이 모두 느슨하게 이어 붙여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템포도 일정하게 느린 편이어서 리듬감이 부족하죠. 따라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훌륭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블로그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드는 쪽입니다.

실화라고는 하지만 몇몇 설정도 거슬립니다. 집안일에 거의 신경쓰지 않는 싱고를 통해 드러나는 가정 내 남녀 성역할 구분 문제, 아이 낳는 문제를 거의 강요한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린 아이에게 밥하고 된장국 끓이는 걸 저렇게까지 해서 가르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는 점 등이 그렇지요. 일본 사회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맥락을 고려하면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출연배우 (왼쪽부터) 싱고(타키토 켄이치),  치에(히로스에 료코), 하나(아카마츠 에미나). 이 영화는 '어차피 끝날 인생이라면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 섞인 물음을 던져준다.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의 출연배우 (왼쪽부터) 싱고(타키토 켄이치), 치에(히로스에 료코), 하나(아카마츠 에미나). 이 영화는 '어차피 끝날 인생이라면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 섞인 물음을 던져준다. ⓒ (주)영화사 진진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멀쩡하게 잘 살아 있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 예기치 못한 운명의 장난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실 때문에 자포자기해서, "어차피 끝날 건데 뭐하러 열심히 사느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조금만 바꿔주면, '어차피 끝날 건데 조금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 섞인 물음이 되지요. 좀 더 나은 하루하루를 위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행복감을 높여줍니다.

이 영화 속 치에의 짧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바로 그런 인생의 진실을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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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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