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전주영화제에서 '자백' 첫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있는 최승호 감독

4월 30일 전주영화제에서 '자백' 첫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있는 최승호 감독 ⓒ 성하훈


영화를 관람한 한 외국 관객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간첩 사건) 조작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국가정보원은 왜 그러는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최승호 감독은 이렇게 답변했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다. 국정원은 그런 단서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국정원은 공포를 통해서 컨트롤하고 지배할 수 있다. 국정원 안에 있는 개개인들은 간첩을 잡으면 어마어마한 포상을 받는다. 개인적 조직적 세력의 이해관계 등이 간첩을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17회 전주국제영화제 최대 화제작 가운데 하나인 <자백>이 지난 4월 30일 오후 첫 공개 됐다.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비롯해 국가권력의 전횡을 파헤친 영화는 모든 좌석이 매진될 만큼 높은 관심 속에 상영이 이뤄졌고, 이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 역시 열띤 분위기가 가득했다.

영화 <자백>은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고리로 국정원이 은밀히 자행하고 있는 반인권적 행태와 국가권력의 간첩 조작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조명했다.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했던 <뉴스타파>가 그간의 기록을 정리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금기와 성역에 카메라를 들이댄 최승호 감독의 근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권력이 휘두르는 검에 맞선 카메라의 창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 뉴스타파


2013년 발표된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사건'은 결국 재판 과정을 통해 국가기관이 허위 문서를 동원해 평범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누명을 씌운 '간첩 조작 사건'으로 공식적으로 결론난 매우 드문 사례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후 서울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유우성씨는 오빠를 찾아 남으로 온 여동생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의해 6개월 동안 한 곳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금돼 조사를 받던 여동생이 국정원의 강압에 못 이겨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하면서 시련의 나날이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자백>은 이 여동생의 눈물로부터 시작한다. 국정원의 압박에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한 여동생 유가려씨는 카메라 앞에서 계속 훌쩍이며 국정원의 조사 과정을 증언한다. 영화는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가 간첩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과정에 집중한다.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자 했던 정보기관의 조작 행태와 40년간 이어오고 있는 비슷한 조작 피해자들의 실태를 고발한다.

<자백>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진실을 찾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끝내 거짓과 조작을 밝혀내는 저널리즘의 모습이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영화는 음험한 권력의 생리를 까발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권력이 휘두르는 검 앞에 카메라의 창으로 맞대응하는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거짓으로 점철된 국가기관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기자의 올곧은 정신에 경외감이 생길 정도다. 결국 진실이 드러나고 죄 없는 자가 풀려나는 모습을 보며,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정보기관 관계자들이나 조작의 주체들을 향해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고 한마디 사과라도 듣기 위해 몸싸움도 마다치 않는 집요함은 이 작품이 안겨주는 쾌감이기도 하다. 이런 언론인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여전히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일말의 양심이나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철면피한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과 전 국정원장 원세훈의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갖게 만든다. 뻔히 드러난 증거에 대해서도 궤변만을 일삼는 자들이 국가권력의 중추 기관에 있다는 사실은 절망스럽다. <자백>은 이런 행태가 수십 년을 이어오며 얼마나 많은 피해를 만들었는지 목도하게 한다. 마지막 자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최승호 PD, 다큐 영화 감독으로 입봉

 <자백>의 한 장면. 유우성 사건 수사 검사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최승호 감독

<자백>의 한 장면. 유우성 사건 수사 검사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최승호 감독 ⓒ 뉴스타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방송사 PD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입봉한 최승호 감독은 제작 의도에 대해 "3년 동안 놓지 않고 취재를 해온 것이었는데, 국민들과 나누고 싶었다"며 "국정원이라는 게 중앙정보부부터 시작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공포로 지배해 왔다, 40년 전 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후손이나 자식들도 공포에 지배당한다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최 감독은 "공포"라고 답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도 되나? 더 취재해도 되나? 등 자기검열에 대한 공포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최 감독의 고뇌가 특히 엿보이는 부분은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조사받다 숨진 한종수씨의 북쪽 가족에게 한씨 사망 사실을 전해주는 장면이다. 휴대전화로 연결된 딸에게 자신을 아버지의 친구라고 밝히며 소식을 전하는 감독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최 감독은 통화 시도를 두고 여러 고민이 있었음을 밝히면서 "딸과 전화를 할 때는 북한에 들어왔는지 알아야겠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딸에게 아버지 죽음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그 사람을 간첩으로 믿었다면 북한 정부에 알렸어 하고 가족에게도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묻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최 감독은 또한 국정원이 그간 발표한 다른 간첩 사건에 대해서도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없다가 이명박 정부 때 정보기관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간첩 조작이 시작됐다"며 "원정화 사건도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는 조작으로 본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합동심문센터 6개월 동안 '계속 너 간첩이지' 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탈북자 간첩 조작을 밝혀낸 것이 13건"이라며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저격' 다큐 상영, 전주영화제는 무사할까?

한편 관객들의 관심은 다큐 <자백>을 공개한 전주영화제가 무사할지로 이어졌다. <다이빙벨> 상영 후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는 최근 부산영화제 사태에 따른 여파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상영작에 대해서는 전주시도 몰랐고 어떤 전화도 없었다"면서 "요즘 부산영화제가 곤혹스러운 입장이지만, 전주는 괜찮을 거다"며 "개봉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 감독도 "어떻게 해야 많은 분께 이 영화를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영화를 한국의 극장에서 받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CJ와 롯데가 다 두려워한다, 시민들과 함께 뭔가를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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