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게 지난 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한 주였다. 한화는 지난 4월을 6승 17패, 승률 0.261로 최하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감했다. 하지만 지난주만 놓고 보면 기아와 삼성을 상대로 2연속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주간 성적 4승 1패로 반전의 계기를 동시에 마련했다.

지난주의 한화는 모든 면에서 지난해 상반기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켰던 당시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특유의 벌떼마운드와 작전야구로 필요할 때 흐름을 가져오는 집중력과,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돋보였다.

기아전에서 4월 26일 양현종, 28일 헥터 노에시 등 상대 에이스급 투수들이 등판했음에도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은 한화 선수들에게 오랜만에 자신감을 안겨줬다. 주말 3연전에서 만난 삼성을 상대로는 두 번이나 8회에만 역전승을 거두는 뒷심을 발휘했다.

한화 상승세 이끈 정근우

 1일 대전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에 승리한 한화 선수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1일 대전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에 승리한 한화 선수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승세의 선봉장은 역시 정근우였다.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정근우는 지난주 28일 기아전부터 30일 삼성전까지 3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8안타 2홈런 5타점을 몰아쳐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팀의 해결사로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8일 기아전에서는 11회 팽팽한 연장승부의 대미를 장식하는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 29일 삼성전에서는 보기드문 한 경기 멀티홈런을 기록하며 한화의 8회 빅이닝(7득점)과 팀의 역전승에 발판을 마련했다. 30일에도 팀은 패했지만 정근우는 멀티 히트와 타점을 기록하며 끝까지 추격전을 이끌기도 했다.

외국인타자 윌린 로사리오도 삼성과의 3연전 내내 안타를 기록하며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1일 경기에서는 지난 4월 8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2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3타점을 쓸어담으며 팀의 역전승에 기여했다. 이름값에 비하며 부족한 장타력과 포지션 문제로 고전하며 출전이 들쭉날쭉하던 로사리오가 1루수가 자리잡는다면 한화는 앞으로 선수운용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선발진의 퀵후크와 불펜 총력전으로 대표되는 마운드 운영은 여전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심수창, 이태양 등의 가세로 시즌 초반보다는 선발진의 가용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점.

안정감은 아직 부족하지만 마에스트리가 두 번의 퀄리티스타트와 선발승을 홀로 책임지며 분투하고 있고, 송은범 역시 어쨌든 로테이션은 꾸준히 지키고 있다. 지난주 경기내용을 살펴보면 선발이 크게 못해서 교체했다기보다는 경기흐름상 의도적으로 투수교체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갔거나 투구 관리 차원의 강판도 있었기에 무조건적인 퀵후크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역시 한화 마운드의 중심은 불펜이었다. 필승조로 분류되는 권혁-박정진-윤규진은 28~30일간 나란히 3연투를 기록하기도 했다. 1일 경기에서는 이들 3인방을 투입하지 않은 대신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송창식과 정우람을 조기에 투입한 승부수가 대역전승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고비 넘겼지만, 우려되는 불펜 혹사

 1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1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주 선전으로 한화가 일단 한 고비를 넘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한화가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고 정상궤도에 접어들었냐고 판단하기는 아직 섣부르다.

4승 1패라는 호성적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한화의 야구는 여전히 똑같은 불안 요소들을 안고 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에만 올인하는 야구'는 지난 시즌에도 초반에는 그럭저럭 통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과부하를 초래하며 무너졌다.

최근 혹사 논란과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성적에 대한 조급증으로 선수들을 쥐어 짜내는 야구를 고집하고 있다. 권혁(4.1이닝 83구), 송창식(4.2이닝 80구), 윤규진(2.2이닝 50구), 정우람(7이닝 98구) 등 한화 주력 불펜투수들은 지난주에만 4경기에 등판했고, 박정진도 3연투 한 차례를 기록하며 5.2이닝 77구를 던졌다.

단순히 이닝만 보면 많이 던진 것 같지 않지만 이들은 대부분 지난해애 이어 올 시즌도 초반부터 빈번하게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이기고 있는 상황뿐 아니라,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올랐다. 보직도 불분명했고 연투도 빈번했다. 이런 페이스라면 올 시즌도 지난해 권혁처럼 100이닝을 넘기는 불펜투수들이 대거 나올 수 있다. 당장은 승리가 급하다고 하겠지만 지난해 그러했듯, 이런 식으로도 후반기까지 버틴다는 보장은 없다.

선발투수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부족도 여전하다. 송은범은 올해도 6경기에서 승리없이 4패만을 기록하며 자책점 6.48이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치고 있다. 5이닝 이상을 던진 경우는 단 두 번뿐이다. 여기에는 송은범의 부진도 있지만 최근에는 투구 내용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안타나 볼넷 1~2개를 내주자 교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이태양은 실전 등판전에 불펜에서만 150개가 넘는 투구를 지시한 것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화 선발진에서 그나마 제 몫을 해줬던 마에스트리는 올 시즌 유일하게 5일 휴식 이후 등판한 26일 기아전에서 6이닝 무실점 선발승으로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보였다. 하지만 4일 휴식 이후 등판한 1일 삼성전에서는 2이닝 만에 볼넷만 7개나 내주는 부진을 보이며 강판됐다. 오히려 이날은 김성근 감독의 평소 패턴을 감안하면 선발투수의 퀵후크가 오히려 늦은 편이었다.

마에스트리는 지난달 15일 LG전과 20일 롯데전에서도 4일 휴식 이후 등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는 마에스트리의 실제 컨디션을 떠나 어쨌든 기록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5월 반격 노리는 한화, 불안요소는 여전

지난해 상반기 한화의 1선발로 활약한 미치 탈보트 역시 4일 휴식보다 5일 휴식 이후 등판 경기에서 내용이 훨씬 좋았지만 김 감독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오히려 탈보트가 부진에 빠지자 선수의 기량에 책임을 돌리는 식의 비난으로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김 감독이 선수들 개개인의 특성과 기록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을 편식하거나 스스로의 감에만 의존하여 선수들을 기용한다면 실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화는 5월 반격을 노리고 있다. 한화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와 안영명의 가세는 이미 지쳐있는 한화 마운드에 숨통을 틀 수 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그동안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뒤틀린 야구관만을 고집한다면, 지난주의 깜짝 돌풍은 치유제가 아니라 더 지독한 '마리화나'가 되어 한화를 역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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