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투 비 블루>의 한 장면.

영화 <본 투 비 블루>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17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을 연 작품이 의외다. 그간 흐름과 달리 음악영화, 그것도 정통 재즈 음악으로 가득 찬 영화 <본 투 비 블루>였다.

28일 본격적인 개막전 언론에 선 공개된 해당 작품은 일단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 신선하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에단 호크와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로베르 뷔드로 감독이 만났다. 에단 호크가 전설의 재즈뮤지션 쳇 베이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재즈로 채워진 1960년대 미국

기본적으로 한 인물을 조망했다지만 <본 투 비 블루>는 일대기가 아닌 1960년대, 즉 쳇 베이커가 마약 복용으로 무너진 이후 다시 재기를 꿈꾸던 시기를 집중해서 다뤘다. 인종 갈등이 불거지고 록 음악의 급부상과 동시에 재즈가 무너지던 당시 미국에서 말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시대였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지극히 사적인 쳇 베이커의 모습들이다. 두 번의 이혼, 13년 우정을 이어온 제작자와의 결별, 그리고 다시 찾아온 사랑과의 갈등 위에서 쳇 베이커는 불안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 운명에 수긍한듯 쳇 베이커는 시대에 있어 치열하게 저항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트럼펫을 부여잡고 무너진 자신을 세우고자 할 뿐이다.

사실 그게 아이러니다. 당시까지 흑인의 아픔을 대변하며 영혼의 장르로 성장하던 재즈를 백인이, 그것도 음악의 변방 웨스트코스트 출신의 시골뜨기가 섭렵해 간다. 애쓰지 않아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텐데 기어코 쳇 베이커는 거꾸로 걷는다. 백인의 탈을 썼지만 그의 우상은 흑인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였고, 전처와 애인 역시 검은 피부의 백인들이었다.

프로파간다도 없었고, 각성도 없었다. 그저 그는 자신 앞에 주어진 운명에서 끌리는 대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바로 쳇 베이커 자신이 된 셈이다. 영화 역시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쳇 베이커의 특정 시기를 오롯이 묘사해낸다.

후반부를 위해 달리는 영화

 28일 오후 전주 영화제작소에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본 투 비 블루>가 상영됐다. 상영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 로베르 뷔드로 감독, 작곡가 데이빗 브레드(좌측부터)가 참석했다.

28일 오후 전주 영화제작소에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본 투 비 블루>가 상영됐다. 상영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 로베르 뷔드로 감독, 작곡가 데이빗 브레드(좌측부터)가 참석했다. ⓒ 이선필


주요 골격은 이렇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쳇 베이커를 기리며 전기 영화를 만든다는 설정을 과거로 놓고, 마약에 망가진 쳇 베이커가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함께 교차시킨다. 시사 직후 이어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로베르 뷔드로 감독은 "재즈가 무너지던 시기에 재즈로 재기해야 했던 쳇 베이커가 모든 걸 되찾으려 하는 모습이 강하게 울렸다"고 연출 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마약 복용 후 이탈리아 어느 감옥에 수감됐을 때 한 제작자가 영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제작되진 않았지만 로베르 뷔드로 감독은 "그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졌다는 가정 하에 시나리오를 써갔"다.

음악이 주된 작품이기에 아무래도 영화를 채우고 있는 여러 노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버 더 레인 보우(Over The Rainbow)'를 비롯해 '렛츠 겟 로스트(Let's Get Lost)' 등이 선명하게 재현된다. 다만 원곡과는 좀 다르다. 음악감독이자 재즈 뮤지션인 데이빗 브래드는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음악만으로 어떤 사건이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서사적으로 편곡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시대적 상징이 된 쳇 베이커랄까. <본 투 비 블루>를 채우고 있는 깊고도 가라앉은 정서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연인과 사랑을 키워가다가 재즈의 본령을 깨닫게 되는 후반부 15분은 꼭 놓치지 말길! 에단 호크가 약 1년 간 트럼펫 연주와 성악을 배웠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수작이다.

국내 개봉은 오는 6월 중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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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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