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한 장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회 비판 코드를 담은 드라마가 최근 브라운관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한 장면 <동네 변호사 조들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회 비판 코드를 담은 드라마가 최근 브라운관에 자주 노출되고 있다. ⓒ KBS


세월호 이후 많은 드라마가 어긋난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몽주의적 방식'을 택했다. 방향은 달라도 세상을 향해 사람 사는 도리를 이야기하는 드라마들. 하물며 전쟁과 테러, 자연재해를 빌어 결국은 사랑 이야기를 했던 변형된 로맨틱 멜로 <태양의 후예>마저도 유시진을 통해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하며,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유시진의 보편적 인류애는 무책임한 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의 마음도 흔들고, 드라마를 보는 평범한 시청자들의 마음도 흔들어버렸다. 결국 <태양의 후예>가 '대한늬우스'같은 뻔한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그 문제의식의 발원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사회 윤리의 위기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세상 향해 목소리 높이는 계몽주의적 드라마들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송혜교 커플의 로맨스에 인류애를 접목했다.

<태양의 후예>는 송중기-송혜교 커플의 로맨스에 인류애를 접목했다. ⓒ KBS

드라마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싸움을 진행한다. 최근 높은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보였던 <리멤버-아들의 전쟁>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시그널>은 공통적으로 주인공이 구조적인 사회악을 향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1990년대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이든, 아버지를 잃은 서진우(유승호 분)든, 한때 잘 나가던 검사 조들호(박신양 분)든,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대는 달라도 한결같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국가와 손잡은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비호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공적 기구, 그리고 그의 엄호를 마다치 않는 법과 그 제도 등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용산 참사', '화성 연쇄 살인사건' 등 실제 우리 현대사회에서 벌어진 현장과 버무려진다. 드라마는 현실에서 패배감과 상실감을 준 사건들을 복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며 시청자에게 현실 세계가 어떠했어야 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설파한다.

물론 싸움의 방식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르다. <시그널>이 미제 사건을 통해 당시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 배후에 숨겨진 공공의 적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리멤버>는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 장장 20에 달하는 때론 선보다 악이 더 준동하던 싸움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악의 전횡을 증명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법정을 빌어 사회악의 실체를 밝혀간다는 방식에 있어서는 <리멤버>와 유사하지만, 그 표현은 명랑 만화처럼 단순 명쾌하다.

현실에서 결론 나지 않거나 패배로 끝난 싸움을 드라마로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판타지다. 답답한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 되짚으며, 드라마들은 그 개연성을 현실감 있게 엮어내기 위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구원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버지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 유승호가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는 이야기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아버지의 죄를 벗기기 위해 아들 유승호가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선다는 이야기다. ⓒ SBS

하지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결국 드라마들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의 결론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국가나, 공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우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된 화법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개인의 성공에만 뜻을 두었던 '개인' 강모연은 '진짜 군인' 유시진을 만나 진정한 히포크라테스로 거듭난다. 드라마는 유시진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사실 그 속에는 출세 지향적이던 의사 강모연의 인류애적 성장이다.

마찬가지로 아들의 전쟁을 주제로 한 <리멤버>는 극 초반, 멋지게 성장한 배우 유승호의 미모에 흥행을 기댔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법정에서 서진우(유승호 분)를 배신하고 남규만(남궁민 분)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박동호(박성웅 분)의 개과천선에 집중했다. 아예 자본의 개로 시작해 개과천선한 조들호의 유쾌한 반란으로 꾸며진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어리숙한 순경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정의를 지킨 <시그널> 이재한도 있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주인공의 영웅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와줄, 기꺼이 그들의 편에 서 줄 '사람'이 필요하다. <동네 변호사 조들호>에서 증인이 나타나지 않는 법정에서 관심을 호소하는 조들호 앞에 나타나는 '깨인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시대의 아픔을 호소하고 관심을 호소하는 이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그 해결의 열쇠를 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드라마는 결국 사람이 변하지 않고서는 현실도 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역설적으로 증명된 인간의 선의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 역의 유준상

▲ <피리부는 사나이>의 윤희성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 하지만 윤희성의 캐릭터가 급변하는 모습에서, 드라마는 다시 희망을 얘기한다. ⓒ tvN


일련의 계몽주의적 드라마의 흐름은 지난 26일 종영한 tvN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정점을 맞이했다. 최근 불거진 표절 논란이 안 그래도 반응이 미미한 이 드라마의 발목을 잡았지만, 표절과 관련된 책임과 별개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가치가 있었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기업 협상가로 잘 나가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도심 테러 현장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연인의 죽음을 통해 각성한 주성찬은 경찰 위기 협상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 대테러 협상가로 변신한다. 드라마는 성찬의 '협상'과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통과 무관심, 그리고 그 속에서 자행된 약자들의 처절한 희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13년 전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숨어있는 부조리들을 하나씩 밝혀간다. K그룹이라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경찰, 그리고 그것을 침묵했던 언론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내던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 다수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K그룹 본사 건물을 향한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침묵하거나 방조했던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날을 세운다.

마치 법정에서 소환되지 않는 증인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가 우리 사회의 범죄를 묵인한다고 호소했던 조들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드라마는 다수 시민들의 투표로 항로가 변경되는 납치된 비행기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 그리고 양은냄비 같은 여론이 있었음을 질타한다.

하지만 테러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다수의 방관과 표변하는 여론을 질타했던 드라마는 16회 '인간의 선의'라는 판타지로 급회항한다. 인명의 희생조차 마다치 않고 진실을 밝히려 했던 윤희성의 마지막 테러는 결국 '인간들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을 깨기 위한 자신마저 내던진 살신성인이 된다. 자폭을 향해가던 비행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무너지지 않는 다수들의 선의로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인 이야기를 한다. 99번의 절망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결국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싹튼다고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 동네 변호사 조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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