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糖)하고 계십니까?'

4월 3일 방영된 < SBS 스페셜 > 제목이다. 이 방송을 통해 SBS는 최근 불고 있는 단 음식의 허상을 다뤘다. 저렇게 넣어도 괜찮아 싶을 정도로 설탕을 부어 넣는 음식 프로그램. 음식을 먹고 엄지를 치켜드는 패널. 단맛을 예찬하는 음식 사업가들. 쥐도 새도 모르게 설탕에 대한 부-건강한 인식은 사라진다. 음식은 달아야 제맛이라는 환상은 덤이다. 그사이 오감으로 느껴야 할 본연의 참맛은 사라진다. 서로 다른 입간판이 달려있어도, 서로 다른 동네에 위치해도 이제 음식점은 한 가지 맛만을 만들어 낼뿐이다. 저렴한 감미료 맛이다.

이러한 설탕의 대중화는 다만 음식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4월 극장가 역시 단맛 나는 '슈가-무비'들로 도배됐다. 시작은 2월 말이었다. 2월 28일 아카데미 영화제 전후로 작품성 있는 해외작품이 몰려 배급되었다. 영화제가 해외 좋은 영화들의 수입도 중단되었다. 한국 영화 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준익 감독의 <동주>와,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 등의 몇몇 영화가 희미하게 맥을 이었지만, 이마저도 3월 초가 마지막이었다. 자극적 소재로 무장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슈가-무비'는 맛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영화를 관람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입맛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감칠맛이 꽤 중독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영화일수록 영화가 주는 포만감이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뤄지던 사고의 확장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영화 속 의뭉한 장면은 의미를 확장하지 못한 채 금세 증발한다. 어차피 고민해봤자 의뭉스럽긴 마찬가지다. '보는 내내 재미있었으면 됐지', '영화는 영화지'란 생각이 사고를 지배한다. 지금의 삶과 현실에 영화를 결부시키려 했던 나를 오히려 타박한다. 영화가 뭐 대수라도.

하지만 한 가지 감정만은 버릴 수 없다. 저번 주 봤던 영화와 지금 봤던 영화와 구분되지 않는다. 분명 다른 장르의, 다른 주제의 영화인데 같은 맛이 혀를 맴돈다. 기시감이다. 영화가 달고 있는 이름도 시놉시스도 다르지만, 맛의 구분 따윈 없다. 오직 한 가지 맛이 지배할 뿐이다. '슈가 맛' 납치, 살인, 누명, 비겁한 언론 등 비슷한 소재가 여러 영화에서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된다. 영화라는 재료의 본연의 맛은 사라지진 오래다. 싸구려 감미료 맛으로 어느새 극장가를 하향 평준화시켰다. 셰프의 이름도, 음식의 가격도 기억나지 않는다. 멀티플렉스가 레스토랑이라면 지금 여기는 허울 좋은 삼류 식당이다.

당하고 싶지 않은 관객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적지만 다음 달부터 본연의 맛을 지닌 영화가 제법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첫 주자는 '나홍진' 주방장이다. 자극적 주제와 다작 배우의 조합이지만 분명 그 재료를 손질하는 솜씨에서는 더욱 꼼꼼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다음에는 박찬욱 감독이다. 그만의 특유의 분위기와 미장센은 그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독보적인 풍미를 지닐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소개된 영화들이 우리 극장가를 찾는다. <아무르>의 향수를 가진 씨네 필이라면 한번 맛봐도 좋은 <45년 후> 그리고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오랜만의 대만 영화. <나의 소년 시대>,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클랜> 등이 개봉될 예정이다. 개성적이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낸 영화를 더욱 고대하며. 우리 멀티플렉스가 다양한 주방장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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