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 위키피디아
해마다 4월 15일이면 미국 메이저리그의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달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1919~1972)을 기념하는 '재키 로빈슨 데이'다. 4월 15일은 로빈슨이 1947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날짜이며, 42번은 그의 등번호다.
야구를 넘어 미국을 바꿔 놓은 재키 로빈슨당시만 해도 야구장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흑인 선수들은 '니그로 리그'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로빈슨이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데뷔하며 차별의 벽을 허물었다.
물론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상륙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관중석에서는 온갖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고, 심지어 같은 팀인 다저스 선수들도 그를 동료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저스의 백인 유격수 피 위 리즈가 갑자기 경기 도중 로빈슨과 어깨동무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로빈슨을 향한 야유를 멈추라는 무언의 호소였다.
당시 리즈는 왜 로빈슨과 어깨동무를 했느냐는 질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피부색 따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일갈하며 대인배다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리즈의 용감한 호소에 부끄러워진 관중들은 야유를 멈췄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장면으로 회자되는 이 가슴 뭉클한 어깨동무는 동상으로 제작되어 다저스의 옛 연고지인 브루클린에 세워졌고, 2013년 개봉한 로빈슨의 일대기 영화 '42'의 포스터를 장식했다.
▲ 재키 로빈슨과 피 위 리즈의 어깨동무를 내세운 로빈슨의 일대기 영화 '42'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야유가 아닌 응원을 받은 로빈슨은 본격적으로 실력을 펼쳤다. 데뷔 첫해 3할대 타율에 도루왕까지 차지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이 밖에도 1949년 내셔널리그 타격왕과 MVP, 6년 연속 올스타 선정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1955년에는 다저스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로빈슨의 가장 큰 업적은 그가 은퇴한 1956년에는 메이저리그의 흑인 선수 200여명까지 불어난 것이다. 그는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는 명언이 생겨날 정도로 야구를 넘어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어 로빈슨의 등번호인 42번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앞으로 그 어떤 선수도 메이저리그에서 42번을 달 수 없다. 메이저리그가 로빈슨을 영원히 기억하는 방식이다. 로빈슨이 잠든 묘비에는 그가 생전 남긴 명언이 새겨져 있다.
"중요한 인생이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A life is not important except in the impact it has on other lives.)
'개척과 혁신'... 다저스의 스포츠 정신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척과 혁신'으로 일컫는 다저스 구단의 스포츠 정신이다. 다저스의 결단이 없었다면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도 불가능했다. 다저스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과감히 걸어갔고, 그 발자국은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선수 보호를 위해 1941년 최초로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것도 다저스다. 당시에도 헬멧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지만 선뜻 의무 착용에 나서지 않았고, 헬멧의 성능도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유명 신경외과 의사 조지 베넷이 개발한 새 헬멧을 다저스가 가장 먼저 도입해 의무화를 선언하자 다른 구단들도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또한 1958년 브루클린에서 서부 LA로 연고지를 옮기며 히스패닉 주민을 위해 최초로 스페인어 중계방송을 시작했고, 1980년에는 메이저리그 최초로 풀컬러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팬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다저스는 '야구의 세계화'도 이끌었다. 미국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아시아, 남미, 유럽 등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여기서 다저스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다.
다저스는 프로 스타도 아닌 대학 2학년에 불과했던 박찬호를 전격 영입하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놀라게 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던 다저스의 도박은 박찬호를 스타로 키워내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박찬호도 자신을 메이저리그로 데려온 다저스의 개척 정신을 이어갔다. 마이너리그의 시련을 극복하고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던 한국의 야구의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열었다.
박찬호의 활약에 자극받은 다른 구단들도 본격적으로 한국 선수 영입에 나섰다. 그 덕분에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김선우 등 한국 야구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찬호는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고 현재는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 박병호 등이 새로운 세대가 박찬호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진보적인 구단으로 불리며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매년 4월 15일이 재키 로빈슨 데이가 오면 다저스가 그동안 쌓아온 노력은 더욱 빛이 난다. 앞으로 다저스가 또 어떤 혁신을 만들어갈지 주목된다.
▲ 지난해 4월 15일 LA 다저스의 '재키 로빈슨 데이'를 소개하는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메이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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