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포스터. 주인공 카를로스는 일에만 몰두하며 가족에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는 서서히 가족의 분열을 일으키고, 금융 위기라는 스토리와 엮이며 흥미롭게 그려진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포스터. 주인공 카를로스는 일에만 몰두하며 가족에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는 서서히 가족의 분열을 일으키고, 금융 위기라는 스토리와 엮이며 흥미롭게 그려진다. ⓒ 위드라이언픽쳐스


가족문제, 그리고 사회 이면의 금융 위기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출근하던 은행 지점장 카를로스(루이스 토사 분)에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카를로스가 탄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며, 누구라도 차 바깥으로 나갈 땐 폭파하겠다고 협박한다. 범인이 요구하는 것은 카를로스의 재산과 그가 일하는 은행의 돈. 카를로스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범인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영화 속 상황은 낯설지 않다. 표적이 된 사람, 자동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범인의 목소리, 범인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등은 '버스'라는 공간을 이용했던 <스피드>와 '공중전화부스'에서 펼쳐졌던 <폰 부스>에서 본 상황과 흡사하다. 또한, <다이 하드>와 <테이큰>에서 자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형상을 카를로스에게 투영해 부성애를 강조한 인상도 짙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은 범인이 누구이고, 이런 범죄를 실행하도록 이끈 동기는 무엇인지, 카를로스는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를 기승전결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갈등을 겪는 카를로스 가족의 상황, 범인과 카를로스가 속한 사회의 치부도 모습을 드러낸다. 카를로스의 가족 문제가 보편성을 띠고 있다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시각엔 2012년 스페인의 금융 위기가 존재한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한 장면. 카를로스에게 돈을 요구하는 범인은 과장과 거짓이 가득했던 금융 상품의 피해자였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한 장면. 카를로스에게 돈을 요구하는 범인은 과장과 거짓이 가득했던 금융 상품의 피해자였다. ⓒ 위드라이언픽쳐스


폭탄의 다양한 의미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국가 중 하나가 스페인이었다. 유로존에서 네 번째로 경제 규모가 컸던 스페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경제 상황이 휘청거리자 국제 채권단의 은행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위기에 놓였던 당시 스페인의 은행은 사기성 금융 상품을 팔았고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영화 속 상황은 여기에 기초한다.

가족과 사회의 문제를 발판으로 삼아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은 '폭탄'의 의미를 다양하게 확장한다. 카를로스의 가족은 해체 위기에 직면했다. 일에만 몰두하며 가족에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카를로스에게 아내 마르타(고야 톨레도 분)는 지쳤다. 아들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딸과 마찰만 빚는 카를로스에게 가족의 붕괴는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자동차 좌석 아래에 설치된 폭약처럼 가족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았다.

카를로스에게 돈을 요구하는 범인은 과장과 거짓이 가득했던 금융 상품의 피해자였다. 사기란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은행에 그는 보복('레트리뷰션-Retribution'은 앙갚음을 의미한다)을 시도한다. 범인이 요구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객에게 가짜 금융 상품을 권유하는 카를로스에게 이들은 한결같이 "안전한가요?"라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대답하는 카를로스의 모습과 과거 범인에게 금융 상품을 팔던 은행의 모습은 다를 바 없다.

그가 앉아 있던 폭탄은 금융 상품의 부조리함을 개인의 문제로 몰고 가는 분위기, 책임을 물었을 때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한 태도 앞에서 좌절했던 사람들이 느낀 분노의 응집체로 읽을 수 있다. 그들의 분노도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이었던 셈이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빠른 전개 속도를 통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빠른 전개 속도를 통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 위드라이언픽쳐스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은 시종일관 빠른 속도로 달린다. 속도에서 뽑아낸 긴장감은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영화를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는 '폭탄'이란 서브 텍스트다. 폭탄은 복수의 수단이었고, 가족 해체의 위기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고객에게 팔았던 금융 상품이 지녔던 폭탄의 의미도 내포한다. 피해를 본 사람들의 상처가 분노로 표현되어 폭탄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피드>와 <폰 부스>에서 출발했던 <레트리뷰션 : 응징의 날>은 금융 위기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빅 쇼트>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라스트 홈> 등 금융 문제를 언급했던 영화의 영역에 도착한다. 액션 영화의 재미와 서브 텍스트의 풍부함이란 두 개의 엔진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던 질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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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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