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빅리그>충청도의 힘 코너

지난 3일 tvN 코미디 빅 리그의 한 꼭지로 방영된 충청도의 힘이 이혼 가정 아동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 tvN


개그는 금기의 영역을 넘나든다. 조롱할 수 없는 것을 조롱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청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개그의 본질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체면을 지키느라고 혹은 상대를 배려하느라고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개그우먼이나 개그맨들이 대신할 때 웃음을 짓는다.

누가 봐도 평균 이하인 <무한도전> 멤버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사회적 통념상 여자가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개그우먼 장도연과 박나래, 상대를 불문하고 '버럭'하는 개그맨 박명수, 장동민의 모습이 인기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개그는 이처럼 금기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다. 하지만 차마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 있다. 특히, 약자에 대한 조롱이나 비하는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약자는 조롱의 대상, 비하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여성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개그맨 장동민이 또 다시 '금기의 영역'을 침범했다. 지난 3일 방영된 tvN의 한 꼭지 '충청도의 힘'을 통해서다.

지난해 장동민은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옹꾸라)'에서 '여성 혐오'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는 성차별적 발언과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라는 혐오 발언을 해 문제가 됐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보호해줘야 할,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에게 본래 부여된 권리를 줘야 할 대상이다. 장동민의 당시 발언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

장동민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정중히' 사과하는 듯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지난해 그의 사과문을 보면 사과는 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혹은 무엇을 뉘우친 것인지가 빠져있는데 뉘우침 없는 사과는 같은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난 3일 그는 이를 증명했다.

지난해 장동민의 사과 전문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 때문에 실망하고 불쾌해하셨을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제가 과거에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다시 이야기가 돼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노력을 많이 하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셨는데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실망시킨 부분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하다던 장동민... 이혼가정 아동 조롱

 <코미디빅리그>충청도의 힘 코너

'충청도의 힘'은 이혼 가정 아동에 대한 조롱만이 아니라, 아동 성추행 장면을 담기도 했다. ⓒ tvN


지난 3일 장동민은 tvN <코미디 빅리그>의 한 꼭지인 '충청도의 힘'에서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담긴 대본을 읽었다. 그는 이혼 가정의 아동을 비하하고 조롱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약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은 금기를 넘나드는 개그의 영역에서도 오롯이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를 더욱 궁색한 처지로 내모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tvN <코미디 빅리그> 코너 '충청도의 힘'에는 6세, 7세 아동 역을 맡은 개그맨 장동민과 조현민, 그리고 장동민의 할머니 역을 맡은 황제성, 이혼 가정 아동으로 설정된 개그맨 양배차가 등장한다. 

[장면1]
양배차 "이것 봐라, 우리 아빠가 또봇 사줬다. 너네는 이런 거 없지?"
장동민 "야, 오늘 며칠이냐? 25일이면 자축인묘.. 잉,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조현민 "어허, 듣겠다. 쟤 때문에 부모 갈라선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얘 들어요."
장동민 "(양배차에게) 부러워서 그래. 너는 봐라. 얼마나 좋냐. 네 생일 때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아. 이거 재테크야, 재테크."

[장면2]
황제성 "근데 너는 엄마 집으로 가냐, 아빠 집으로 가냐.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른 여자랑 두 집 살림 차렸다고 소문이 아주 다 돌고 있어."
양배차 "할머니한테서는 이상한 냄새나거든요"
황제성 "지 애비 닮아서 여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너 동생 생겼단다. 서울에."

해당 장면을 보면 '충청도의 힘'과 장동민, 황제성, 조현민 등의 개그맨들이 이혼 가정 아동을 비하하고 조롱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아무런 죄 없는 이혼 가정의 아동,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은 아동을 또 한 번 조롱하고 비하했으며, 이 때문에 이를 시청한 이혼 가정 아동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됐다. 또한 일반 시민들이 이혼 가정 아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됐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동 성추행' 장면을 담기도 했다. 

[장면3]
장동민 "(벽 뒤에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할머니, 자~."
황제성 "어이구, 우리 동민이 장손 고추 따먹어보자. 호롤롤로~ 어이구 우리 장손, 할매 살겄다. 이 할매가 이제야 숨통이 트이네."

어떠한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거나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는 관점 아래서 이 같은 장면을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수가 이를 개그라고 받아들이더라도 일부는 일상에서 이를 모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를 시청한 당사자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았던 자녀들이나 아동 성추행을 당한 끔찍한 기억이 있는 시민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야 했을 것이다. 이들의 입장이 되어 '충청도의 힘'을 바라보면 이 프로그램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방송이 문제가 되자 <코미디 빅리그> 측은 장동민을 '실드'치며, "그는 제작진이 준 대본을 읽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코미디 빅리그> 제작진에게 있으며. 이에 대해 사과하고 '충청도의 힘'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코미디 빅리그> 측의 잘못은 정말 크다. 그러나 장동민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혐오 발언이 깃든 대본을 주며,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했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이를 수용한 것 자체가 그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장동민에게 잘못을 묻는 것이 문제가 될까.

죄 없는 약자 아닌 죄 있는 강자 비난했다면 어땠을까?  

 <코미디빅리그>충청도의 힘 코너

코미디 빅 리그 제작진과 장동민 소속사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 tvN


사실 나는 그간 개그맨 장동민의 팬이었다. 그의 유머러스함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가 우리 사회의 통념을 거부하고 약자를 짓누르는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아는 개그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는 개그맨(우먼) 사이의 삐뚤어진 위계질서를 거부할 줄 알았고, 사석에서도 개그맨은 웃겨야 한다는 통념에 반대했다. "내가 술 살게, 노래 한 번 해봐"라는 한 선배의 말에 "제가 술은 사드릴게요, 노래 한 번 하시죠"라고 말할 줄 아는 그의 당당함이 나는 좋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여성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됐을 때도 큰 실망감을 느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약자를 조롱하는 프로그램의 주연을 맡은 것은 정말이지 아쉽다. 그간 내가 생각했던 그의 이미지처럼 장동민이 약자가 아닌 우리 사회가 부여한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남용하는 강자를 조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금기의 영역'이 아닌 '개그의 영역'이라 누구나 동조할 그런 영역의 개그 말이다.

코미디 빅 리그 측 사과, 뉘우침은 없었다

'충청도의 힘'이 논란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vN 제작진은 해당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장동민 소속사 측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들의 사과를 들어보면, 지난해 여성 혐오 발언을 한 뒤 장동민이 발표했던 사과문이 떠오른다. 이들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들의 사과문에는 사과는 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뉘우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제작진의 불찰이다. 불편함을 느꼈던 시청자들께 사과한다. 죄송하다. 의도적으로 이혼 가정의 아이를 조롱, 비하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어른 같은 어린아이들의 상황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됐다. 장동민, 조현민 등 연기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작진이 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잘못이다. 의도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했던 표현이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추억을 살려보고자 했던 대사다. 이 장면에 불쾌감을 느끼셨던 분들께 죄송하다. 앞으로 아이디어나 대사 등에 신경 쓰겠다. 더는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 다시 한 번 시청자들께 사과드린다." (박성재 <코미디 빅리그> PD)

"본인이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성추행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거로 알고 있다. 작가와 상의한 대본대로 한 것이지 장동민 씨가 직접 애드리브를 한 건지 확인해봐야 한다." (장동민 소속사 측)

장동민은 지난해 이와 매우 흡사한 사과를 한 후 1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그의 사과문에는 사과는 있지만 뉘우침은 없었다. 뉘우침 없는 사과는 같은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 나는 <코미디 빅리그>와 장동민 소속사 측의 사과문을 보며 또 한 번 그러한 생각이 든다. 이들의 '망동'은 반복될 것이라는. 그들의 사과에는 뉘우침이 없는 대신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와 변명만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의 사과는 머지않은 날에 또 한 번의 논란을 불러올 것 같다. 장동민이 그랬던 것처럼.

충청도의 힘 장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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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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