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 드라마에서 PPL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됐다. 높아진 제작비와 난립하는 군소 제작사, 그리고 열악한 제작 환경은 주어진 제작비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게 이른바 협찬이란 이름의 PPL(Product Placement)은 드라마 제작비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자연스럽게 PPL을 쓰는 것이 작가의 능력 중 하나. 이제 시청자들은 드라마 주인공들이 뜬금없이 홍삼 엑기스를 빨거나, 가방을 주렁주렁 매다는 정도는 애교로 넘겨줄 만큼 PPL에 익숙하다.

PPL 잘 쓰는 김은숙 작가

 6일 방송된 <태양의 후예> 13회는 온갖 PPL의 향연이었다.

6일 방송된 <태양의 후예> 13회는 온갖 PPL의 향연이었다. ⓒ KBS


김은숙 작가는 PPL을 잘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쓰는 작품마다 같은 시간대 최고 시청률은 물론, 이른바 '대박' 작품을 늘 생산하는 김 작가에게 자사 작품을 홍보하고 싶은 기업이 줄을 잇는 것는 당연지사. 김은숙 작가는 절묘한 PPL을 드라마 이야기 안에 야무지게 버무려 넣는다.

김은숙 작가의 PPL은 이런 식이다. <시크릿 가든> 김주원(현빈 분)이 하고많은 회사 중 모 백화점 사장이고, 김주원과 길라임(하지원 분)은 제주도의 모 고급 펜션에서 영혼이 바뀐다. 흔치 않은 길라임이라는 이름에서 협찬사였던 알로에마임이 떠오르기도 한다.

<상속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극 중 배경인 제국고등학교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으로 '골프 웨어'를 빼입고 골프를 친다.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이별, 재회가 이루어지는 곳은 여주인공이 일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등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입고, 먹고, 움직이는 동선의 배경 모두가 PPL이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는 주인공이 군인이다. 심지어 군인인 남자 주인공 유시진(송중기 분)과 의사인 여자 주인공(강모연 분)이 활동하는 지역은 지진과 분쟁의 중심인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 하지만 분쟁지역이든, 작전 지역이든 PPL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역만리 서대영에게 온 소포에서, 군인들의 손에서, 홍삼 엑기스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PPL 한풀이? 해도해도 너무했다

상황의 제한 때문이었을까? 이전 김은숙 작가 드라마보다 <태양의 후예> PPL은 애교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고국으로 돌아온 13회부터 드라마는 한풀이라도 하듯 PPL을 쏟아냈다.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귀국을 앞둔 군인들은 피부관리를 한다며 다 같이 마스크팩을 한다. 귀국 후 오랜만에 얻은 꿀 같은 3일간의 휴가. 유시진과 서대영(진구 분)은 각자의 연인을 만나는 대신 술집에서 뜬금없이 술대결을 펼치고, 갑자기 나타난 송상현(이승준 분)은 아몬드를 집어 먹는다. 술에 취해 집으로 간 유시진-강모연 커플을 맞이한 건 식탁 위에 놓인 중탕기다. 밤새 술을 마신 이들이 해장 대신 먹은 것은 샌드위치요, 송송 커플과 구원 커플이 한 데 모여 실없는 대화만 나누다 헤어진 커피숍은 상호가 유난히 두드러졌다.

 자동 주행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키스신. 오랫동안 기다렸던 구원커플의 키스신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자동 주행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키스신. 오랫동안 기다렸던 구원커플의 키스신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 KBS


압권은 서대영-윤명주의 키스신이었다. 서대영은 윤명주의 차를 운전해 집으로 데려다준다. 신중한 성격의 서대영은 윤명주에게 걸려온 전화의 발신인을 밝히기 위해 자동 주행 기능을 설정하고 윤명주에게 돌진한다. 윤명주의 차는 최근 자동 주행 기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모 브랜드의 자동차. 윤명주는 "고작 이럴 때 쓰려고 이 기능 있는 차를 산 줄 아느냐"며 다시 한 번 자동 주행 기능을 홍보한다. 서대영은 다시 한 번 차를 자동 운전 모드로 설정해두고 달리는 차 안에서 윤명주에게 키스한다. 그야말로 드라마 자동차 운전신의 신천지가 열린 셈이다.

시청자는 당혹스럽기만 하다. 과연 이 장면을 신개념 키스신으로 봐야 할지, 놀라운 과학 기술이 발달을 감탄해야 할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이 드라마의 장면을 그저 PPL의 신세계로 넘겨야 하는 걸까? 만약 도로에서 <태양의 후예>처럼 자동 주행 기능을 설정하고 키스하는 커플이 있다면 이들은 교통 법규상 문제가 없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까이꺼' 머리가 복잡할 게 뭐 있느냐고, 그저 드라마로 '대~충' 보면 되는 거라고?

하긴 그렇다. 주인공이 총을 맞고 쓰러지기 5분 전, 국빈 경호에 나선 특전대 상사가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초코바 두 개를 연달아 먹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자동 주행쯤이야 뭐 그리 대수겠는가 싶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목우촌 주막 간판이 떡하니 걸려있는(<장옥정, 사랑에 살다>) PPL 세상에서 안될 게 뭐 있겠는가.

그런데 13회는 드라마가 아니라 1시간짜리 광고 본 기분이 드는 건 어째야 하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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