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지난 2월, 스케이트와 동고동락했던 24세의 한 청년은 무언가를 추억하듯 SNS에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국가대표로서 자신의 경기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는 지난 2월 SNS에 사진을 올리며 '추억'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지난 2월 SNS에 사진을 올리며 '추억'이라는 글을 남겼다.ⓒ 노진규의 인스타그램


그리고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을 마지막으로 또 한 시즌이 끝났다. 3일 경기장에선 모든 시합이 끝난 후 현역 선수들의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그와 대표팀 생활을 함께 했던 조해리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동료들과 함께이고 싶었던 그 역시 조용히 자신의 은퇴식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8시, 생전에 너무나도 좋아했던 스케이트 그리고 가족, 친구, 팬들을 남긴 채 그는 빙판에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빙판 위의 어린왕자'라 불리던 노진규는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올림픽 출전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영원히 잠들었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올림픽 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까운 인재', '올림픽 유망주'로만 표현되기에는 스케이트를 향한 그의 노력이 너무나 절절했다.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던 노진규의 은퇴식을 기리며 그와 함께 해온 시간들을 추억해본다.

너무나 차가웠던 빙판 위의 삶

노진규는 2010 밴쿠버 올림픽 이후 다음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직전 시즌 세계 주니어 선수권 우승자였던 그는 일찌감치 차기 국가대표로 주목받아 왔다. 이정수와 곽윤기가 일명 '짬짜미' 사건으로 대표팀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노진규에게 기회는 좀 더 일찍 찾아왔다. 이후 그는 4년 연속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국가대표가 됐음을 증명하였다.

시니어 무대로 진출한 후 노진규의 스케이트 인생에는 날개가 달렸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경기 운영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1500m와 3000m 2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보유할 만큼 스피드도 강했다. 특히 자신의 주 종목이었던 1500m에서는 더욱 빛났다. 노진규는 월드컵 시리즈 1500m 연속 1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지난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 당시 노진규의 모습. 그는 이 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 소치 올림픽 계주멤버로 발탁되었다.

지난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 당시 노진규의 모습. 그는 이 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 소치 올림픽 계주멤버로 발탁되었다.ⓒ 정호형


대표팀 승선 첫 해, 세계선수권 대회의 우승을 거머쥔 노진규는 단숨에 남자대표팀의 대들보로 거듭났다. 2014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가장 강력한 메달리스트로 손꼽혔다.

그러나 올림픽 멤버를 뽑는 대표 선발전에서 잠시 주춤하며 그는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계주 선수 멤버로 발탁되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쉬움을 삼킨 채 훈련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2013년 9월 월드컵 1차 대회 직후 몸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위해 수술을 미뤄가며 월드컵 대회에 나섰고 동료들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선사하였다. 

극심한 통증을 진통제로 달래며 훈련하길 여러 차례, 소치 올림픽을 불과 3주 앞둔 2014년 1월 그는 팔꿈치 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올림픽 출전의 꿈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치료 도중 종양이 악성으로 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뼈 암의 일종인 골육종 판정을 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걱정을 안고 그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팬들은 그가 곧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강한 체력이 노진규의 트레이드 마크였기에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그것이 빙판 위 노진규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2의 노진규를 기다리며

롤모델 안현수와의 올림픽 대결을 꿈꾸었던 노진규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 3일 우리 곁을 떠났다. 안현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를 추모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 선수들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했다.

지난 몇 년간 빙상을 취재해 왔던 기자에게도 노진규는 '최고의 선수' 그 이상으로 각별했다.  그는 최고라는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고 매일 가장 오래까지 훈련장을 지키던 선수였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선수들의 입을 통해서 늘 '노진규'라는 이름 석 자가 거론되곤 하였다. 노진규와 국가대표를 함께 지낸 김윤재는 "연습벌레 그 이상의 중독자 수준"이라는 말로 노진규의 스케이트 사랑을 대변했다. 또한 친누나인 노선영 역시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노력형 인재'로 동생 노진규를 칭찬하곤 했다.

그의 지독했던 노력은 그가 떠나자 주변 동료들에게 더 큰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동갑내기 친구인 서이라와 노진규를 대신해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는 이호석은 SNS를 통해 고인이 생전에 보여주었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규에게 노력이란 걸 직접 보고 배우고, 진규보다 노력하는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 대가가 이렇다니…" -서이라-

"너보다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은 못 봤어.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너였는데 너무 속상하다." -이호석-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도 그의 스케이트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시즌 마지막 대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지켜 보았는지 그는 거짓말처럼 대회 종료 직후 눈을 감았다. 이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던 한체대 후배 심석희는 그런 노진규를 보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도 하였다.

2011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진규는 운동을 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훈련 외에 시간을 또 따로 내서 운동을 할 만큼 스케이트가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이력을 보고 '최고의 선수'로만 기억하기에 아쉬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실력 면에서도 물론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보니 그가 가진 스케이트를 향한 노력과 정신력, 그리고 애정은 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뭉클했다. 뛰고 싶어도 부상으로 시합을 못 뛰는 선수들을 보며 자신을 채찍질 한다던 노진규. 그와 같은 선수를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와의 헤어짐이 너무나 안타까운 날이다.

 '노진규는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전 마지막 대회였던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그는 2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2012년 제2차 월드컵대회 계주 부문 금메달을 차지한 직후의 모습.

'노진규는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전 마지막 대회였던 제26회 트렌티노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그는 2관왕에 올랐다. 사진은 2012년 제2차 월드컵대회 계주 부문 금메달을 차지한 직후의 모습.ⓒ ISU


노진규를 보내며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특히 가족으로써 그의 긴 투병생활을 지켜봤을 누나 노선영에게 동생 진규와의 이별은 더 없이 아프다. 생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진규는 누나 노선영에 대해 "가장 친구 같고 편한 존재"라고 말하며 무심한 표정 속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누나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했다는 노진규에게 스케이트 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이었을 것이다.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티격태격 하던 두 남매의 모습을 안타깝게도 이제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태극마크를 꼭 쥐고 간 노진규는 하늘에서도 계속해서 누나와 함께 빙판 위를 달릴 것이다.

국가를 대표했던 선수라면 누구나 언젠가 은퇴식을 하겠지만 노진규에게 이렇게나 일찍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의 은퇴식이 이렇게나 슬플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 거라며 그의 복귀를 기다렸기에 하늘이 너무나 무심하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시즌의 모든 경기를 기다려준 후 훌쩍 떠나버린 그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우리도 그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해주어서 고맙습니다.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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