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꿈꿨을 직업은 무엇일까? 정답은 스포츠 에이전트(선수 대리인)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알려진 이 선망의 직업은 화려한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고 선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역할을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는 직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국내 시장은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스포츠 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은 체감상으로는 고액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최상위 선수들만 연봉이 높다. 이 때문에 에이전트 시장은 협소하다. 또한, 제도적으로도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와 같은 대형 에이전트가 생겨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월 17일 무역 투자 진흥회의 중 '스포츠산업 활성화 대책'으로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를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즉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을 키워 스포츠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담당 관계자는 "올해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운영 지침을 마련하여 우수 에이전트 육성 프로그램을 마련해 신성장 사업 동력으로 삼겠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프로야구의 경우 현재 아직 협의된 부분은 없고 하반기를 목표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함께 에이전트 제도 시행 시기 및 규약을 마련하겠다"며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정부가 이런 의지는 '창조경제' 활성화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전한 투자를 통해 스포츠 산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시장 발전 및 프로구단의 자생력을 키워 합리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에이전트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각종 운동 종목 및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 투자가 가능하도록 하여 매니지먼트도 펀드 투자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스포츠 마케팅과 선수 관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산업을 육성해 스포츠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국내 유망 기업들이 지분투자나 프로그램 개발 관련 자금 지원도 추진하여 신사업 투자 지원책을 내놓으려고 계획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대구 육상진흥센터에서 열린 '스포츠 문화, 산업 비전 보고대회'에서 문체부는 2014년 41조 원 규모인 스포츠산업 시장 규모를 2018년까지 53조 원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스포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은퇴 선수의 취업을 적극 지원하여 2014년 기준 27만개의 스포츠산업 일자리를 2018년까지 33만 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에이전트 제도 시행 시기가 미정인 프로야구

정부가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갖고 에이전트 제도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나섰지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현재 국내 스포츠 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KBO 리그는 규약상으로는 2001년 10월 31일 개정을 통해 선수 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되어있다. 야구 규약 42조[대리인]는 이렇다.

1)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선수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하여야 한다.

2)대리인은 동시에 2명 이상의 선수를 대리할 수 없다.

3)대리인제도의 시행일은 부칙에 따로 정한다.

그러나 시행시기는 아직 미지수이다. 대리인이 단 한 명의 선수와 계약이 가능하고 변호사만 가능한 불합리한 규제 탓에 선수협회와 KBO, 그리고 각 구단은 아직까지 시행과 관련한 합의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회 김선웅 사무국장은 "현재 에이전트 제도는 시행을 무기한 보류 중이다. 팔다리를 자른 상태라 시행을 해도 문제가 생긴다"라며 "현재 에이전트 제도 관련 야구규약이 일본 것을 그대로 베껴왔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14년 12월 에이전트 제도 시행을 촉구하기 위해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 측과 구단이 에이전트 제도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KBO 정금조 운영부장은 "정책 결정에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현재 에이전트 논의를 준비하고 있다"라면서 "아직은 자세한 이야기를 할 단계는 아니다.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정 요구를 하여 대리인 제도를 도입하기는 했다. 이제 시행 시기에 대해 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실행 시기와 관련해서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구단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A 구단 관계자는"선수와의 연봉 계약이 인간적인 관계로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 선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성실한 부분까지 반영된다. 만일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된다면 철저히 고과를 산정해서 성적이 오른 선수들만 연봉이 상승하고 잘하는 선수만 잘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단이 쓰는 돈은 한계가 있다. 현재 흑자를 기록하며 재정적으로 자생력을 갖춘 구단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모 기업에서 지원을 받는 상태인데 한정된 자원에서 에이전트를 둔 잘하는 선수는 보다 더 많은 금액을 가져갈 것이고 그에 반해 신인급이나 연봉이 낮아서 에이전트를 둘 여력이 안되는 선수들은 대우를 못 받을 것이다.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B 구단 관계자는 "사실 작년 FA 협상 때 선수뿐 아니라 에이전트가 동행해서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했던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원칙상으로는 동행을 할 수 없는데 들어와 협상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지 않다. 이럴 거면 차라리 오픈해서 양성화 시키는 것이 낫다. 차라리 파이를 더 키워 고민해 보자"라고 밝혔다.

에이전트는 정말로 필요 없는 존재인가?

구단들과 KBO가 부담스러워하는 큰 이유는 바로 비용 상승에 대한 걱정이다. 그렇지만 에이전트의 순기능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김선웅 선수협 사무국장은 "에이전트 제도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선수와 구단이 직접 협상을 하다 보면 냉정한 제안으로 인해 오히려 선수들의 경우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프런트 또한 선수와 싸우고 싶어 하지 않지만 연봉은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수들은 운동만 열심히 하고 대리인이 구단과 협상하면 감정 싸움을 피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비용'이다. KBO와 구단이 염려하는 부분은 '비용'의 상승이다. 과연 그럴까? 이를 알기 위해선 우선 에이전트 수수료(agent fee)를 알아야만 한다. 에이전트가 선수를 대신에 협상을 하면 그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데 축구의 경우 3%의 수수료를 선수에게 받는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보통 5%의 수수료를 받는다. 미국 시장은 연봉 규모 자체가 600억 달러 정도 되기 때문에 많은 에이전트들이 활동하며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수협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트들의 생각은 어떨까? 선수협 김 국장은 "에이전트를 도입한다고 해서 선수들의 연봉이 확 올라갈 수가 없다. 이미 어느 정도 구단이 정해놓은 연봉 고과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에이전트가 올려 달라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에이전트 A 씨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솔직한 이야기로 연봉 3000만 원, 4000만 원 선수들은 에이전트를 고용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억대 연봉자들만 가능하다고 본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억대 연봉 선수들의 수치를 살펴보면 대략 한 구단에서 10명 정도 수준이다. 구단의 한해 운영비 중 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5%다. 총 연봉 중 억대 연봉자들이 가져가는 비중이 50%정도 된다. 이 억대 연봉 선수들의 에이전트 수수료가 5%이고 이게 구단에 전가된다고 할 때 억대 연봉 선수가 좀 더 늘어난다면 대략 총 운영비가 1% 정도 상승할 만하다. 그래도 만일 에이전트 수수료 상한선이 정해져버리면 5% 남짓한 수수료를 가지고 에이전트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 구조에 비춰 턱없이 낮은 금액이라 한 해 사무실 운영비도 빠듯할 것이다"

계약조건을 다양하게 하자

올 시즌을 앞두고 열린 윈터 미팅에서 KBO는 방침을 정했다. 10개 구단 단장들은 승리 인센티브를 없애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선수협 김 사무국장은 "연봉이 높은 선수들에게 승리 수당은 푼돈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최저 연봉을 받는 선수들, 혹은 묵묵히 뒤에서 공을 받는 불펜 포수들의 경우 승리 수당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투명성을 위해 폐지를 했다면 보다 선수들과의 계약 조건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선수들 연봉 비용이 상승하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서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FA 기간을 줄이는 방법도 좋은 해결책이다. 또한, 보상 선수 문제도 슬기롭게 풀어나가 보다 팀 이동이 활발해야 한다. 그리고 다년 계약을 통해 좋은 선수와 계약을 하고 옵션 등을 통해 팀 사정에 맞게 연봉상한선을 맞추면 된다. 선수와 구단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선수 계약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목소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자가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대해 취재할 때 선수들의 경우 에이전트가 있으면 정말 편하게 운동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감정 소모 없이 선수 본인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말 그대로 계약서 대로 운동하고 성적 내면 된다는 것이다. 선수 A는 "내 입으로 '돈 얼마 더 주세요'라고 스스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민망한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걱정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에이전트의 자격이다. 선수 B는 "아마추어 때 메이저리그에 가자고 접근했던 에이전트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평판이 좋지 않은 에이전트여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에이전트의 전문성과 관련해 "메이저리그와 같이 선수들의 추천서가 있고, 대형 스포츠 마케팅 회사들 예를 들면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이나 야구 관련 몇 년 이상 종사자들 정도 자격 제한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산학 협력을 진행 중인 단국대학교와 리코 에이전시

단국대학교 산학협력                             현장과 학교의 소통의 모습이다.

▲ 단국대학교 산학협력 현장과 학교의 소통의 모습이다. ⓒ 단국대학교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를 꿈꾸는 젊은 스포츠 마케터들을 키워내고 있는 단국대학교 전용배 교수는 리코 스포츠 에이전시와의 산학 협력을 통해 스포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 측은 지난 2015년 11월 산학 협력 체결식을 하고 스포츠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섰다. 전 교수는"국내 스포츠 산업은 지금 팽창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현실은 어렵다. 한국에서 에이전트는 쉽지 않은 길"이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에이전트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전 교수는 "지금 현재 야구규약을 보면 시장이 상당히 폐쇄적이다. 어느 누구도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라며 "또한 야구 에이전트로는 삶이 어렵다. 선수 매니지먼트 및 광고를 통해 에이전시로 나가는 것이 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에이전트 수수료에 대해서도 전 교수는"개인과 개인의 거래에 상한선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김현수의 볼티모어 입단을 성사 시킨 리코 에이전시 이예랑 대표(이하 이 대표)는 MLB 윈터 미팅에 3년째 참여하며 홍일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 프리미어 12대회에서도 김현수가 사용하는 배트가 승인이 나지 않자 이 대표는 혹여 김현수의 경기력이 저하 될까 부리나케 움직이면서 배트를 일본과 대만으로 공수하며 진땀을 흘렸다. 그 덕분에 김현수는 프리미어 12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선수를 상업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 대표는"선수들의 많은 부분에 대해 서포트를 하려고 한다. 일거수일투족 전부 다 도와주려고 한다. 좋은 에이전트란 무엇일까 늘 생각해보면 결론은 가족이다. 가족같이 선수들을 도와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산업은 점점 전문화되는 추세이다. 이제는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시기가 왔다. 선수들의 권익 증진과 새로운 산업의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투명한 계약 과정을 통해 구단과 선수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구단과 KBO, 그리고 선수협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의견 조율이 필요한 시기이다.

좋은 취지의 제도가 잘못 도입되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것은 선수다. 그렇기에 많은 의견을 공유하고 협조하고 상생하는 구조로 가야 할 것이다. 현재 KBO 리그의 스포츠 산업 시계는 2001년 10월 31일에 멈춰있다. 시계는 앞으로 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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