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입니다. [편집자말]
최근 급격하게 관객들의 성향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까지 관객 수가 고른 분포였는데 지금은 1위와 2위의 격차도 하늘과 땅 차이다.

관객들은 쉽고 재미있는, 남들이 다 보는 단 한편의 영화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극장 역시 관객들의 요구에 맞추어 혹은 1등의 되기 위해 자사가 투자 배급하는 영화를 다수 상영관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획일적인 배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킬링타임용 영화의 모순

이젠 사랑보다 생존이, 로맨스보다 액션, 스릴러가 더 중요해진 것일까? 흥행하는 장르물에서도 예전과는 차이를 보인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나 액션, 스릴러 영화에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반면, 멜로 영화나 로맨스물 등에는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영화 선택 기준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전에는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보았을까? 내 기준으로 먼저 생각해 본다. 영화 일을 하기 전 난 두고두고 생각나는 작품을 극장에서 보려고 했다. 이름 하여 추억 만들기. 함께 영화를 본 사람과 나눈 대화가 중요했고, 함께 있던 그 공간이 중요했다(아담스페이스라는 회사 이름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요즘 관객들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 요새 개봉하는 상업영화들을 '킬링타임용', 즉 시간 죽이기라는 의미로 표현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좀 거북스럽다. 어느 누가 시간 죽이는 용도의 영화를 만들고 싶겠는가.

어찌 보면 이런 기이현상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전처럼 영화의 제작 의도나 만들어지는 과정들의 설명은 모두 생략된 채 흥행만을 위해 몸 바쳤으니 말이다. 마치 1등을 위해 달리는 수험생들처럼. 이 때문에 공생과 공존이라는 개념도 잊혀졌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 성적표처럼 박스오피스라는 공개된 성적표를 받는다. 이런 일련의 시스템이 킬링타임 영화를 낳게 한 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관객들을 낳은 건 아닌지.

다시 출발하다

 넌버벌 퍼포먼스 <모던 태권도 킥스> 공연 실황. 올해 아담스페이스가 홍보대행을 맡았던 작품.

넌버벌 퍼포먼스 <모던 태권도 킥스> 공연 실황. 올해 아담스페이스가 홍보대행을 맡았던 작품. ⓒ 아담스페이스


이런 영화 시장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영화인 모두일 것이다. 1등 작품들은 더욱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달려가고,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2등 이하의 작품들은 1등에 가려져 그 의미조차 조명 받지 못한다. 매주 새롭게 개봉하는 10여편의 작품 중 상당 수가 관객의 무관심 속에 잊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흥행만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팔아야 할까? 지금 현재로는 그렇다. 관객들이 원하고 극장이 원하기 때문이다. 홍보마케팅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흥행을 위해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그 끝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변하기로 했다. 조금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새로움을 향한 도전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담스페이스'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아주 다양한 일을 하는 회사이길 원했기에 1차 홍보 업무인 영화 분야 외의 또 다른 범위의 서비스를 찾아왔다. 광범위하게 표현하자면 컨설팅 내지는 멘토링이 될 것이고, 다양한 문화콘텐츠 영역의 15년차 이상의 프로들이 모여 지금의 힘든 상황을 함께 고민하고 헤쳐나가는 팀을 만들 생각이다. 선배 마케터들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젊은 후배 마케터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려 한다.

바야흐로 한국영화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요즘이다. 과거 한국영화가 외화에 밀리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대기업이 투자에 관심을 보이다가 등을 돌린 일도 있었다. 그래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 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를 보면 대부분 40~50대 이상의 노련미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만큼 먼저 시작하고 경험한 선배들의 역할이 어디서든 중요한 셈이다.

나는 다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잠시 준비 기간을 가지려 한다. 누군가가 지금의 일을 중단하겠다고 한 내게 "한 탕 재미있게 놀다 가네"라고 말해 주었다. 참 듣기 좋은 말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새로움으로 또 한 번 신나는 놀이터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 김은의 '컬러풀 흑백필름' 연재는 이번 글을 끝으로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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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은 대표는 한 광고대행사 AE(Account Executive)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상품 광고가 재미없다며 박차고 나왔다. 이후 1997년 단성사를 운영하던 영화사 (주)신도필름 기획실에 입사해 영화홍보마케팅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 문화콘텐츠전문 홍보대행사 아담스페이스를 설립했다. 홍보하면서 야근 안 할 궁리, 여직원이 다수인 업계에서 연애하고 결혼할 궁리, 상업영화 말고 재밌는 걸 할 궁리 등을 해왔다. 지금까지 다른 회사가 안 해 본 것들을 직접 또는 소수 정예 직원들과 함께 실험 중이다.
김은 오마이스토리 섬 사라진 사람들 아담스페이스 영화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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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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