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서울 안에서 소위 가난한 동네와 부유한 동네가 어디인지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재개발 문제 등이 얽히며 누군가는 부자가 됐고,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터전을 떠나야 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급격한 성장이라는 영광의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도 있는 법. 영화 <수색역>이 바로 그 어둠에 주목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수색역>은 서울의 대표적 빈촌이었던 수색동을 무대로 한 영화다. 그리고 그 무대의 주인공은 네 명의 청소년이다.

불완전한 청춘의 몰락

윤석(맹세창 분), 상우(공명 분), 원선(이태환 분), 호영(이진성 분)은 절친한 친구들이다. 어려운 생계로 제도권 교육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네 사람은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대로 삶을 살아간다. 채소 납품 혹은 공장 근로자, 고철 수집 등이 이들의 업이다.

영화는 꿈이 아닌 현실에 뿌리내려버린 이들의 모습을 탐색한다. 수색동 재개발에 관련된 일이 네 친구 중 하나에게 들어오며 비극이 시작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우정은 희미해지고, 결국 서로가 서로를 폭행하는 일로 이어진다. 우정이라는 가치가 돈과 욕망 앞에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영화가 섬뜩하다. 단순히 잔인한 폭력 묘사 때문이 아니다. 한창 꿈을 키웠어야 할 나이에 너무도 일찍 사회 현실과 자신의 위치를 알아버린 네 청년이 몰락해버리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청춘의 몰락은 고금을 막론하고 비극적이다. 피워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의 숨을 죽이는 결과지 않나. 극영화 형식의 <수색역>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아픔을 품은 다큐멘터리로 다가온다.

이 감독, 이 배우들을 주목하라


연출을 맡은 최승연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신인이다.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를 감독은 진정성 있게 그리고 끈기 있게 담아냈다. 흥행을 위해 타협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을 그는 에두르지 않고 찍었다. 투박하게 표현된 몇몇 부분이 걸리기도 하지만 감독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면모도 눈에 띈다.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실력을 입증해온 맹세창은 안정감 있게 영화 속 캐릭터를 품어냈다. 망나니 같은 성격으로 주요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상우 역은 배우 아이돌 그룹 서프라이즈 멤버인 공명이 맡았다. 지난 15일 언론 시사회 직후 공명은 "정작 평소에 욕을 안 한다"고 고백했지만, 상우의 반항기질과 분노를 꽤 깊게 표현했다.

원선 역의 이태환은 한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등 캐릭터를 세밀하게 준비했다. 원선은 상우와 가장 성격적으로 부딪히는 인물이며, 중반 이후 특정 사건으로 인해 불구가 된다. 공명과 함께 서프라이즈 멤버인 그가 기저귀를 찬 이유는 바로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서프라이즈 숙소에서 이태환과 공명은 서로의 연기를 주고받으며 연습했다는 후문이다.

이진성은 호영 역을 너무나 하고 싶어 예비군 군복을 입은 채 오디션을 봤다는 후문이다. 언론 시사회 직후 그는 "시간이 안 맞을 거 같아 사격 훈련 때 만발을 노렸는데 성공해서 조기 퇴소할 수 있었다"는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다수의 독립영화로 경험을 쌓아온 그는 관찰자 역할의 호영을 노련하게 만들어냈다. 다른 세 캐릭터들이 내뱉은 수많은 욕과는 차별화된 호영만의 신선한(?) 욕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수색역>은 어둡다. 그런데 어둡고 우울하다고 피해버리기엔 이 작품이 담아낸 사건들이 나무도 사실적이다. 사회가 품지 못한 네 청소년들의 분노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느껴진다. '타의에 의해 괴물이 돼버린 이들의 마음을 누가 보듬어야 하는가.' - 영화가 넌지시 묻는다. 3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