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지난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지금 국회에선 테러 방지법의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 바로 지난주에는 테러범의 전화기를 해킹해달라는 미 정부의 요구에 불응한 애플에 대해 찬반 토론이 활발했었고,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통화감찰에 대해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그 후로 여전히 세계를 떠돌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어리둥절한 지금, 현실의 예언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 이미 고인이 된 토니 스콧 감독의 1998년도 영화이다.

정부가 우리집 안방까지 침입할 권리는 없습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장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게 되는 사회,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대한민국의 미래일지 모른다. ⓒ 부에나비스타픽쳐스


노동법 전문 변호사인 로버트 클레이튼(윌 스미스)은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창으로부터 얻게 된 정보 때문에 국가안보국의 감시 대상이 된다. 사용하던 신용카드는 정지되고, 집의 전화는 이미 도청이 되고 있으며, 휴대전화는 그의 일상을 국가로 전송한다. 국가는 어느 순간 그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갖게 되고,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니게 된' 정보의 무게에 비례하여 직접적인 위협이 노골적으로 가해진다. 영화일 뿐이라고? 잠시 다음을 상상해보자.

늦잠을 잤다. 부랴부랴 전화기의 알람을 끄고 급하게 세수를 한 후, 출근한다. 회사의 출입문을 통과하는 순간 휴대전화에 깔려진 보안 프로그램이 내 위치를 확인한다. 회사 안에 들어온 후로 휴대전화의 카메라는 동작을 멈추고, 회사를 벗어나는 순간의 시간과 위치 정보를 보안 관리자에게 전달한다. 퇴근하여 사무실을 벗어나니 다시 카메라가 작동한다.

사무실의 컴퓨터를 켠다. 윈도우 하단 작업 표시줄의 오른쪽에 몇 개의 아이콘이 뜨며 '모든 행위가 모니터링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인터넷을 통해 접속하는 사이트가 저장되고, 외부로 메일이 들고 나는 모든 행위가 관리 대상이다. 외부 메일에 파일이라도 첨부하여 보내려고 하면, 사유와 함께 상사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사무실의 전화기도 이미 인터넷 전화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문서 탐색기를 연다. 작성된 모든 문서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다. 보안 프로그램이 깔리지 않은 컴퓨터에서는 읽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보유한 권한에 따라 자물쇠의 색깔이 달라지고, 자물쇠의 색은 시스템 관리자의 조정에 따라 색이 바뀌기도 한다. 컴퓨터에 USB나 외장 하드를 연결하는 순간 화면에 경고 메시지가 뜬다.

"외부 저장매체에 파일을 옮길 수 없습니다."

컴퓨터도 네트워크도 전화기도, 더는 나의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관리자로부터 "컴퓨터에 비승인 USB를 사용하셨던데, 무슨 자료입니까?", "일과 중에 커피숍에 가셨던데, 누구를 만나셨나요?", "출장지를 벗어나셨던데, 소명이 필요합니다"하는 연락을 받아도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휴일이어서 회사를 벗어났어도, 휴대전화의 위치정보 시스템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다. 엄마도 몰래 1박 2일 여행을 왔는데, 회사는 알고 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장면 권력이 나의 일상을 감시하는 사회, 더 이상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 부에나비스타픽쳐스


기업체에서 정보보호의 중요성이 사생활의 보호 요구에 앞선 것은 이미 옛날이다. 내가 15년 차고, 첫 번째 직장에서부터 '보안서약'에 응해왔으니 이는 그저 상상의 묘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업무 연관성이 떨어지는 개인 정보의 무리 하다 싶은 요구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생활 보호법'을 주장하며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는 우길 수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도 "당당하다면 정보를 못 밝힐 것은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압력에 심장이 쪼그라들곤 했는데, 이젠 국가가 먼저 "당당하게 가져가라!"하고 허락할 모양이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스노든은 이미 프리즘 프로그램을 폭로했고, 미국은 해당 정보 수집이 이뤄지고 있음을 고백했다. 미 법원이 애플에 아이폰 해킹에 협조할 것임을 명령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팀 쿡은 영웅이 되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허용된 사생활은 어디까지인지 법무 상담이라도 받아야 할 판인데, 이제는 투명인간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 무섭다, 알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기에서 다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윌 스미스를 떠올려 보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고소득 변호사였던 그가 국가의 적이 된 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의 집 안방까지 침입할 권리가 있는가?

이 글을 올리는 중에도 다른 야당 의원이 토론자로 발언대에 올라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다. 오랜만에 똘똘 뭉친 야당이 보여주는 '민주주의'가 감동적이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포스터 1998년 개봉한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그리는 미래. 과연 2016년의 대한민국의 미래일까. ⓒ 부에나비스타픽쳐스



영화일기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테러방지법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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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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