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찬영과 혁진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찬영(박동욱)이 모는 오토바이에 혁진(전석호)이 매달려 타는 모습. 잃어버린 사랑을 아쉬워하며 인도로 온 찬영, 아직 사랑을 놓치지 않았다고 믿는 혁진. 두 사람의 에피소드1은 상당히 밝은 느낌이다.

▲ 찬영과 혁진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찬영(박동욱)이 모는 오토바이에 혁진(전석호)이 매달려 타는 모습. 잃어버린 사랑을 아쉬워하며 인도로 온 찬영, 아직 사랑을 놓치지 않았다고 믿는 혁진. 두 사람의 에피소드1은 상당히 밝은 느낌이다. ⓒ 곽우신


여행을 꿈꾸는 모든 이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 인도. 여기 인도로 떠난 네 명의 남자가 있다. 찬영은 연인과 함께 인도를 돌아다니며 둘이 다시 오기로 약속했지만, 이별하고 난 뒤 홀로 인도를 다시 찾았다. 혁진은 권태기에 접어들어 갑자기 잠수를 탄 여자친구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그녀가 인도로 향했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그녀를 찾아 인도로 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학원 강사 다흰은 음악의 꿈을 접은 채 기타 하나 메고 홀린 듯 인도로 왔고, 아버지에 등 떠밀려 인도에 온 SB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툴툴거리기 일쑤이다. 연극 <인디아 블로그> 속 방황하는 청춘들은 각자 다른 사연을 품었지만, 모두 무언가를 '찾고자' 인도로 여행 왔다. 이들은 여행의 길목에서 그들이 원했던 것을 마주할 수 있을까.

연기하는 배우의 진정성을 녹여낸 연극

노래하는 다흰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에피소드2의 배우 김다흰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그 뒤로 전승훈 배우가 보인다. 배우 김다흰의 캐릭터 이름은 다흰이다. 실제 인물 김다흰과 연극 내 인물 다흰의 교집합이 꽤 크다. 그가 "진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 노래하는 다흰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에피소드2의 배우 김다흰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그 뒤로 전승훈 배우가 보인다. 배우 김다흰의 캐릭터 이름은 다흰이다. 실제 인물 김다흰과 연극 내 인물 다흰의 교집합이 꽤 크다. 그가 "진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 곽우신


젬베 치는 SB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SB역의 임승범 배우가 웃고 있다. SB는 임승범의 '승범'에서 따온 말이다.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매우 밝아 보이는 캐릭터지만, 그가 여기에 온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마냥 천진난만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 젬베 치는 SB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 현장에서 SB역의 임승범 배우가 웃고 있다. SB는 임승범의 '승범'에서 따온 말이다.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매우 밝아 보이는 캐릭터지만, 그가 여기에 온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마냥 천진난만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 곽우신


지난 1월 8일, 연우무대의 연극 <인디아 블로그>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 2011년 초연 때의 에피소드1과 2014년 공연의 에피소드2가 함께 돌아왔다.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른 시점, 다른 인물들이 겪는 인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사막에서 별을 본다. 잠시 헤어졌다가 배낭여행객의 성지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난다. 그들은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이별과 만남이 반복된다. 인물의 성격도, 에피소드별 색깔도 사뭇 다르지만 모두 인도라는 공간적 배경 안에 맛깔나게 녹아든다.

고추장과 참치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참치 통조림과 고추장에 행복해 하는 찬영(박동욱)과 혁진(전석호). <인디아 블로그>는 인도 여행 중 실제로 여행객이 접할 만한 에피소드를 극 내에 녹여서 상당히 현실감 있게 몰입할 수 있다.

▲ 고추장과 참치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참치 통조림과 고추장에 행복해 하는 찬영(박동욱)과 혁진(전석호). <인디아 블로그>는 인도 여행 중 실제로 여행객이 접할 만한 에피소드를 극 내에 녹여서 상당히 현실감 있게 몰입할 수 있다. ⓒ 곽우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에게 인도 여행 정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하고, 인도에서 겪었던 사건을 풀어서 설명하는 두 배우. 이 배우들의 완급조절이 탁월한 극이다. 여행기를 읽어주는 듯 흘러가는 연극은 짧은 시간을 억지로 채워 넣기보다 적절한 여유를 유지한다. 마치 연착과 기다림이 일상인 '인디아 타임'처럼.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다소 지루하겠지만, 뛰는 대신 걷는 속도로 <인디아 블로그>의 풍경을 살피다 보면 쉽게 동화될 수 있다.

<인디아 블로그>는 배우와 연출이 함께 만든 공동창작품이다. 이미 만들어진 무대와 인물에 배우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설계하는 과정부터 배우의 이야기가 투영된다. 배우들은 모두 실제로 인도를 갔다 온 바 있다. 어떤 팀은 한 번 더 갔다 오기도 했다. 이들이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와 자전적 회고가 극에 녹아들어 진정성을 더한다.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박동욱의 찬영 찬영은 예전에 희빈과 함께 거닐었던 인도를 추억하며 다시 이곳에 온 인물이다. 실제로 박동욱 배우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녀와의 사연을 담았다고 한다. 희빈을 잃고난 후, 그녀를 그리워하며 다시 온 인도. 지키지 못한 약속 사이에서 헤매는 그는 여행의 끝에서 무엇을 찾을까.

▲ 박동욱의 찬영 찬영은 예전에 희빈과 함께 거닐었던 인도를 추억하며 다시 이곳에 온 인물이다. 실제로 박동욱 배우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녀와의 사연을 담았다고 한다. 희빈을 잃고난 후, 그녀를 그리워하며 다시 온 인도. 지키지 못한 약속 사이에서 헤매는 그는 여행의 끝에서 무엇을 찾을까. ⓒ 곽우신


술과 음악에 취한 혁진 <인디아 블로그>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 모두 명장면으로 꼽을 만한 신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사막에서 별을 보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갠지스 강에 디아를 띄우는 장면이다. 사막에서 별을 보며 보드카와 1990년대 음악에 취한 찬영과 혁진의 이야기는 보는 관객마저 극에 취하게 한다.

▲ 술과 음악에 취한 혁진 <인디아 블로그> 에피소드1과 에피소드2 모두 명장면으로 꼽을 만한 신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사막에서 별을 보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갠지스 강에 디아를 띄우는 장면이다. 사막에서 별을 보며 보드카와 1990년대 음악에 취한 찬영과 혁진의 이야기는 보는 관객마저 극에 취하게 한다. ⓒ 곽우신


국어사전은 '여행'이라는 말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

그러나 이 설명에는 빠진 것이 있다. 여행은 그 객지로부터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끝이 난다. 객지에 정착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이주 혹은 이사라고 말하지 여행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여행은 일시적으로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이내 본디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행위이다.

인간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게 된 건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봤을 때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른 길을 나섰다가 원래의 터전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길을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저곳과 이곳을 비교할 수 있는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객지를 통해 터전의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다.

'호모 노마드'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기자간담회에서 김다흰 배우가 말한 것처럼 연극 <인디아 블로그>에는 "시대적인 문제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보는 청춘으로 하여금 헬조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 힘이 있는 이유다.

에피소드2의 주인공들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과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배우 김다흰과 임승범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들이 풀어내는 에피소드2는 에피소드1 보다는 조금 느린 템포로 전개된다. 그렇다고 마냥 진중하고 느리기만 한 극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음악과 노래를 삽입하여 몰입도를 유지하려 한다.

▲ 에피소드2의 주인공들 지난 1월 1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연극 <인디아 블로그> 프레스콜과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배우 김다흰과 임승범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들이 풀어내는 에피소드2는 에피소드1 보다는 조금 느린 템포로 전개된다. 그렇다고 마냥 진중하고 느리기만 한 극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음악과 노래를 삽입하여 몰입도를 유지하려 한다. ⓒ 곽우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여행 한 번이 헬조선 청년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찬양도, 혁진도 결국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 다흰은 여행이 끝난 뒤 평범한 학원 강사로 돌아가고, SB는 취직에 실패한다. 전석호 배우가 프레스콜 현장에서 말한 것처럼, 여행을 다녀왔다고 혹은 시간이 지났다고 어떤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 되거나 많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헬조선의 삶을 힘겹게 영위하는 흙수저 청년들에게, 여행은 사치일지 모른다. 대부분 청년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혀 아등바등 일상을 버티는 데 급급하다. 탈조선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 아닌가. 간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탈조선이 아니라 끝나면 돌아와야 하는 탈조선이 고작이다. 탈조선을 통해 헬조선의 각박한 현실만 더욱 깨닫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나 이제 한국 가면,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정말 그럴까? 여행을 통해 그 갈구하던 무언가를 손에 붙잡아보려 시도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여행을 떠나 내 안에 없던 용기도 한 번 내어 보고, 다른 길을 걷는 설렘을 느껴본다는 건 조금이나마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구분 짓는다. 여행의 경험은 우리가 일상 역시 여행하는 것처럼 용기를 내어 살 수 있는 계기를 준다.

탈조선을 꿈꾸는 것과 탈조선조차 꿈꾸지 않는 것의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다른 길, 다른 삶,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이끈다. 인도를 실제로 가보았든 가보지 않았든, 지금 이 자리에서 흔들리고 있는 청춘에게 이 연극을 추천하는 이유다. 배우와 함께 관객도 사막의 하늘을 수놓는 별빛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갠지스 강에 디아를 띄우며 각자의 소원을 빌 수 있으니까. 이 연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볼 용기를 갖게 되니까.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인디아 블로그>를 볼 당신의 여행에 행운이 깃들기를 빈다. 인도행 티켓 발권은 오는 28일까지다.

"Have a nice trip, you know."

<인디아 블로그> 포스터 연극 <인디아 블로그>가 지난 1월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해 벌써 공연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인도의 풍광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고, 무엇보다 앉은 자리에서 '길떠남'을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극이다. 드라마틱한 갈등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없기에 다소 지루할 관객도 있겠으나, 쉬어가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 <인디아 블로그> 포스터 연극 <인디아 블로그>가 지난 1월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개막해 벌써 공연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인도의 풍광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고, 무엇보다 앉은 자리에서 '길떠남'을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극이다. 드라마틱한 갈등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없기에 다소 지루할 관객도 있겠으나, 쉬어가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 연우무대



인디아블로그 김다흰 박동욱 전석호 임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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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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