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중문학에는 '디브리지'(후반부 브리지)가 들어간다. 어떤 디브리지는 오글거리지만, 어떤 디브리지는 그 자체가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대중문학에는 '디브리지'(후반부 브리지)가 들어간다. 어떤 디브리지는 오글거리지만, 어떤 디브리지는 그 자체가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 픽사베이


디브리지(D-Bridge)가 무슨 말일까? 박채원의 <대중가요 작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대중가요에서 2절 코러스와 3절 코러스를 연결하며 1절과 2절의 브리지(Bridge)와 달리, 곡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전개로 약간의 반전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반복되던 멜로디에 살짝 새로운 패턴을 가미해서 신선함을 주는 부분이다.

때로는 가장 애절한 부분이 디브리지가 되기도 하고, 디브리지 자체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수도 있다.

준비 없이 터져나온, 예쁘지 않은 진심

많은 노래들의 디브리지 멜로디는 다른 양상으로 흐르는 전환의 느낌이 강하다. 다른 파트에 비해 상당히 전형적인 멜로디 패턴을 보인다. 그래서 대중가요의 형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분위기 전환을 느낄 수 있게끔 한다. 이 부분은 노래의 4분의 3이 흐르고 난 그제야 시작되어 화자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살짝 그리고 짧게 비추고 끝이 난다.

말하자면 곡 전체의 양념 같은 역할이다. 음악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디브리지는 사실은 정말 소중했던 순간, 사실은 진짜 내가 원했던 것 그리고 내가 지금 진짜로 원하는 것으로 잠시 우회하는 꿈이고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부분의 가사를 살펴보면 '사실 그때', '난 말이야', '간절한', '만일 ~라면'등의 단어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막바지에 터트리고야 마는, 속으로만 간직하던 비밀스러운 어떤 것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준비 없이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그건 그리 예쁘지만은 않다. 멜로디 역시. 가사 역시.

개인적으론 너무 간지럽고 적나라하기도 하고 갑자기 다른 곡을 듣는 것 같은 억지스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디브리지를 빨리 지나서 3절로 가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디브리지를 들을 땐 온 감정이 뒤흔들린다. 좀 지난 노래이지만 샤이니의 '방백'을 살펴보면 디브리지를 들었을 때가 그랬다.

"처음 너의 눈물을 봤던 그 날이 생각이 나, 하소연하던 너를 보며 난 못된 기대를 했었지." - 샤이니 '방백' 중에서

디브리지는 이렇게 혼자만 간직했던 '못된' 속마음을 가까스로 꺼내 놓는다. 대놓고 말 못한 비밀, 반대로 말했던 진심을 토해내듯 말하는 그것은 오래 참아온 "그래, 나 너 좋아해"라는 말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가까스로 터지는 순간, 그 짜릿한 순간의 긴장과 카타르시스와 많이 닮아있다. 고로 이 곡의 디브리지는 양념이 아닌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리고 노래는 이제 꿈을 꾸다 돌아온 듯 현실과 꿈을 잘 조화시킨 3절의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담담하게 노래의 결말을 짓는다.

진짜 하고픈 말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한가



"지금 내 앞엔 너무 눈부신 두 사람 그리고 서툰 연기를 하는 내가 있어. 이런 바보 같은 날 스스로 꾸짖어 봐도 가슴은 가슴은 여전히 널 향하고 있나 봐. 약속되어 있는 것처럼 듣지 못하는 네 앞에 혼자서 난 중얼거려 네게로 가고 싶어. 언젠가는 오로지 내 맘 담아서 오래된 이야기 하고파 너를 품에 안고." - 샤이니 '방백' 중에서

'방백'의 화자는 결국 디브리지의 말들을 하기 위해 3분 넘게 담담한 척하느라 참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말과 멜로디가 노래의 제목 '방백'처럼 듣는 나에게만 들려주는 귓속말 같아서 더 애처롭다.

수 없이 재생을 반복한 '방백'의 멜로디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내 속에 든 걸 꺼내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먼저 해야 할까? 한 곡의 노래의 4분의 3이나 차지하는 1절의 Verse(벌스) 1 - Verse 2 - Bridge 1 - Chorus(코러스) 1, 그리고 2절의 Verse 3 - Verse 4 - Bridge 2 - Chorus 2를 지나야 디브리지가 시작된다. 몇 번의 '기'와 '승'을 어쩌면 '전'과 '결'(사실 클라이맥스는 Chorus 1이니까)까지 반복해야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지루한 기다림과 숱한 노력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디브리지는 클라이맥스가 지난 후의 전환부이다. Verse, Bridge, Chorus 쯤에서 한 마디 한마디 벽돌을 쌓아가듯 이야기하고 있는 당신의 지금도 괜찮다. 디브리지의 찌릿하고 애달프고 미칠 듯한 감정은 없겠지만 막연함 속을 경주하고 그 가운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당신의 그 시간도 괜찮다.

잘 비축해두면 된다. 그것이 어떤 말이든. 소중하고 유치하고 간지럽고 애틋하고 뜨거운 당신의 말. 한 번 터트리고 나면 그다음은 3절의 노래처럼 또 쉽고 담담하게 속내를 꺼내놓게 하는 디브리지는 반드시 터지고 말 거니까. 대한민국의 대중가요에는 반드시 디브리지가 있으니까.

또 모른다. "괜찮다 괜찮다"하는 나 또한 디브리지에 무엇을 숨겨놨을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민아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 형식 디브릿지 브릿지 고백 방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