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오선진 오선진은 젊은 한화 이글스를 이끌어 나갈 내야 자원이다. 오선진이 알에서 껍질을 깨고 나올 때 한화의 내야는 바늘구멍도 통과할 곳이 없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망 수비를 자랑할 것이다.

▲ 한화 이글스 오선진 오선진은 젊은 한화 이글스를 이끌어 나갈 내야 자원이다. 오선진이 알에서 껍질을 깨고 나올 때 한화의 내야는 바늘구멍도 통과할 곳이 없을 정도로 촘촘한 그물망 수비를 자랑할 것이다. ⓒ 강윤기


지금 봄을 기다리는 그라운드에는 스프링캠프로 훈련을 떠난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스프링캠프에 초대 받지는 않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훈련에 제외되기도 한다. 누가 말했던가? 인생은 잔인하다고. 잘 되어간다 싶다가도 다시 엎어지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없는 곳에서의 주전 경쟁은 하지 말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바로 프로 9년 차 한화이글스 오선진이다.

고교 시절 주목받는 유격수였던 오선진

오선진의 경우 고교 시절 풋워크가 좋고 수비력이 뛰어나다는 스카우터들의 평가를 받았지만 1년 후배들이 워낙 쟁쟁해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 했다. 1년 후배인 충암고 이학주(샌프란시스코), 서울고 안치홍(경찰청), 경북고 김상수(삼성), 경기고 오지환(LG), 광주 일고 허경민(두산) 등 2009년 신인 드래프트 동기였던 이른바 '빅5' 유격수가 자웅을 겨뤘다.

오선진에게 고교 시절 영광의 시대는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대회였다. 2006년 추계 서울시 고교대회에서 홈런·타점·도루왕에 타격 2위를 기록하며 소속 팀 성남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오선진은 "학창시절 중 이때가 가장 감이 좋았던 것 같다. 제일 자신 있는 수비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 마음 먹은 대로 되었다. 야구할 때 받은 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 MVP도 이때 수상한 것"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터진은 2008년 드래프트 당시 2차 4라운드 26순위에 오선진의 이름을 호명한다. 공수주 기본을 갖춘 유격수로 평가하고 지명한 것이다. 오선진은 그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딱 생각한대로 된 것 같아요. 당시 성남고 감독님이 '넌 프로에 몇 번째로 지명을 받으면 프로에 갈 거냐,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거냐'고 질문했을 때 저는 2차 4번까지는 프로에 가고 그 이후 (순번이면) 대학에 가겠다 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2차 4번이었습니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신인급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았다. 송진우(은퇴), 정민철(은퇴), 구대성(시드니)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그야말로 팀에 큰 선수 공백이 생기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나 팀의 노쇠화는 오선진에게 있어 기회였다.

오선진은 입단 첫해부터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더니 내야 유틸리티로 1군 출전의 기회를 잡았다. 2008시즌 46경기 출전으로 1군 무대를 경험한 오선진은 1·2군을 오가긴 했지만, 한화의 1군 라인업에 신인급 선수로는 자주 이름을 올렸다. 1군 첫해 타율은 1할 3푼 3리 4안타 1볼넷에 그쳤지만 대수비 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오선진은 "고교를 졸업하고 처음 캠프에 갔을 때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는 투수조, 야수조에 쟁쟁한 선배들이 매우 많았다"라며 "신인이다 보니 플레이 자체를 소심하게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신인은 스프링캠프에 가면 아무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연차가 있다 보니 선배, 동료와 친하고 후배들도 있어 편하지만 그 당시(첫 스프링캠프)에는 막내로서 야구 외적으로도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밥 먹을 때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바로 프로에 입문해서 후회는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선진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에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왔을 때 대학에 갔다 올 걸 그랬나 하고 후회도 좀 했어요다.(웃음) 그때는 대학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 수도 있고 캠퍼스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고교 졸업하고 바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부족한 아쉬운 성적, 군 입대로 변화 택한 오선진

2010년 당시 한화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한대화 감독은 오선진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 이범호(기아)의 해외 이적, 김민재(kt 코치)의 은퇴, 한상훈·송광민의 군 입대로 내야에 그야말로 큰 구멍이 생겼다. 2006~2009년 내야를 이루던 선수 전원이 빠져나간 것이다.

없는 살림에 온갖 고초를 겪은 한 감독은 오선진을 톱타자로 기용하며 주전 3루수로 안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10년, 2011년 부진한 타격을 보이던 오선진은 2012년 타율 3할을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감했다. 그러나 체력이 문제였는지 후반기 들어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아쉽게도 3할 달성에 실패했다. 110경기에 출전하여 2할6푼3리 399타수 105안타 3홈런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세 자릿수 안타를 친 것만큼은 의미가 있었다.

이듬해 바뀐 한화의 새 사령탑 김응룡 감독 또한 오선진에게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높은 기대에 따른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성적과 비교했을 때 2013년 시즌은 매우 아쉬웠다. 좀 더 잘해야 된다는 욕심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은 오선진은 군 입대를 결심한다.

"2013년도는 감독님이 바뀌고 나서 첫 해였습니다. 저도 감독님께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의욕적으로 시즌을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 했습니다. 그때 좀 잘했으면 군대를 늦게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구단과 팬들이 오선진은 뭔가 될 것 같다고 기대를 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죠.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꼬였어요. 매우 후회가 남는 시즌입니다."

팀과 조율한 오선진은 2013시즌을 마친 뒤 조용히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다.

"상무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아무래도 각 팀에서 선수들이 와서 한 곳에 모여 야구를 하는 거니까 서로 좋은 점들을 많이 벤치마킹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편하게 웨이트 트레이닝 하고 저녁에는 일과 끝나고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앉아 프로야구 중계 보면서 많은 분석을 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한화가 엄청 이슈였잖아요? 아! 저기 내가 있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아쉬워했습니다. 주석이(하주석·한화)와 입대 동기여서 특히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부상, 야구는 타이밍 싸움이다

 오선진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가 올 시즌 타격에서도 맹활약을 펼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오선진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가 올 시즌 타격에서도 맹활약을 펼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 강윤기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역 명령을 받은 오선진은 절치부심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둘렀다. 2016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거라는 예감을 한 그는 마무리캠프에 이어 비활동기간에도 서산(한화이글스 2군 훈련장)에서 개인 훈련에 매진했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뭘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코치님들이 시키는 대로 운동했던 것 같아요. 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변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이젠 스스로 내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아직 제 자리가 없으니 자리를 잡도록 노력해야죠."

그러나 사람 마음 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선진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서산에서 개인 훈련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조깅을 하러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살얼음이 낀 부분을 잘못 밟았다. 알고 보니 계단에 물이 흘러 살짝 얼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는 안타까운 부상이었다.

"군대에서 돌아오고 첫 해인데 불의의 부상을 당해 한숨이 절로 나왔죠. 어쩌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넘어진 김에 잠시 쉬어 간다고 봐야죠. 아무래도 스프링 캠프 훈련에 참여한 선수들에게 먼저 기회가 갈 것 같아요. 그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저도 어떻게든 빨리 합류하려고 노력해야죠. 단, 부상은 대충 회복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확실히 최고의 몸 컨디션을 만들어서 훈련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한 번쯤은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자랑스럽고 떳떳한 멋진 아들이 되겠습니다"

오선진의 장점은 수비다. 건실한 수비를 자랑하는 오선진에게 있어 약점은 타격 시 파워다. 그래서 그는 순발력과 민첩성이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힘을 기르고 기술적인 보완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체력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요. 시즌이 끝나가는 후반기 막바지에는 글러브 들고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 입대 전과 비교해서 보다 성숙해진 오선진은 마음 속에 담고 있던 목표를 진중하면서도 뜨거운 울림으로 토해냈다.

"언제 복귀해서 다시 야구할지 모르겠어요. 올 시즌 늦게 출발했지만 '오선진 많이 좋아졌다, 군대 제대하니 역시 다르다'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주전을 하겠다는 목표 보다는 스스로 절박하게 매달리다 보면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 컨디션은 매우 좋아요."

마지막으로 오선진은 아들로서 부모님께 대한 다짐도 잊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풍족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셨는데 꼭 열심히 잘해서 남들한테 떳떳하게 자랑하실 수 있는 멋진 아들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미셀 푸코는 "시선이 곧 권력"이라고 말했다. 순정만화 속 잘생긴 주인공 같은 오선진은 이미 팬들의 시선을 빼앗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비단 외모뿐 아니라 그는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그가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한화를 응원하는 모든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지도 모른다. 그가 팬들의 '권력'을 갖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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