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각 방송사는 저마다 상반기 예능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고심의 흔적을 쌓은 예능 파일럿들을 선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안정환이라는 한 사람이었다. 지난 8일 오후 8시 30분 MBC에서 파일럿으로 선보인 <미래 일기>를 통해, 안정환은 여든 살의 노인으로 '미래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리를 비운 정형돈을 대신한 예능 '노망주'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하루에 두 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요한 비중으로 출연했다. 전문 예능인도 아닌, 안정환이 말이다.

한편에서는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김구라의 다그침에 '예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야 말았던 서장훈도 눈에 띈다. 그의 '포스트 김구라'식의 은근한 행보도 만만치 않다. 스포츠 스타에서 예능 스타가 된 두 캐릭터를 비교해보려 한다.

안정환, 인간적 매력으로 대세가 되다

 '우리동네 예체능' 안정환, 예능 진출한 테리우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우리동네 예체능> 1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안정환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시청자들의 도전장을 받은 연예인 팀이 도전자 팀과 대결을 펼치는 생활밀착형 건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매주 화요일 밤 11시10분 방송.

▲ 안정환, 예능 진출한 테리우스 지난 2015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우리동네 예체능> 1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안정환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8일 첫선을 보인 <미래 일기>는 MBC가 야심 차게 준비한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연예인들이 몇십 년 후의 미래로 여행을 떠난다는 프로그램의 사전 설명은 막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여든 삶의 분장을 한 소회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안정환의 매력이 돋보였다.

그저 분장만으로 모녀와 부부의 상봉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시간'의 절묘함을 잡아챈 <미래 일기>의 기획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눈물로 흐드러져 버릴 프로그램에서 여든의 독거노인으로 돌아온 안정환은 '나이 듦'의 쓸쓸한 소회와 고독을 충분히 피력하면서도, 결코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넉넉한 인간적 매력을 보여줬다. 덕분에 <미래 일기>라는 프로그램의 예능적 성격을 한껏 살려낼 수 있었다. 홀로 지하철을 타도, 축구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해도 상관없었다. 안정환은 때론 그 자리에 없는 박지성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누구를 붙여놔도 유쾌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여유로운 리액션으로 그 어떤 예능인보다도 충분한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그가 <냉장고를 부탁해>의 MC로 등장한다. 낯부끄러운 망토를 뒤집어쓰고 '예능 노망주'라는 수식어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오래 호흡을 맞춰왔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팀워크 안에 포지션을 꿰차버린다. 이전 객원 MC들은 김성주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유려한 진행을 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안정환은 시간에 쫓기는 홍석천을 놀림으로써 오히려 그에게 예능적 여유를 부여하고, 김성주의 부탁성 멘트조차 피곤해하며 제칠 정도로, 자신만의 분위기로 판을 장악했다. 정형돈이 했던 그 독자적인 흐름을 안정환식으로 재해석하여 고정 자리를 따내고야 말았다.

예능인으로서 안정환의 매력은, 예능이라는 방점을 뗄 때 오히려 빛을 낸다. 그에 앞서 예능 유망주로 선을 보였던 송종국이 방송 프레임에 자신을 맞추고자 애썼다. 반면 '막말' 해설에서부터 드러난 것처럼, 솔직하면서도 여유로운 인간적 매력이 예능인 안정환을 규정한다. 예능 첫 진출이었던 <정글의 법칙>에서, 아직 몸이 덜 풀렸던 안정환은 그저 거친 가부장적 남자로서의 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몇 번의 예능을 경험하면서 그 거친 모습 속에 숨겨진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는 여유를 지니게 된 것이다.

<가이드>를 통해 아줌마 군단을 어르고 달래며 네덜란드 여행도 거뜬히 해내고, 버려진 축구 유망주를 길어 올려 다시금 꿈을 꾸게 하였던 <청춘 FC-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건 예능인 안정환 이전에 인간 안정환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의 인간적 매력은 한국 축구 경기 홍보를 목적으로 했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대중적 확인을 얻고, 설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세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서장훈, 분석적인 좌뇌로 예능에 한 자리를 차지하다

'아는 형님' 서장훈, 예능의 거인된 골미남  4일 오후 서울 무교동의 한 커피숍에서 열린 JTBC 예능 <아는 형님> 제작발표회에서 서장훈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아는 형님>은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8명의 남자가 각자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질문을 그들만의 방식대로 풀어주는 '형님들의 고군분투 예능 프로그램'이다. 5일 토요일 밤 9시 40분 첫 방송.

▲ 서장훈, 예능의 거인된 골미남 지난 2015년 12월 4일 오후 서울 무교동의 한 커피숍에서 열린 JTBC 예능 <아는 형님> 제작발표회에서 서장훈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이렇게 안정환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내세워 예능 유망주로 거듭나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선수 출신인 서장훈의 행보는 안정환과 극에 서 있다. '국보 센터'였던 그는 예능에서 전혀 몸을 쓰지 않는다. 그가 예능에서 자신의 주 무기로 등장한 것은 오로지 그의 세 치 혀, 그중에서도 '좌뇌'의 지령을 받은 이성적인 입놀림이다. 김구라의 지인으로 적극적 추천을 받아 예능에 등장한 그는 '김구라'를 벤치마킹이라도 한 듯, 그의 방식을 이어받는다.

<힐링 캠프>에서는 이경규를 대신해 독한 멘트를 담당하는가 하면, <썰전> 2부에서는 김구라와 설왕설래를 벌이며, 시사 경제 분석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예능 포지션에 바탕이 되는 것은 일찍이 농구 선수 시절부터 독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지식인적 풍모이다. 지난 7일 <아는 형님> 상식 퀴즈에서 연승행진에서 보듯, 그는 그저 웃기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경험 혹은 그가 지녀온 지식에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한다. 예능에서는 드문 캐릭터이다. 아마도 언젠가 김구라를 대신해 <썰전>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서장훈에게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처음 김구라와 함께 <사남일녀>를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하는가 싶더니, <썰전>에서 시사·경제 분석자로 한 자리를 꿰차고, 리얼버라이어티 <아는 형님>에서도 웬만하면 몸 대신 한 마디의 촌절살인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려 애쓴다. 때때로 그가 날리는 독한 멘트로 인해, 예능에서의 호불호가 갈리고 그 지분이 쉽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구라 이후에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김구라의 대체재로서의 영역이 분명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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