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더 킹즈맨 포스터

▲ 올 더 킹즈맨 포스터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사람들은 흔히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이 그렇지 않은 이보다 더욱 청렴하고 도덕적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실제 삶에서는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이 보수적인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28년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당선된 미국 정치인 휴이 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 <올 더 킹즈 맨>은 휴이 롱의 실화를 바탕으로 강직한 신예 정치인이 어째서, 또 어떤 과정을 거쳐 타락하게 되는지를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1893년 루이지애나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휴이 롱은 1928년 최연소로 주지사에 당선된 유망한 인물이었다. 주지사로서 그는 자선병원과 주립대학을 설립하고 도로와 교량 등 사회 간접자본 건설에 주력해 빈민을 구제하고 대규모 실업사태를 해소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재원마련을 위해 석유, 전기회사에 중과세 부과를 시도했다 탄핵 당할 위기에 처한 건 물론이다.

휴이 롱이 모든 면에서 깨끗하고 양심적이었던 건 아니다. 자신의 탄핵을 막기 위해 온갖 종류의 로비를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적인 비리에 대한 의혹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온갖 위기를 이겨내며 대선까지 바라봤던 이 야심찬 정치인은 1935년 9월 8일, 갓 불혹을 넘긴 나이에 의사당 건물 안에서 경쟁자의 사위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운명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의 최후는 링컨, 케네디의 암살과 맞물려 정치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에피소드다.

더 강한 사람 아닌 더 많은 사람 편으로

올 더 킹즈 맨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는 윌리 스탁(숀 펜 분)

▲ 올 더 킹즈 맨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는 윌리 스탁(숀 펜 분)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올 더 킹즈 맨>은 시골뜨기 재정관에서 일약 루이지애나 주지사까지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 윌리 스탁(숀 펜 분)과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신문기자 잭 버든(주드 로 분)의 이야기다. 윌리 스탁은 휴이 롱을 모델로 숀 펜이 재창조했는데 촌스러운 외모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시종일관 주변을 압도하는 제왕적 인물이다. 그는 메이슨시티의 재정관으로서 학교 건설 과정에 비리가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폭로해 유명세를 얻는다. 이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호소력 짙은 연설을 무기로 당선된다.

대중을 지향하는 그의 정책에 상류층 상당수가 거부감을 나타낸 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폭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잭 버든이 아버지처럼 여겨온 어윈 판사의 집에서 잭과 다른 손님이 벌이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슬며시 드러낸다.

"요즘 그쪽 세상은 어떤가? 아주 거칠게 돌아가던데. 주 재산을 거덜 내더군. 이것도 공짜, 저것도 공짜. 막노동꾼들이 세상 전부가 공짜인 줄 알아. 돈은 누가 낼 건가? 그게 내 궁금증이야."

"석유회사랑 전력회사가 돈을 내겠지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좀 나누어야겠지요."

"세금폭탄을 때려서 사람들을 다 죽이겠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생각하지 못하시는군요. 우리 정부가 오랬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스탁씨가 주지사로 선출되지 않았을 겁니다."

공립교육, 공립의료, 공공서비스 정책을 추진하며 고소득층에겐 세금을 더 물리고 가난한 자에겐 복지혜택을 주자는 윌리 스탁의 주장은 거의 한 세기 가까이 흐른 오늘의 정치판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2003년 종합부동산세, 2010년 무상급식, 2012년 경제민주화, 2014년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도 모두 이러한 문제가 모습을 달리해 터져 나온 것이 아니던가.

버니 샌더스를 꿈꾸게 한 정치

올 더 킹즈 맨 루이지애나 주지사 재임 도중 탄핵 위기에 몰리자 대중 앞에서 격정적으로 연설하는 윌리 스탁(숀 펜 분)

▲ 올 더 킹즈 맨 루이지애나 주지사 재임 도중 탄핵 위기에 몰리자 대중 앞에서 격정적으로 연설하는 윌리 스탁(숀 펜 분)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각 주에서 펼쳐지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의 돌풍이 일고 있다. 부족한 인지도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애초의 평가를 극복하며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버니 샌더스는 특히 30대 이하 젊은 층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더스가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은 '다수 미국인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보편적 의료보험과 국·공립대학 등록금 무료 공약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성취를 구성원 개개인이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샌더스가 이겨내야 할 것은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될 계층의 반발이다. 과거 이와 같은 개혁을 시도한 많은 이들이 첫 번째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자리에서 쫓겨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극심한 빈부격차를 방치한 결과 샌더스와 같은 인물이 유력 대선후보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더불어 샌더스와 다른 후보들의 경합에서 쟁점으로 다뤄지는 것이 공공서비스 확대와 차등적인 세금부과라는 점에서 오늘 미국 프라이머리와 <올 더 킹즈 맨> 사이엔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하겠다.

"나는 부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식탁에 앉아 당신들의 만찬을 충분히 즐기십시오. 그건 당신들의 것 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만찬을 즐기고 남은 음식들은 식탁에 그대로 두십시오. 그건 우리들의 것 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교육받을 권리,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 낙후된 지역이 개발돼야 할 권리는 부자들의 자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루이지애나 주민들이 주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일 뿐 입니다.지금 부자들은 우리들이 되찾으려는 권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저를 파멸시키려하고 있습니다.

제게 망치를 주십시오. 그들을 무너뜨리겠습니다. 우리가 권리를 누리는 것을 방해하려는 자는 그가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윌리​ 스탁의 연설 중 

80년 전 휴이 롱은 제 뜻을 온전히 펴지 못한 채 주의회 건물에서 죽음을 맞았다. <올 더 킹즈 맨>의 주인공 윌리 스탁 역시 초심을 잃고 탐욕에 찌들어 휴이 롱과 별반 다르지 않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자를 대변해 가진 자와 싸워온 많은 이들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다. 로마의 그라쿠스 형제, 어쩌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많은 이들이 제 뜻을 온전히 펴지 못한 채 도중에 스러져갔음을 안다. 우리의 역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반복되는 역사 가운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우리에게 있다면 어떨까? 버니 샌더스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에게도 소수의 성장보다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할 줄 아는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말이다. <올 더 킹즈 맨>은 그와 같은 정치적 지도자를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올 더 킹즈 맨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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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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