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엄마 역의 배우 라미란이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라미란이 말 그대로 "하얗게 불태웠다"고 고백했다. 그간 선보였던 코믹 연기와 생활 연기의 모든 걸 담았다는 의미다. ⓒ 이정민


영화 <국제시장>과 <히말라야>의 연이은 흥행,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14> 등을 통해 라미란은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다. "조용히 쉬어가는 해라고 생각했는데 연말에 봇물 터지듯 터졌다"며 29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겸연쩍어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응답하라 1988>(아래 <응팔>)을 빼놓을 수 없다. '쌍문동 태티서'(라미란, 이일화, 김선영)의 멤버이자 정봉(안재홍 분)과 정환(류준열 분)의 엄마였던 지난 3개월. 라미란은 "<응팔>이 아마 내 인생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고 고백했다.

애드리브?

라미란은 "하얗게 불태웠다"고 운을 뗐다. 전국노래자랑 장면, 남편 김성균과 아들을 구박하며 보인 재치 있는 모습은 <응팔> 시청자들이 꼽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그간 참여한 작품을 통해 코믹한 생활연기자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신원호 감독에게 "<응팔> 하느라 밑천 다 썼다, 책임지시라"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신 감독의 대답은? "다른 작품들은 알아서 잘하시지 않겠느냐"였다. 그만큼 라미란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뜻.

캐릭터 이름도 본명이었고,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그는 <응팔>에 자신의 평소 모습을 많이 담아냈다. "원래 아줌마기도 하고, 딱히 뭔가 준비할 건 없었다"며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 했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진심이었다. 호피 무늬 옷을 즐겨 입어 '치타여사'로 불리곤 했던 라미란 캐릭터를 두고 그는 "(남들이 웃기다고 말한 장면도) 미란 입장에선 진짜 절실한 심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많은 분이 제가 애드리브를 많이 한 줄 아시더라고요. 거의 대본 안에 있는 대로 했어요. 김성균씨 때리는 거, 발로 밟는 장면 그건 애드리브였네요(웃음). 아줌마 하면 다들 수다스럽고 우악스러움을 떠올리실 텐데 그것에서는 좀 비껴가려고 했어요. 보시는 분들도 지겨우면 안되니까!

이일화 선배, 김선영씨와 촬영 전부터 많이 만났어요. 어차피 촬영 때 평상에서 수다 떠는 모습이 많을 테니 지금부터 떨자고 모였죠. 일화 선배는 정말 아름다우셨어요. 언니인 걸 원래 알고 있었는데 처음엔 그 모습에 주눅이 들었어요. 선영씨는 나보다 언니인 줄 알고 깍듯하게 대했는데 동생이었고요. 이번 작품 말고 만날 기회가 없었거든요. 친해진 이후라 촬영 때 서로 말 놓는 게 어색하진 않았어요. 화면을 보니 흠... 제가 가장 나이 들어 보이긴 하더라고요(웃음)!"

"덕선아, 우리 아들 왜 찼냐!"

 <응답하라1988>에서 열연을 보여준 라미란. 하지만 그녀는 단박에 뜬 '벼락스타'가 아니다.

"내가 보검이를 예뻐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정환이니 서운하긴 했죠. 나중에 미래에서 덕선이를 붙잡고 '우리 아들 왜 찼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 tvN

쌍문동 태티서로선 행복했지만, 엄마로서 라미란은 속상했다. 많은 시청자의 울분을 토하게 했던 아들 정환이의 사랑 실패 때문이다. 라미란은 "애가 자꾸 사천(극 중 정환의 근무지)으로 내려가는데, 운전 조심하라고 대사하는 데서 눈물이 나더라"며 "나도 몰랐던 감정을 발견해서 재밌었다"고 말했다.

"짠하지! 덕선이를 향한 정환의 고백 장면을 저도 봤는데 그게 진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택(박보검 분)이는 바둑밖에 모르고 맨날 약이나 먹고! 남편감으로 좋진 않아요(웃음). 내가 보검이를 예뻐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정환이니 서운하긴 했죠. 나중에 미래에서 덕선이를 붙잡고 '우리 아들 왜 찼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무한 애정이 느껴졌지만 그런 아들이 무조건 사랑스러운 건 아니었다. 라미란은 "너무 무뚝뚝한 모습에선 정말 서운했다"라며 "그럴 땐 덕선이 같은 착하고 밝은 딸이 그립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선우(고경표 분) 같은 아들은 재미없을 거 같다"며 "정봉이 같은 아들이 딱이다, 복권도 잘 당첨되고! 아마 평소 쌓았던 덕이 그렇게 돌아온 거다"라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응팔> 시작 전에 감독님이 '설정 상 아들 둘이 있는데 정말 못생겼다, 기대하지 마시라'고 귀띔했어요. 보는 순간 아! 했죠. 절 딱 닮은 거예요. 못생긴 건 못생긴 건데 날 닮았으니 딱히 제가 못생겼다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근데 그런 친구들이 매력 있어! 못생긴 남자에게 빠지면 더 헤어나오기 어렵다고들 하잖아요(웃음).

정말 요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예요. 보통 가족은 극 중 배경인 경우가 많고, 엄마 캐릭터도 주변 인물로 소비되기 마련인데, 제대로 조명했어요. 어떤 분들은 이걸 <전원일기>에도 비교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여든이신데 '<응팔> 끝나면 이제 뭐 보냐고' 말하곤 했어요. 이 작품처럼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요즘 없는 거 같더라고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생활연기의 달인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엄마 역의 배우 라미란이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엄마이자 쌍문동 태티서로 혼신의 힘을 다한 라미란. 다른 드라마와 달리 그는 "<응팔>이 가족 이야기를 단순 배경으로 소모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 이정민

1975년생으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이 고향이다. 흔히 탄광촌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당시 고향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5남매 중 하나로 지내며 그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응팔>에 나오는 연탄불과 풍로(곤로) 역시 라미란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귀를 확 판 숏 커트를 했고, 그 머리로 입학식에 갔다가 귀가 동상에 걸렸다"며 "반 장갑에 반달 가방을 메고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라고 당시 생활 일부를 들려줬다.

"지금은 완전 여자 된 거죠. 얼마 전에 소녀 라미란, 성인 라미란 비교 사진이 떴던데 별로 놀랍지도 않아요. 댓글 보니 '(소녀 라미란인데) 오늘 아침에 찍으셨나?'라는 말도 있던데 진짜 웃기더라고요. 어쩌겠어요. 그게 나인데. 아마 환갑 넘어도 전 이 얼굴일 거 같네요(웃음)."

라미란은 스스로 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골 당구장에 가도 소대장님 오셨냐고(라미란은 지난해 MBC 예능 <진짜 사나이>에 출연했다-기자 주) 그러고, 동네 마트에 가면 정봉이 엄마라고 사람들이 부르곤 한다"며 "눈치 없이 난 또 '네?' 하고 답하곤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연기는 재밌다

라미란에게 급부상이란 표현을 쓸 수는 없다. 업계에서 인정받아온 역사가 꽤 길다. 연극, 뮤지컬 무대를 전전하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의 교도소 동기 역을 맡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쓰 홍당무> <댄싱퀸> <국제시장> 등에 출연하며 소위 '신스틸러'로 자리를 굳혀왔다.

"사실 일하는 기간보다 쉬는 기간이 더 긴 때도 있었어요. 더 일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죠. 물론 누군가는 요즘 너무 많이 나오는 거 아니냐, 소모되는 거 아니냐 걱정하긴 하지만, 질리지 않게 제가 노력해야죠. 너무 많이 했으니 쉬어야겠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건방진 거 같아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해야죠.

차기작을 할 때 부담도 사실 많이는 없어요. 제 모습에 대중이 실망하실 수도 있는데 완급 조절한다고 생각해야죠. 지금 순간 반짝한 거지, 내가 많이 컸구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에 맞는 역할만 잘하면 되지 다른 소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박 쏟아지듯 인기가 내려왔는데 일단 즐겨야죠. 또 언제 이렇게 될지 모르니까!(웃음)

배우로서 인기를 노리는 게 아니라 전 그저 가늘고 길게 연기를 오래 하는 게 목표에요. 최정상 꼭대기에 서고 싶지도 않아요. 인기가 오르면 다시 내려갈 순간도 있을텐데 과연 제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롱런하는 그에게 연기하는 이유를 물었다. 주저 없이 "재밌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 삶을 살아보며 대리만족하고, 대중의 사랑도 받는데 이것보다 재밌는 게 없다"라고 웃음기를 거두며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물론 전 쪽(얼굴)을 파는 사람이고 연기로 감동을 드려야 해요. 근데 그것조차 재밌는데 어떡하나요!"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엄마 역의 배우 라미란이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급부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라미란은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꾸준히 신스틸러 면모를 보인 꾸준한 배우다. 하고 싶은 장르? "생활형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그가 전하는 멜로 감성이 궁금해졌다. ⓒ 이정민



라미란 어남류 응답하라 1988 성동일 이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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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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