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뉴욕타임스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한 라오스에 야구라는 공놀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떤 청춘보다도 더 혈기왕성한 헐크 이만수 전 SK 감독이다. 그는 야구인으로서 야구 불모지에 야구를 전파하고자 어렵고 힘든 길을 떠났다.

작년 말 이만수 전 감독은 의미 있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대한민국 외교부와 라오스 외교부가 야구 지원 양해각서(MOU)를 체결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산하에 있는 대한야구협회를 통해 야구 용품 1600만 원어치를 라오스에 지원했고, 정식으로 대한체육회 소속 야구 코치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 전 감독은 지인들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는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100년 전 필립 질레트 선교사로부터 야구를 전파 받은 그 사랑을 고스란히 라오스에 아끼지 않은 덕에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면서 "수고해 주신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그리고 대한야구협회 모든 직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다시 전한다.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조아렸다.


 야구인 이만수는 쉬지 않고 재능기부에 열과 성을 다했다.

야구인 이만수는 쉬지 않고 재능기부에 열과 성을 다했다. ⓒ 이만수


- 지난해 말에 체결된 라오스와의 MOU는 정말 큰 쾌거입니다.
"참 지난 1년 동안 고마웠습니다. 46년 동안 야구하면서 십시일반으로 팬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라오스와의 MOU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분 두 분 도움을 주시다 보니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 MOU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요즘 라오스에도 많이 소문이 나서 고등학교에서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저희를 찾아옵니다. 그러다 보니 참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 가장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었습니까?
"(한숨을 쉬며) 가장 부족한 부분은 지도자였습니다. 코치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다행스럽게도 3월에는 MOU 체결을 했기 때문에 대한체육회 소속의 지도자를 파견할 수 있습니다. 3월에 뽑히는 지도자가 가서 체계적으로 많은 걸 가르쳐야 합니다."

- 사회인 야구를 해도 연습보단 시합이 재미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시합 시켜 달라고 조르진 않던가요?
"아직 시합 같은 것은 욕심내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건 실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죠. 거기 있는 코치와 선수들은 하루라도 빨리 시합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욕심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내년에 정식으로 코치가 파견이 되면 그 코치 판단 하에 큰 대회가 아닌 작은 아시아 대회부터 참가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동남아시아 10개 국가가 한데 모여 펼쳐지는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전국체전 정도의 규모 일까요? 거기부터 참가하는 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 이 전 감독님은 힘드셨겠지만 라오스와 대한민국 간의 MOU가 쉽게 체결된 느낌입니다.
"(손사래 치며) 아이고. 아닙니다. 말도 마십쇼. 양해각서 체결하는 데 꼬박 1년 걸렸습니다. 작년 12월에 제가 처음 라오스에 가보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혼자 하기에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 벅찼습니다. 어떻게 활성화시킬 방법이 없나 많이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MOU라는 거 용어만 알지 잘 모릅니다. 사람이 모르면 가서 공부하게 되더군요.(웃음)"

-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껄걸 웃으며) 참 인생이란 게 사람을 필요할 때 보내준다고 느꼈습니다. 같이 일하는 박현우 코치가 특히 제일 큰 활약을 했습니다. 행정 처리 업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라오스에 가서는 부통령, 총리, 올림픽 위원장을 함께 만나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죠. 또한, 덧붙여 라오스 대사관과 김수권 대사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 주한 라오스 대사관은 종로에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종로 참 많이 방문했습니다.(웃음) 거기에 있는 라오스 대사를 만나 같이 쫓아다니면서 우리나라 교육부, 체육부, 대한체육회 등을 수도 없이 찾았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MOU를 체결하게 되더군요."

- 이정도면 상당히 빠른편 아닌가요?
"라오스 올림픽 위원장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태권도 협회를 만드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이 정도면 상당히 빠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저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라오스 측에서도 우호적인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다큐도 찍어 재방송을 무려 15번이나 해줬습니다. 라오스가 TV는 많이 없지만 사람들이 계속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보더니 야구에 대해서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SNS 시대 아닙니까? 인터넷으로 베이스볼을 많이 검색하여 우리나라, 일본, 미국 등의 영상을 보면서 야구를 공부하더군요."


 라오스에 전달 된 야구 물품과 함께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오스에 전달 된 야구 물품과 함께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만수


- 공부하는 선수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 무엇보다도 장비가 아닐까 싶어요. 헌 것도 괜찮습니다. 저기 가면 새것과 같은 물품이다 보니 장비를 걷어서 보내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제 휴대폰이 울려 확인을 해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 누구 셨습니까?
"그분은 서울대학교 사범대 학장이셨습니다. 태국에도 야구를 시키면 어떻겠냐고 제 의사를 묻고 제의를 하고자 전화를 하신 거였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도와주고 싶었지만 가르칠 지도자도 없고 제가 이제 체력이 벅차더군요. 우선 라오스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음.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럼요. 다 도와주고 싶죠. 하지만 제 좁은 소견으로는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풀어 가자고 했습니다. 누가 있다면 후방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으련만 아직은 그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베트남 4군데에 유니폼 정도만 쓸만한 것을 모아서 보내줬습니다."

- 체형이 동남아시아와 한국인이 다른 편인데 옷이 맞을까요?
"우리도 옛날에 그랬습니다. 다들 손재주가 있을 거야.(웃음) 고등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작습니다. 아무래도 못 먹고 못 입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 친구들도 우리가 다 옷을 자르고 줄여서 입으니깐 걱정 말고 많이 보내 달라고 합니다."

- 지도자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오지다 보니 지도자들이 선뜻 지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맞아요. 젊은 사람들은 좀 안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해합니다. 가정과 떨어져서 지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사실은 정동진 감독님(전 삼성 감독)이 가셨어야 했습니다. 정 감독님처럼 야구를 헌신적으로 지도하고 아이들을 돌보실 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습니다. 연세가 70세인데 찾아갔습니다. 집에 계시지 말고 라오스의 야구를 키워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 정동진 감독님은 라오스로 가셨습니까?
"처음에는 상당히 고민하시다가 흔쾌히 '오케이' 하셨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가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나온 의견이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였습니다. 대외 무상원조 전담 기관을 통해 라오스에 야구 코치로 가는 거였습니다."

- 코이카의 자격 심사는 까다로운 것으로 저도 들었습니다만.
"지난해 5월 건강 검진에서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담낭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담낭에 작은 용종이 앞길을 가로 막았죠. 그래서 당장 수술을 하고 7월에 재검을 받았습니다."

- 재검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정 감독님이 크나큰 열정이 있으셨죠. 사모님도 조용히 주변 정리를 하셨습니다. 이거(담낭 용종) 제거 수술했으니 들어갈 수 있다고 의사도 말했다. 7월에 서류 합격하고 완벽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뜻인지 최종적으로도 몸 상태가 또다시 나빠지셔서 결국 못 들어가셨습니다. 정 감독님이 제일 미안해 하셨습니다. '제자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못 도와준다'고. 또 '내 열정을 다시 깨워줬는데 들어가지 못 해서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사모님이 너무 좋아하시고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들어가지 못해 상당히 아쉬워 하셨습니다. 자주 찾아가 뵙는데 참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긴 한숨)"

- 일을 만드는 건 사람이지만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 감독님이 라오스 들어가시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꽃보다 청춘인가요? 라오스 여행기도 다 보시고 여행 관련 책도 찾아 보시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중에라도 몸이 건강해 지시면 갈 수 있는 거니깐, 그래서 현재 공모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참 쉽지가 않습니다. 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어렵네요."

- 어떤 식으로 그럼 다시 라오스로 파견되는 건가요?
"대한민국을 총 수색하려고 합니다.(웃음) 대한체육회에서 코치를 파견하는 식으로 합니다. 저도 다음 달에 다시 라오스에 갑니다. 한국은 매우 춥지만 라오스의 경우 제일 날씨가 좋은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11월부터 2월까지 딱 좋습니다. 다른 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듭니다. 또 매우 덥기도 하고요."

-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강의하시다가 쓰러지실 뻔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아찔했습니다. 그런데도 정글로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우리나라 60년대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에요. 아스팔트도 없고 비 한번 오면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길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 현장에 계실 때보다 더 바쁘십니다.
"현장에 있을 때는 감투 안 씁니다.(웃으면서) 현장에서 물러나니 더 바빠. 학교도 참 많이 나가고 여자학교 가면 재미있습니다. 요즈음은 티볼이 교과서에 있다 보니 바삐 움직여서 아마 야구도 탄탄하게 만들어 봐야죠."

- 현장으로 다시 복귀하시고 싶으신 마음은 없으신지요.
"SK와이번스에서 감독직 물러나기 전 2014년 10월 말이었습니다. 최창원 SK 구단주와 만나서 독대를 했습니다. 감독님 이제 감독 생활 끝나시면 무엇을 하실 거냐고 묻자 저는 야구 끝나고 나서 항상 준비해 왔다고 답했습니다."

- 준비하신 부분이 재능 기부와 라오스 야구 봉사인가요?
"맞아요. 그 밖에도 야구를 통해서 할 부분이 22가지 정도 되더군요. 그게 제 노트북 화면에 다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6가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참 기쁘더군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물러났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할만하더군요. 글 쓰는 것도 한 가지, 포수 훈련 영상 찍는 것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 참 이런 부분이 감사했습니다."

- 처음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흔쾌히 도와주시던가요?
"헐크 파운데이션(사단법인)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브로슈어(책자)는 다 만들어놨습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투자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거 알아요? 강 기자 제가 여태껏 모든 것을 받기만 했지 나눠주질 못했더군요. 그동안은 제가 아쉬우면 오히려 안 찾아갔어요. 자존심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라오스 선수들을 생각하니 사람이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라오스 청년들, 이 애들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참 많이 부탁했습니다."

- 그때 당시 마음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와 이렇게 세상이 냉정한가. 그러다 보니 3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서서히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달 정도가 지나자 조그만 공장하시는 분들, 작게 사업하시는 분들 등 십시일반 하나씩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 대회 포스터.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 대회 포스터. ⓒ 이만수


- 이달 말에 라오스 친선야구 대회가 열리지 않습니까?
"맞아요 1월 29일에 드디어 두 번째 한국과 라오스 친선 야구 대회가 열립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열립니다. 처음엔 걱정 많이 했습니다. 과연 6팀이 지원할까 의문부호였습니다. 그렇지만 몇 시간 만에 다 참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친선야구도 열리고 이제 지도자도 파견되면 보다 더 다양한 훈련이 시작될 텐데요.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훈련이 되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파견되는 지도자가 훈련 시키겠지만 체계적이고 재미 있는 야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선수시절 1984년도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엘에이 다저스로 캠프를 갔습니다. 저희는 늘 하던 대로 아침 저녁 밤새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여기가 군부대냐고 하면서 놀라더군요.(웃음) 훈련을 저렇게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까지 장시간 훈련을 하기 보단 집중력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응답하라 1988 시절 기사를 보면 오대산에서 얼음을 깨고 극기훈련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사진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보더니 으으으~ 하면서 미쳤다고 하더군요(웃음) 그게 그 당시는 참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인데 힘들었습니다."

- 재미난 일화가 있으신지요?
"훈련 중에 화장터에서 담력 키우는 것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장했는지 거기 안이 따뜻하더군요.(감탄사를 연발하며) 진짜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습니다.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가다 보니 끝에 공간이 있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누가 밑에서 다리를 잡더군요. 얼마나 놀랬는지 눈앞이 캄캄하고 겨우겨우 빠져나온 일화도 있습니다."

- 별의별 훈련이 다 있군요. 물에는 안 들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인간이 찬물에 있다 보면 절대 오래 못 삽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막 심장이 쪼그라지는 마비가 왔어요. 피티 체조 엄청 시키더군요. 인천 쪽에 있는 군부대에서 훈련했습니다. 군인들이 얼음을 이미 다 깨 놨더군요. 차라리 물속에 있으면 따뜻한데 물 밖에 나오면 얼굴이 마비가 왔습니다."

- 그때 같이 훈련하신 분들이 궁금합니다.
"내 뒤에 고 최동원 그리고 옆에 성준(삼성 코치) 뒤에 류중일(삼성 감독). 양일환(삼성 코치). 김상엽(NC 코치)이 이렇게 들어갔습니다.

- 얼음 물에 들어가면 콕콕 쑤시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이게 정신력 훈련의 일종으로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지긴 뭘 좋아지나요.(웃음) 얼음물 속에 20분 넘게 넣어뒀다. 두 명인가 쇼크 받아서 앰뷸런스에 실려 가버렸죠. 절대 도움 안 되는 훈련 방법입니다.(웃음)"

- 라오스는 얼음물 깨기 훈련을 할 수 없겠군요. 마지막으로 '야구인 이만수'의 올 한해 계획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2015년은 나에게 있어 돌아볼 시간도 많았고 많은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2016년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미 4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습니다. 1월에는 좀 휴식을 취하고 2월부터 바삐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야구라는 꽃이 활짝 피도록 말이죠. 그게 '야구인 이만수'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니깐요."

(24일 이만수 감독은 라오스로 친선 야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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