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캣츠비와 선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에서 배우 정동화와 유주혜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캣츠비와 선의 연애는 그토록 뜨거웠는데, 페르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식어 버린다. 원작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인데, 갑작스레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안타깝다. ⓒ 곽우신


지난 2004년 엠파스에서 연재되다가 이후 2005년 다음으로 자리를 옮겼던 웹툰 <위대한 캣츠비>(<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다). 연재가 완료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웹툰 팬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위기에 몰린 청춘의 현실,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사랑하는 청춘의 고민을 섬세하면서도 힘 있게 담은 작품이었다.

<위대한 캣츠비>, 그 굴곡의 역사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유주혜의 선 이전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유주혜라는 배우는 앞으로가 점점 더 기대되는 배우이다. 특유의 발랄하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이 고구마 같은 작품에 사이다 역할을 한다. 차리라 '선'이 주인공인 <아름다운 선>이 뮤지컬화 됐으면 어땠을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 곽우신


2007년은 <위대한 캣츠비>가 영역을 옮기며 더 많은 사람과 만난 해이다. tvN 드라마로 옮겨진 것과 더불어 대학로에도 창작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가 올라왔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호평 속에 다음 해까지 순항했다. 개인적으로 대학로에서 처음 봤던 소극장 뮤지컬이 바로 이 오리지널 <위대한 캣츠비>였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 없이,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원작 웹툰 작가인 강도하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14억5000만 원 상당의 표를 판매해놓고 정작 작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 2009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원작자와의 계약 불이행을 근거로 '공연 불가' 판결을 받았다. 당연한 처사였지만, 이전 작품을 사랑했던 팬들은 이후로 영영 볼 수 없게 된 작품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 공백을 깨고,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가 <위대한 캣츠비 RE:BOOT>(아래 <위캣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5년 11월 7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한 <위캣리>는 오는 31일 첫 리부트 레이스를 마칠 예정이다.

막장의 주인공은 청춘도 될 수 있다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하운두와 페르수 이규형 배우와 이시유 배우가 소화한 하운두와 페르수. 그 둘은 대학 시절 잠깐 연애했던 사이이지만, 페르수는 그를 떠나 캣츠비에게로 간다. 그러나 페르수를 잊지 못한 하운두는 페르수를 옭아 매기 시작한다. 단순히 '나쁜 놈' 하운두를 넘어, 하운두에게도 이해할 만한 면이 있음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과연 <위캣리>가 이 부분을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 곽우신


<위대한 캣츠비>를 관통하는 서사를 살펴보자. 대학 때부터 6년을 연애한 '캣츠비'와 '페르수'. 백수 캣츠비는 친구 '하운두'의 자취방에 얹혀살고 있다. 언제나처럼 비어 있는 하운두의 집에서 페르수와 사랑을 나누던 캣츠비는, 페르수로부터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는다. 돈 많고 나이도 많은 '부르독'과 결혼하게 됐다는 페르수는, 캣츠비에게 넥타이 하나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관계의 끝을 선언한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캣츠비는 페르수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그녀를 욕하며 술만 마신다.

보란 듯이 잘 살겠다고 다짐한 캣츠비는 결혼정보업체가 주선한 맞선에서 같은 'C급'으로 분류된 선을 만난다. 같은 C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착하고 예쁜 선에게 호감을 느낀 캣츠비는 선과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선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캣츠비 앞에 갑작스레 페르수가 찾아온다. 그녀는 "한 번도 널 잊은 적 없다"면서 자신도 선과 똑같이 사랑해달라고 캣츠비에게 부탁한다. 그 와중에 하운두는 '몽부인'이라는 유부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수시로 그녀의 집을 들락거린다.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이병준의 부르독 부르독은 페르수와 함께 사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전 부인에게 집착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떠나려는 페르수를 붙잡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위캣리>에서는 그 태도 변화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 곽우신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몽부인 몽부인 역할을 맡은 김송이 배우. 하운두가 사랑하는 몽부인, 몽부인과 페르수가 보여주는 후반부 반전은 <위대한 캣츠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위캣리>에서의 이 연출은 나쁘지 않았다. ⓒ 곽우신


대한민국의 흔한 아침 드라마 같은 스토리 전개. 특히 작품의 후반부 반전은 이 막장 드라마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다만 주인공이 대한민국의 20대 청춘남녀라는 점만 다소 다를 뿐이다. 하지만 막장에도 급이 있다. 스토리에 첨가될 자극적인 MSG로 끝나는 막장이 있고, 그 자체에 감칠맛이 나는 막장이 있다. 막장의 급을 나누는 기준은 단순하다. 막장을 위한 막장인지, 의미를 가진 막장인지. <위대한 캣츠비>의 막장은 명백히 후자다.

<위대한 캣츠비>는 프로방스라는 유럽의 이상적 장소와 프로방스 아파트가 건설되는 달동네의 처지를 대비시킨다. 백조와 오리라는 상징을 쓰며, 백조와 오리를 구분 짓는 건 조건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 안의 꿈이나 순정의 유무라고 지적한다.

청년실업, 주거, 빈곤의 문제를 배경으로 보여주면서 '그런데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현실적 여건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세상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방정식은 분명 생경하다. 그리고 그만큼의 용기를 준다. 사회적 금기나 제약에 갇히지 말고 우리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게끔 추동력을 준다. "지독하게 아픈, 순정"이라는 작품 내 문구처럼.

안타깝게도, 상기한 <위대한 캣츠비>의 의의와 특·장점이 <위캣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리부트의 나쁜 예가 되어 버린 <위캣리>

 지난 2015년 11월 11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위대한 캣츠비 RE:BOOT>가 끝난 후 커튼콜 장면.

▲ 꽃츠비 대학로의 대표 '소'로 불리는 배우 정동화. <프라이드>처럼 진중한 극이든, <난쟁이들>처럼 발랄한 극이든 그는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실한 배우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정동화 개인의 매력이 마음껏 드러나지 못해서 아쉽다. ⓒ 곽우신


대중문화 특히 영화계에서 '리부트'는 이제 낯선 작업이 아니다. <배트맨> 시리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을 거쳐 <다크나이트> 3부작이라는 불후의 명작으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 되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의미와 재미를 갖춘 과거의 콘텐츠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부활시키는 건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하지만 모든 리부트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근례로 영화 <판타스틱 4> 시리즈의 리부트를 선언했던 2015 <판타스틱 4>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세상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그야말로 총체적인 실패작이자 원작 팬을 향한 모욕이었다. 그리고 <위캣리>가 <판타스틱 4> 수준까지 밑바닥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누가 봐도 <위대한 캣츠비>의 리부트는 '실패'였다.

이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너의 얼굴', '6년과 2개월', '세상의 전부' 등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율의 넘버로 꾸려졌다. 기승전결에 따라 쉼표와 마침표를 적절히 배분하며 이야기의 강약을 조절했다. 지금 시점에서 평가했을 때 다소 촌스러운 부분도 있으나, 원작의 메시지와 청춘의 고민을 잘 섞으며 웰메이드라 할 만한 완성도를 이루었다.


이전작과 차별화를 너무 의식했던 걸까. <위캣리>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각 넘버들은 훌륭했다. 그러나 모던 록으로 편곡된 넘버들은 '강약중강약'의 호흡 조절 없이 '강강강강'의 느낌을 주도록 배치됐다. 노래를 통해 무대로 관객을 흡입하지 못했다. 심지어 '송 스루'이기에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모든 스토리와 감성을 전달해야 하는데, 전달은 커녕 각 곡들끼리 싸우는 형국이었다. 이야기 전달에 실패한 넘버는 객석만 웅웅 울리다가 사라질 뿐이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나 인물의 동기에 대한 설득 없이 격정적인 충돌에만 집중하다 보니 각 장면이 연결되지 않는다. 뮤지컬 <데스노트> 때도 비슷한 평을 했지만, 이 작품만 보면 이야기에 공감할 수가 없다. <위캣리> 속 캣츠비는 그냥 지질한 루저이고, 하운두는 왜 저렇게 페르수에게 집착하는지 잘 모르겠고, 페르수는 이기적인 여자, 선은 호구일 뿐이다. 청춘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간다.

원작 만화를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인데, 원작을 보게 되면 원작이 이런 수준으로 무대에 올라간 데 한숨이 나온다. 2007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를 기억하는 이라면 안타까움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원작자에게 상처로 남았던 2007년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어야 <위캣리>인데, 좋은 원작, 좋은 배우, 좋은 넘버를 가지고도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뮤지컬 <위캣리>를 보고 나오는 길, 나도 모르게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과거 오리지널 <위대한 캣츠비>의 넘버를 내려받고 있었다. 부디, <위캣리>가 다시 한 번의 리부트를 거쳐서 부활하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응원의 마음을 담아, <위캣리> OST 발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것이었으니.

<위대한 캣츠비 RE:BOOT>의 포스터 <위캣리>가 오는 31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리부트 작업을 시도한 건 좋았으나, 완성도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도 넘버도 좋은데 극의 어설프니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다. 이대로 사장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스토리 보다는 노래를 중요시하는 관객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갈 만하다.

▲ <위대한 캣츠비 RE:BOOT>의 포스터 <위캣리>가 오는 31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리부트 작업을 시도한 건 좋았으나, 완성도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도 넘버도 좋은데 극의 어설프니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다. 이대로 사장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스토리 보다는 노래를 중요시하는 관객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갈 만하다. ⓒ (주)문화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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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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