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 이만수                    야구인으로 봉사하는 삶으로 지난 한 해를 보낸 이만수 전 감독을 자택에서 만났다.

▲ 야구인 이만수 야구인으로 봉사하는 삶으로 지난 한 해를 보낸 이만수 전 감독을 자택에서 만났다. ⓒ 강윤기


2014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꽃보다 청춘>에서는 젊은이들( (유연석·손호준·바로)이 라오스를 찾아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렇게 라오스가 한국 시청자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배낭여행자들에겐 천국 같은 라오스지만 스포츠의 측면에서는 아직 미지의 세계이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전통적인 불교 국가인 라오스. 2008년 뉴욕타임스 선정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 라오스에 야구라는 공놀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어떤 청춘보다도 더 혈기왕성한 헐크 이만수 전 SK 감독.

그는 야구인으로서 야구 불모지에 야구를 전파하고자 어렵고 힘든 길을 떠났다. 항상 긍정적인 이 전 감독은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청년들을 위해 2015년 한 해 동안 고군분투하였다.

그렇게 벌써 1년이 흘렀다. 2016년 새해 인천 송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다. 차디찬 바람이 불었지만 이 전 감독의 열정은 꺾일 줄 몰랐다. 이만수 전 감독을 지난 5일, 인천 송도 그의 자택에서 만나 지난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앞장섰던 재능기부와 라오스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올 한 해의 각오를 들었다. 

"강 기자. 와줘서 고맙습니다."

도착한 기자에게 이 전 감독이 건넨 첫 마디 말은 '고맙다'였다. 기자는 연신 '고맙다'를 반복하는 이 전 감독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감독님 말 끝에 항상 '고맙다'가 붙는데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이 전 감독은 "강 기자, 제가 46년 동안 야구하면서 팬들이 참으로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죽을 힘을 다해 받은 사랑을 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전국 돌며 재능기부, 자동차 주행거리만 4만Km

- 감독님 지난여름에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재능기부에 한창이셨습니다. 그때는 우박 같은 땀을 비 오듯 쏟아내셨는데요. 지금은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다녀야 하는 추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2015년 경주고등학교를 끝으로 재능기부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젊은 학생들과 같이 나눌 수 있어서 지난 한 해 정말 행복했습니다. 특히, 큰 도시보다는 작은 도시, 지방 위주로 많이 움직였어요. 아이고, 참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1년에 1만5000 km 정도였던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지난해에는 4만 km나 됐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 마지막 마무리를 경주에서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경주고 체육 선생이자 야구부 부장을 맡고 있는 권기홍 선생은 고등학교 후배이자 삼성라이온즈 시절 나와 같이 호흡을 맞췄던 투수 출신입니다. 그와의 인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강 기자 혹시 회 좋아해요?"

- 네. 회 좋아하는 편입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경주고 재능기부를 마무리 하고 식사를 하러 횟집에 갔습니다. 밝은 미소로 응대하는 식당 주인이 있었습니다. 거참 사람 성실하고 젊더군요. 그래서 감탄 했습니다. 야! 이 집은 정말 장사 잘되겠다.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권기홍 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감독님, 야구부 출신 제자입니다'라고요. 그러니 새삼 사람을 다시 보게 되고 엄청 반갑더군요.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다 제가 젊은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습니다.

- 뭐라고 물어보셨습니까?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자네 혹시 야구 관둬서 후회하냐고 물었습니다."

- 젊은 식당 주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닙니다. 저는 권 감독님을 통해 성실함을 배웠습니다. 참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야구를 통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아침부터 움직이면 소중한 땀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배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철저한 자기 관리를 배운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고생을 참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비록 야구를 통해 한 번 실패를 맛봤지만 좌절하지 않고 밑바닥에서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싱싱한 생선을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묵묵히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 정도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더군요."

-재능기부하실 때 꼭 학부모들을 초청해 강의한다고 들었습니다.
"학부모님들에게 꼭 이런 말을 합니다. '학부모님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아들 한 명을 운동선수로 키우는 거 정말 어렵습니다. 학부모님들 늘 걱정하는 마음 잘 압니다. 우리 아들은 키가 작아서. 혹은 소질이 없어서. 몸이 약해서. 참 많이 걱정들 하십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늘 진심을 담아 설명하곤 합니다."

- 부모님들의 자식 걱정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웃으면서 낮은 음성으로)강 기자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야구도 꼴찌. 공부도 꼴찌였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노력하며 살다 보니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 학부모님들이 공감하시던가요.
"'학부모님이 자녀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거 아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러면 상당히 마음을 놓고 나아지시더군요. 공부 안 하면 낙오자가 된다. 바보가 된다. 걱정들 많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하면 다 하게 되는 게 사람 사는 삶 아니겠어요?(웃음)"

"프로야구 도박 스캔들, 야구 선배로서 부끄러워"

- 저도 공감이 되는군요. 짜놓은 프레임대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맞아요. 그 대신 저는 아이들에게 꼭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46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저는 꼭 일기를 썼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야구 일지입니다. 일기는 지금도 매일매일 쓰고 있고. 야구 일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 일기를 들으니 불현 듯 방학숙제가 생각납니다. 일기라는 것이 한번 미루게 되면 손을 놓아버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 번째는 책을 꼭 읽으라고 합니다. 솔직히 야구하면서 공부까지 잘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꼭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을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왜 책을 많이 보라고 하십니까?
"저도 집에 책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인생을 살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글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책을 꼭 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고자 교육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요즘 연이은 구설수로 엘리트 체육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오전 수업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강 기자도 알겠지만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게 학창시절에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이 맞고 다양한 친구를 만나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봅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친구 잘못 만나면 인생 종 친다. 덧붙여 도박에 빠지면 진짜 마약에 빠진 것과 똑같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도박하면 안 됩니다."

- 2015년 시즌 말미 도박에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요. (한숨을 내쉬며) 야구인 선배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잘 관리했어야 하는 건데."

-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땀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재능기부에 따른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같이 재능기부를 하는 박현우 코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감독님 재능기부할 때 자기 팔을 하나씩 끊는 심정일 텐데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저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박 코치. 재능기부는 말 그대로 자기 것을 다 줘야 해.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다 퍼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습니다."

- 모든 것을 다 준다라, 쉽지 않은 길입니다.
"참 그게 어렵습니다. 제가 46년 동안 받은 사랑 때문에 특히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게 큰 것 같습니다. 이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 주는 경험도 해보고.너무 받기만 해서 미안했어요. 돈으로 하는 건 누구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래 어디 한 번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감독 생활하실 때 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더 편안해졌어요. 대신 집사람에게는 상당히 미안할 따름입니다.(밝게 미소 지으며) 이제 2년째가 시작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박 코치에게도 늘 이렇게 말합니다. 2년째라고 생각하지 말고 재능기부라는 것은 평생 하는 거니까 꾸준히 해야 한다. 나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한다. 만약에 (프로야구)현장에 들어간다면 잠시 멈추겠지만 그래도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 현장에 복귀하시면 재능 기부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현장에 들어가면 선수한테 더 이야기하겠죠.(웃음)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는데 현장 복귀는 없습니다. 순리대로 물 흐르는 것처럼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애쓸 필요 있나 싶습니다. 하다 보면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라고 주변에게 말합니다."

- 여담이지만 제가 여름에 감독님께 삼성이 우승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는데 참 사람 인생 모르는 것 같습니다.
"(크게 웃으며) 그러니까 몰라. 운동이라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분위기 타면 모릅니다."

야구인 이만수                    야구인 이만수가 봉사활동을 위해 치킨을 직접 튀기고있다.

▲ 야구인 이만수 야구인 이만수가 봉사활동을 위해 치킨을 직접 튀기고있다. ⓒ 이만수


"라오스 아이들이 '만수 빨리와'라고 해줘서 행복"

- 얼마 전에 직접 통닭을 튀기시는 모습이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며) 치킨 만드는 거 직접 해보니 재미 있기도 했고 정말 맛있었습니다.(입맛을 다시며) 더 먹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경험을 할지 모르겠지만 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 '포에버 22' 팬클럽 분들과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몰랐는데 팬클럽 활동의 일종이더군요. 동행 기부 활동입니다. 십시일반 팬들이 돈을 모아서 장애인들을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본인들이 알아서 회비 걷고 잘 움직입니다. 이젠 저 빼고 하더군요(웃음) 집사람도 가끔 그러더군요. 당신 빼고 팬들이 더 잘 뭉친다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웃음)"

- 오래되다 보니 팬들끼리 친화력이 좋을 듯합니다.
"(미소 지으며)또 재미난 일이 있습니다. 포에버 22 팬클럽 회장이 어디 사람인 줄 알아요? 바로 전라도 사람이에요. 이분이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잘했는데 집안이 좀 어려워서 방황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야구를 봤는데 이만수가 막 '으쌰으쌰' 하면서 세리머니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는 겁니다. 큰 재미를 느껴 (팬클럽) 활동을 시작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 기자는 모르겠지만 80년대 시절에 전라도에서 삼성 팬이라고 하면 큰 구박을 받았어요. 우리 회장도 정말 많은 구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 참 어려움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말도 말래요.(웃음) 그래도 저만 응원했다고 하니 큰 힘이 되더군요. 팬클럽 참 재밌습니다. 전국 각지에 다양한 삶이 다 들어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회장님은 목포, 부회장님은 대구이니 진정한 동서 화합입니다.
"그때는 원정 게임 가면 만수 바보, 만수 바보 하던 때인데 젊은 아가씨가 회장이랍시고 이만수 응원한다고 하니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지금은 다 같이 어울려서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고, 이런 부분이 사람 사는 재미 아닌가 싶습니다."

- 야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하던 때가 언제십니까.
"2015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46년 동안 야구했는데 가장 많이 뱉었던 말이 '감사'였어요. 내 생애에서 '감사', '고맙다'는 말이 이렇게 많이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사람이 계속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때때로 한 번 쉬면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2016년에도 똑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 한 번 쉰다고 하면 오래 쉴까 봐 불안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강연에서 이런 말 많이 했습니다. '성공이 무엇인가? 나는 최고로 인기를 얻어봐야겠다. 최고의 기록을 세워야겠다. 우승을 많이 해야겠다. KBO 리그 MVP 많이 타야겠다'가 내 소원이며 기준이었다. 좋은 여자, 좋은 자식을 얻는 것, 그리고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걸 이뤄도 그 기쁨이) 길어 봐야 1주일 정도 가더라."

- 1주일이면 너무 짧은 시간 아닙니까.
"자 생각해 보세요. 좋은 걸 딱 가지면 행복했던 기억이 반으로 싹 줄더군요. 3~4일이 지나면 상당히 약해집니다. 인간이 그렇더군요.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더군요. 아, 월드 시리즈 우승하니 10일 갔습니다. 88년 만에 우승(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 삭스)을 하니 조금 더 행복한 마음이 길었습니다. 진짜 너무 좋더군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데 그것도 열흘이었습니다. 최정상에 올라가니 허망해지더군요. 성공 기준에 부합해도 10일 정도 행복했습니다." 

- 그렇다면 이 전 감독님이 오랜 기간 행복했던 적은 언제였습니까.
"한 달, 두 달, 일 년씩 가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봤더니 남을 위해 봉사하는 거였습니다. 라오스 애들이 '헤이 만수'라고 하면서 전화가 와서 고개를 갸웃 했는데 서툰 한국말로 '빨리 와, 빨리 와' 이러더군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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